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성산읍 경산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주 경산리 성밖숲’이다.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아서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옛 성주읍성 서문 밖 낙동강 지천인 이천변에 숲이 조성되어 있다. 원래 밤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밤나무를 베어 버리고 왕버들을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심어진 왕버들은 수령이 300~500년된 것으로 현재는 50여 그루가 남아 있다. 시골마을에 남아 있는 비보림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큰 고을의 중심지인 읍치에 남아 있다. 옛 읍성 성벽은 사라지고 숲만 남아서 지역민에게 휴식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낙동강 서쪽에 위치하고 성주군은 고대국가인 성산가야가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문인들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유교적 색채가 짙은 고장이다. 성주군 읍치에 남아 있는 성주 향교는 전국 향교 중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가야산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국가가 자리잡을 수 있을 정도로 농업생산력이 풍족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성주참외로 유명하다.
성주 경산리 성밖숲. 성주읍치를 휘감고 흐르는 낙동강 지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인공숲이다. 수령 수백년이 넘은 왕버들 5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받침목을 받쳐주어야만 지탱할 수 있지만, 아직도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며 나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아직도 울창한 가지를 자랑하고 있는 고목들도 많이 남아 있다.
숲이 만들어준 그늘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
성주 경산리의 성밖숲, 천연기념물 403호,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이 숲은 풍수지라 사상에 따라 성주읍성 서문 밖에 조성한 숲으로 수령이 약 300~500년 된 왕버들 57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중기에 성주읍성 서문 밖 마을의 어린이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갔다. 답답한 주민들이 지관에게 물어 보니 “마을의 족두리 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 중간 지점에 숲을 조성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라 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서문 밖 이천변에 밤나무 숲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 내고 왕버들로 다시 조성하였다고 한다. 성밖숲은 오랜 기간 자생하고 있는 왕버들로만 구성된 단순림으로 학술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의 풍수리지 및 역사.문화.신앙에 따라 조성되어 마을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과 토착적인 정신문화의 재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으로 향토성과 역사성을 가진 숲이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출처>
-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