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있는 성산동고분군(사적)이다. 삼국시대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들로 성주읍 동남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약 70여기의 무덤들이 분포되어 있으며, 하나의 봉분내에 2인 이상을 매장한 가야의 장례 풍속인 순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덤들은 주로 구릉에 흙으로 쌓은 원형봉토분으로 앞트기식돌방무덤과 구덩식돌방무덤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1980년대에 계명대학교에서 발굴.조사를 했는데 가야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은 대구박물관과 계명대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대호를 비롯한 다양한 토기류와 은제 장신구 등 1,350여점이 있다.
성산가야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가야연맹체 중 하나로 한반도 동남부 변한 12국 중에 하나에서 발전하였다. 벽진가야라고도 하며, 성주읍과 인근 벽진면 일대를 영토로 하였는데, 낙동강 서쪽지역으로 농업생산력의 풍부했으며, 낙동강 수로를 이용할 수 있어 고대국가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쪽편 가야연맹체의 중심국가였던 고령 대가야와는 출토된 유물에서 다른 특징을 나타나며 오히려 신라의의 유물과 유사점이 많아서 신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성주 성산동고분군(사적). 삼국시대 성산가야 지배층 무덤들로 성주읍에서 동남쪽으로 약 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가야 고분군과 마찬가지로 성주읍 주변의 넓은 평야지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무덤들을 흙으로 쌓은 원형봉토분 형태를 하고 있는데, 내부는 앞트기식돌방무덤과 굴식돌방무덤 등을 하고 있다.
앞쪽에는 원래 무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전에 밭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약간 넓은 잔듸밭이 보인다.
봉분이 있는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성주읍치였던 성주군소재지. 낙동강 지천인 이천이 성주읍치를 남쪽으로 휘감으면서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비교적 넓은 농지가 펼쳐있어 농업생산력이 좋았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중앙박물관전시, 2014년). 신라의 토기와 비슷한 점을 보여 성산가야가 신라의 영향 아래에 있었음을 추정하게 해 준다.
항아리, 1.경북 성주 성산동,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중앙박물관
긴목항아리, 2.경북 성주 성산동, 1987년 발굴, 삼국시대(가야) 5~6세기, 중앙박물관
성주 성산동 고분군, 사적86호,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동
성산가야 수장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고분군은 성산(해발 389 m) 줄기를 따라 축조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129기가 확인되어 정비 및 복원을 하고 있다. 1988년에 있었던 발굴조사에 따르면 고분의 묘장형태는 한 봉토내에 2인 이상을 매장한 순장에 의한 다장묘로서 별도의 순장곽을 설치하거나 부곽의 한 구석에 순장한 형태임, 주실인 석실은 크기에 비해 유물이 빈약한 반면 부곽에는 넘칠 종도로 많은 유물을 부장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출토품으로는 대호를 비롯하여 유개장경호, 단경호, 유개고배 등의 토기류와 은제 장신구, 화촉 등 1,350여점이 있으며, 이 유물들은 국립대구박물관 및 계명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보관되고 있다.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출처>
- 안내문, 성주군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