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송현동 고분군(사적), 삼국시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에 있는 송현동 고분군(사적)이다. 창녕읍에서 화왕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삼국시대 비화가야 지배층 무덤들이다. 아래쪽에 있는 교동고분군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무덤의 성격은 거의 비슷하여 지금은 2개의 고분군이 통합되어 사적5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보고서는 남아 있지 않으며 발굴된 유물들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사이에는 농경지로 바뀐 곳이 많아 두 지역이 분리된 것 처럼 보인다.

창녕지방에 자리잡았던 비화가야는 가야연맹체 중에서 특이하게 낙동강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세력이다. 가야연맹체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신라와 관계가 깊었던 세력으로 여겨지며, 신라의 영향을 받은 각배, 철제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된다. 주요 유적지로는 창녕 교동 고분군, 계성동 고분군 등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561년에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워놓았다.

SANYO DIGITAL CAMERA창녕 송현동 고분군. 교동교분군 남쪽 화왕산 입구에 큰 규모의 봉분들이 들어서 있다.

SANYO DIGITAL CAMERA이 고분군은 교동교분군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농경지 등으로 훼손되어 지금은 봉분 형태가 남아 있는 큰 무덤들만 17기 정도 확인되고 있다. 봉분 주위에 호석으로 둘러져 있는 무덤과 그렇지 않은 무덤들이 섞여 있다.

SANYO DIGITAL CAMERA송현동 고분군 입구.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봉분이 큰 무덤.

SANYO DIGITAL CAMERA2호 무덤. 호석이 둘러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3호무덤

SANYO DIGITAL CAMERA4호무덤

SANYO DIGITAL CAMERA호석이 없는 5호 무덤.

SANYO DIGITAL CAMERA뒷쪽편에 있는 무덤.

SANYO DIGITAL CAMERA2개의 무덤이 있어 쌍분처럼 보이는 안쪽에 있는 무덤. 아래쪽에는 농경지로 바뀌었다.

SANYO DIGITAL CAMERA송현동 고분군과 교동고분군 사이에도 무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농경지로 바뀌면서 훼손되어 확인할 수 없다.

SANYO DIGITAL CAMERA아래쪽에 있는 교동교분군.

SANYO DIGITAL CAMERA교동고분군에서 보이는 송현동고분군.

창녕 송현동고분군, 경남 창녕군 송현리
창녕박물관 남쪽에서 목마산 쪽으로 무리지어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이다. 원래 80여 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7기 정도의 봉토분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일제시대에 89.91호분이 발굴되어 엄청난 양의 유물이 반출되었고, 2000년 2월부터 6월까지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현황파악을 위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일제시대의 정식 발굴보고서가 나오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축조시기, 무덤형식, 부장유물 등에서 북쪽에 인접한 교동고분군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지름 20 m정도의 대형무덤(1~7호분, 15호분)은 구릉의 높은 줄기를 따라 배치되었고, 소형무덤(8,9,11~14호분)은 합쳐져 표주박 모양으로 보이고 있다. 교동고분군과 마찬가지로 비화가야의 왕릉과 지배층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일제의 파괴, 그리고 후대의 경작과 도굴로 인한 피해가 극심하다.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창녕군청, 2010년000
  2. 안내문, 창녕박물관,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