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위치한 전통마을인 묘골마을이다. 사육신 중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박팽년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의 2남 박휘순의 처가이 있던 곳으로 그의 부인이 친정인 이 곳에서 아들을 낳고 숨어살다가 성종대에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 받아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달성지역에서도 경제력이 상당히 풍부했으며, 지역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씨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인사로 볼 수 있으며, 삼성그룹 창업자 부인도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묘골마을은 박팽년이 후손이 복권되면서 양반가문으로 크게 번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사당인 육신사를 중심으로 큰 규모의 한옥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한옥은 많지 않으며, 대부분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이다. 육신사 옆에는 조선중기에 종가 별당으로 지어진 태고정(보물 554호)이 있으며, 그 아래에 18세기에 지어진 고택인 도곡재가 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육신을 모신 낙빈서원이 있으며 그 아래 운치있게 잘 지어진 삼가헌고택이 있다.
달성 묘골마을.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인 순천박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다. 경제력이 풍부했던 마을로 오래된 고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현재 살고 있는 한옥들의 규모가 큰 편이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삼충각. 사육신 박팽년과 그의 아들, 손자까지 3대가 국왕으로부터 정려를 받은 것을 기리기 위해 1835년에 세워졌다.
마을입구에 있는 큰 규모의 저택인 충효당. 조선후기 인조 때 금산군수를 지낸 후손이 별당으로 지은 건물이다. 살림집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큰 규모의 한옥. 최근에 크게 수리하여 고택의 멋을 느낄 수는 없지만 개량된 한옥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원래 큰 가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는 대부분 규모가 큰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박팽년 후손들의 크게 번창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 있는 한옥 중 비교적 오래된 고택한 도곡재 솟을대문.
도곡재는 18세기에 주택으로 지어졌다가 19세기에 후학을 양성하는 재실로 바뀌었다. 안쪽에 살림집인 안채가,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는 마당을 넓게 쓰는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택 앞쪽에 있는 사랑채. 2동의 건물이 나란히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랑채이다.
마을 안쪽에 있는 옛 종가 별당으로 지어진 고택인 태고정(보물 554호).
태고정은 조선중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조선전기 한옥의 양식이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태고정 옆에 있는 육신사. 사육신과 박팽년의 아버지를 모시는 사당으로 1970년대에 지어졌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낙빈서원. 원래 사육신을 모셨던 서원으로 구한말 훼철되었다가 지금은 강당만 복원되어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낙빈서원 아래에 있는 삼가헌고택. 조선후기 영조 때 (1769년) 삼가헌 박성수가 이곳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인 ‘삼가헌’을 현판으로 걸었다.
삼가헌 고택 별당 건물이 하엽정. 정자 앞 연못에 심어진 연꽃이 유명하다.
<출처>
-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 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