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 무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옥전 고분군(사적)이다. 낙동강 지류인 황강변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힜는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총 1,000여기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중 합천박물관 뒷편 언덕에 봉분의 형태를 갖춘 18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이 곳은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와 가꾸우며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약 7 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가야 중심지였던 지산동 고분군이 있는 고령군과 함께 대가야를 주요 세력이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들은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굴식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가야의 철기문화를 대표하는 철갑옷, 투구, 장신구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말안장 뒤에 깃발을 꽂는 기꽂이, 고구려 투구를 연상시키는 투구와 철제 말투구 등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신라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로마 유리잔이 이곳에서도 출토되어 신라와의 교류관계도 같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자를 무덤으로 보이는 M2호분에서는 화려한 장신구들이 출토되어 발달된 가야의 금속 세공기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합천 옥전고분군(사적)>

옥전고분군은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 무덤으로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서 멀지 않은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황강 주변으로 비교적 넓은 농지가 있으며, 낙동강이 가까워 내륙수운을 이용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옥전고분군 무덤배치(위성사진)>

<합천박물관에서 무덤이 있는 구릉으로 오르는 길>

언덕에는 봉분이 있는 약 27기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1,000기 이상의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나 다른 지역 가야 고분에 비해 봉분의 크기는 작은편이다.

<입구 주변에 있는 무덤들(M15, M20, M21 등>

<구릉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고분군 중 위쪽에 M1호분과, M2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M1호분에서는 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되어 남자가, M2호분에서는 장신구 등이 많이 출토되어 여자가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M1호분과, M2호분>

M1호분에서는 각종 철제무기를 비롯하여 로마에서 만들어진 유리잔이 출토되었다. 로마제 유리잔은 경주 고분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출토되었다.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M1호분>

<이곳에서 출토된 로마제 유리잔>

옥전고분군 M1호분
봉분의 지름은 동서 19.5 m, 남북 21.4 m로 평면상 타원형을 이룬 반지하식의 덧널무덤으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그 가운데에 격벽을 만들어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구분하였다. 주위에는 3기의 순장곽이 축조되어 있는데 고령 지산동고분의 순장곽은 호석안에 포함되어 있음에 비해 이곳에서는 호석의 바깥에 연하여 축조된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제3차 조사(1989. 5. 8 ~ 1989. 7. 2)때까지도 전혀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처녀분이었으나 1991년 봄 안타깝게도 대규모의 도굴피해를 입었다. 유물은 각종 토기를 비롯하여 무구류와 말갖춤, 금동장허리띠 등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여기서 발견된 로만글라스는 경주의 신라고분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출토예로는 유일한 것으로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옆에 있는 봉분의 크기가 비교적 작은 M2호분에서는 금제귀걸이, 팔찌 등 다양한 장신구들이 출토되었다. 무덤속에 남아 있는 인골도 여자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2,000여 개가 넘는 구슬과 구슬을 만들었던 옥마저석이 발견되었다.

<M2호 무덤>

<목걸이>

<금귀걸이>

<금귀걸이>

<금팔찌>

옥전고분군 M2호분
봉분의 지름이 동서 13.4 m, 남북 14.5 m의 타원형을 이루는 반지하식 덧널무덤이다. 유물은 금제귀걸이와 팔찌, 구슬목걸이 등 장신구, 말띠드리개, 발걸이, 안교 등의 말갖춤과 각종 토기가 부장되었다. M1호분과 M2호분은 출토유물을 통해 거의 같은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M1호분에서는 무구와 마구가 주로 부장되고 장신구류는 전혀 없는 데 비해 M2호분에서는 반대로 무구는 한 점도 없고 대신 마구와 다양한 장신구류만 발견되었으며, 고분 속에 남아 있었던 인골 감정 결과 여성의 뼈였으므로 M1호분은 남성, M2호분은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M3호분에서는 최고 지배자의 상징인 용봉무늬와 봉황무늬, 용무늬가 새겨진 고리자루칼 4자루가 출토되었다. 말을 탈 때 깃발을 꽂았던 기꽂이도 출토되었다.

<M3호분>

용.봉황장식 고리자루칼은 손잡이 끝에 달린 둥근 고리 안에 용이나 봉황이 장식된 것으로 가야 무덤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에서 나온다.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여 장식대도라고도 한다.

<용.봉황장식 고리자루칼, 김해박물관>

<봉황장식>

<종장판 투구, 5세기, 옥전 M3호묘, 국립김해박물관>

<말머리 가리개,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말방울,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기꽂이,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화살촉 다발, 5세기, 합천 옥전 M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청동그릇, 5~6세기, 3. 합천 옥전 M3호묘, 4. 의령 경산리 2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M4호 무덤>


<합천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보물)>


<합천 옥전 M6호분 출토 금귀걸이(보물)>

<안쪽에 있는 크고 작은 무덤들(M3~M10)>


<미늘쇠, 4~6세기, 합천 옥전 M6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함안 도항리 10호묘, 국립김해박물관>

<M11호 무덤>

<아래쪽에 있는 무덤들(M16  등)

<아래쪽 무덤들(M23~ M27호분)

<아래쪽에서 본 모습>

<아래쪽에 있는 작은 크기의 무덤>

<옥전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 제일 아래쪽에 있는 무덤>

<금동모관, 4~5세기, 2. 옥전 2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금귀걸이, 4~6세기, 4. 합천 옥전 2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5. 합천 옥전 M11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허리띠고리, 6세기, 6. 합천 옥전 M11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갑옷과 투구,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화살통 꾸미개, 5세기, 합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고리자루큰칼, 은장식, 함천 옥전 28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합천 옥전 M28호분 출토 금귀걸이(보물)>

<신라토기, 1. 고성 송학동 1B-1호묘, 동아대학교 박물관, 3. 합천 옥전 31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신라토기, 4. 김해 대성동 73호묘, 성동고분박물관, 5. 합천 옥전 23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배모양 그릇, 5~6세기, 1. 김해 여래리 24호묘, 국립김해박물관, 2. 합천 옥전 99호묘, 경상대학교 박물관>

옥전고분군, 사적,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이 유적은 황강변 야산의 정상부에 위치하며 유구는 고총고분 27기를 포함하여 고분의 총 수는 약 1,000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유적은 1985년 겨울부터 1992년 봄까지 5차에 걸쳐 경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고분은 모두 146기인데, 유물은 토기를 비롯하여 철제의 갑옷과 투구, 각종 무기, 말갖춤, 귀걸이와 목걸이 등 무려 2,5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의 주인공은 『양직공도』와 「일본서기」에 전하는 다라국의 지배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고분 연구를 통해 다라국 또는 가야사 전반에 대한 재구성이 어느 정도 가능하며, 출토자료의 대부분이 일본의 중기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하여 향후 한일고분문화의 비교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한일고대사의 재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합천군청, 2010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