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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인량마을 충효당종택, 조선중기에 지어진 재령이씨 종택

경북 영덕군 창수면 인량마을에 있는 충효당종택이다. 마을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재령이씨 입향조가 조선중기 성종 때 처음 지었다. 원래는 우계종택 자리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 후 후학양성을 위해 충효당을 지으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당에서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건물은 정자처럼 생긴 사랑채인 충효당과 살림집인 본채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안채와 작은 사랑채가 튼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데 작은 사랑은 마루와 문이 사랑채를 향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 높은 곳에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인량마을은 집성촌인 다른 전통마을과는 달리 안동권씨, 재령이씨 등 여덟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통마을이다. 나즈막한 산자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어 학이 나래를 펼친 형국이라고 한다. 큰 하천인 송천이 마을 앞을 흐르며 그 주위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충효당, 오봉종택을 비롯하여 비교적 큰 규모의 고택들이 남아 있으며 마을의 규모도 상당히 넓고 큰 편이다.

<영덕 인량마을 충효당종택>

조선중기에 지어진 고택으로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형태의 사랑채와 ‘ㅁ’자형 본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효당이란 이름을 가진 사랑채>

앞면 4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서원 강당처럼 큰 대청마루와 사랑방으로 되어 있다. 영덕 영해지방은 조선시대 관동팔경 유람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을 찾는 손님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방에는 서원이 많지 않고 개별 저택에서 사랑채를 크게 만들어 동해안을 찾아오는 시인,묵객들을 묵게하면서 학문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출입문>

<2010년 여름>

마루에는 사찰 건물처럼 문을 달아 놓고 있다. 겨울에도 이 곳에서 많은 사람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문을 달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살림집에 해당하는 본채>

앞쪽에 ‘ㄴ’자형으로 작은 사랑방 공간을 두고 있는데 마루가 사랑채를 향하고 있으며, 넓은 툇마루를 두고 있다.

<안채>

안채는 ‘ㄱ’자형으로 바깥쪽 사랑방 건물과 함께 튼 ‘ㅁ’자 구조를 하고 있다. 안마당이 다른 고택에 비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수리충인 모습>

2010년에 본채는 대대적인 수리중이었는데 지금도 수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옆쪽에서 본 충효당종택>

대문채를 두지 않고 작은 협문을 출입문으로 두고 있다.

<충효당 내려다 본 인량마을과 영해평야>

<영덕 인량마을>

넓은 영해평야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여덟 성씨가 모여 살았던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다.

영덕 충효당
이 가옥은 재령이씨 입향조인 이애가 조선 성종 연간에 건립하였으나, 선조 때 뒤편으로 이건하였다. 가옥의 배치는 ‘ㅁ’자 평면의 정침, 사랑채 그리고 두 건물 사이 뒤편에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충효당은 정침과 독립되어 건립된 사랑채의 당호로서 정자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대청 삼면에 문을 설치하여 주거 건축 용도에 적합하도록 꾸몄다. 그리고 튼 ‘ㅁ’자형 정침은 뒤편에 여성공간이 자리하고 전면 좌측부분에 충효당과 연결되는 남성공간인 작은 사랑을 배치하여 당시의 생활규범을 보여준다. 사당은 담장으로 구획되어 선조의 신위를 모시고 있어 조선 중기의 사대부 가옥의 배치와 생활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 주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출처>

  1. 영덕군청, 2017년
  2. 문화재청, 2017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