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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후원, 향원정과 열상진원 샘

건청궁이 들어서 있는 경복궁 후원은 옛 경복궁의 배치나 법도에 따라서 경복궁을 중건할 때 조성한 공간이 아니다. 고종은 경복궁 중건 이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이궁(離宮)인 건청궁과 서재인 집옥재(集玉齋) 등을 짓고, 연못인 향원지(香遠池)를 조성했다. 엄숙하고 위압적인 면이 보이는 법궁인 경복궁의 답답함과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그늘을 벗어나고 하는 고종의 바램이 반영된 공간이다. 옛 경복궁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공식적인 연회공간인 경회루가 있는 연지와는 별도로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후원 연못>

향원지는 경복궁 후원에 조성한 인공 연못으로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거기에 육각형의 정자인 향원정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 곳 향원정을 조성한 것은 정조가 부용지에 부용정과 서재격인 주합루를 조성한 예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향원정 뒷편에는 고종 개인의 서재인 협길당과 집옥재, 팔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향원지와 향원정은 그 규모에 있어서는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보다는 훨씬 크며, 경복궁 연지와 경회루보다는 약간 작게 조성해 놓고 있다. 향원지와 비슷한 규모나 형태의 연못과 정자가 이전의 궁궐에는 찾아볼 없는데, 유교적인 법도나 풍수는 크게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향원정>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원래 조선시대의 정자에는 창호를 두지 않고 사방이 개방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 향원정은 사방에 창호를 달아서 바람을 막을 수 있게 해 놓고 있다. 당시 선진국이라 생각했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취향교>

<연못과 다리>

향원정으로 들어가는 구름다리인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이다.

<원래 다리가 있던 향원정 북쪽>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이 다리를 남쪽에 다시 지은 것은 1953년이다. 1950년대의 혼란상을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정자 남쪽은 공간이 열려 있어야 하고, 건청궁과의 관계도 고려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경복궁 건물과의 연관성만 생각해서 다리를 남쪽에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쪽에는 건청궁과 다리를 연결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연못 주변에 심은 나무들>

<건청궁 주변>

<샘이 있는 연못 모퉁이>

<열상진원 샘>

경복궁 금천이 흐르는 연못 모퉁이에 연못에 물을 흘려보내주는 열상진원 샘이 있다. 열상진원 샘은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던 샘이다. 샘에서 솟아난 물은 두번 직각으로 꺾여서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열상진원 샘은 돌로 만든 뚜껑으로 덮여 있는데, 경복궁을 중건할 때 조성한 것이다.

열상진원 샘
이 샘은 경복궁 창건(1395) 당시부터 있던 왕궁의 샘으로 옛날부터 물이 맑고 차서 음료수로 이용하였다. 글을 새긴 우물 뚜껑은 경복궁 중건(1868) 때 만든 것이다. 샘에서 솟아난 물이 두번 직각으로 꺾여서 연못으로 잔잔히 흘러들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향원지(香遠池)에 드러워진 정자와 꽃나무의 그림자가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비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꺾어지는 수로는 둥근 돌로 통로를 만들어 흐르는 물이 더욱 생기를 띠게 한다. <출처:문화재청>

<경복궁 건청궁>

고종이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경복궁 중건 이후 향원정 연못과 함께 조성한 궁궐이다. 사대부 저택처럼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집옥재와 팔우정>

고종은 건청궁을 지은 후, 그 옆에 서재 겸 편전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중국풍 건물인 집옥재와 팔우정, 전통 궁궐 전각 형태인 협길당을 지었다.

<북악산에서 발원하여 경복궁을 흐르는 금천>

<함화당과 장고(醬庫) 사이를 흐르는 금천>

<경복궁 장고>

궁궐내 잔치 등에 사용할 장(醬)들을 보관하는 장독대이다. 원래 경복궁 장고는 함화당 동.서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서쪽 장고를 복원해 놓고 있다.

<장고 출입문>

붉은 고추와 숯 등을 새끼줄에 매달아 놓고 있다.

장고(醬庫)
장고는 궁중 연회나 제례에 쓰이는 장을 보관하던 곳이다. 북궐도형에는함화당과 집경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장고가 있는데, 이곳은 서쪽 장고로서 태원전과 경회루 사이에 위치한다. 큰 잔치가 있었다.을 때는 임시주방인 숙설소가 장고 가까이에 설치되었으며 장고마마가 장독들을 관리하였다. 현재 장고의 모습은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2005년에 복원한 것으로 경사지를 활용한 계단식 장독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된 독은 2007년에 전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우리나라 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출처:문화재청>

<함화당 남쪽에 위치한 경복궁 풍기대(보물)>

향원정(香遠亭)과 건청궁(乾淸宮)
고종 내외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정치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1873년 건청궁을 궁궐 안 북쪽에 별도로 조성했다. 침전인 곤녕합, 옥호루와 왕의 사랑채인 장안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곤녕합은 187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역사적 비극의 장소다. 후궁영역의 뒤 정원으로 만들어진 연못 안에는 원래 취로정(翠露亭)이 있었는데 건청궁을 창건하면서 그 자리에 향원정을 새로 지어 건청궁의 앞 정원이 되었다. 부정형의 연못에 둥근 섬을 만들고 육각정자를 세웠으며, 원래는 북쪽으로 다리를 놓아 건청국과 연결했으나 현재는 남쪽으로 놓여 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