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합천 가야산 해인사(사적),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사적)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판을 비롯하여 많은 불경판을 보관하고 있어 법보사찰로 불리며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전국 3대 사찰로 손꼽히는 곳이다. 해인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통일신라 화엄십찰 중 한곳 이었으며 실제로는 9세기에 당나라를 유학한 순응과 이정 두 승려가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를 건국할 때 큰 공을 세워 화엄사상을 크게 떨쳤다고 하며, 통일신라 말 혼란기에 희생된 승려와 주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세운 길상탑이 해인사 입구에 있다.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조선초 강화 선원사에 있던 고려대장경판을 해인사로 옮겨오면서 법보사찰이 되었다.

해인사는 고려팔만대장경판(국보)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을 중심으로 사찰이 사찰이 유지되어 왔다. 조선시대 수차례에 걸친 화재로 오래된 전각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판은 화재와 한국전쟁의 폭격 위험 속에서도 살아 남아 법보사찰로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가야산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통일신라 때 문인 최치원을 비롯하여 대각국사 의천, 사명대사, 최근의 성철스님까지 유명한 고승이나 문인들이 이 곳에 머무르면서 수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해인사는 크고 작은 전각들을 새로 지어진 까닭에 봉정사나 부석사같은 고풍스러운 멋은 없지만, 팔만대장경판의 존재만으로도 유서깊은 사찰로서 의미를 갖는 곳이다.

<고려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국보)>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오늘날 한국 3대 사찰 중 법보사찰로서 위상을 갖게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들어가는 길

해인사는 입구에서 많이 떨어져 있고, 들어가는 길은 수목이 우거진 숲길로 산사라는 의미가 깊게 다가오는 사찰이다.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사찰입구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출입문으로 천왕문격인 봉황문과 그 안쪽에 해탈문이 있다.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는 요사채와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단이 자리잡고 있으며, 해탈문을 들어서면 큰 요사채와 강당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넓은 마당이 있다. 이 마당에는 의상대사사 화엄사을 요약한 게송을 도안에 써 놓은 해인도를 형상화시켜 놓고 있다.

<해인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첫번째 출입문인 봉황문으로 들어가는 길>

울창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해인사 봉황문>

‘해인총림’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해인사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 공간에 있는 작은 전각인 국사단>

해인사 도량을 관장하는 산신이자 토지의 신인 국사대신을 모신 곳이다.

<봉황문 옆에 있는 요사채인 우화당>

해인사를 찾은 신도들이 머물수 있도록 지은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출입문인 해탈문>

<안쪽에서 본 해탈문>

옆쪽에 있는 전각과 함께 솟을대문 형식을 하고 있다.

<강당 건물인 구광루>

근래 아주 크게 지은 건물로 현 해인사 중수 결과 중 보경당과 함께 혹평을 받는 부분이다. 강당은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설법을 듣거나 잠시 앉아서 쉬는 곳으로 사찰의 풍경을 조용히 차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의 구광루는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보물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규모가 사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너무 크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구광루 앞 마당에 구현해 놓은 해인도>

해인도(海印圖)
해인도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210자 7언 30구의 게송(偈頌, 부처의 공덕이나 교리를 담은 노래 글귀)을 만(卍)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다. 도안 중십에서 ‘법성원융무이상’으로 시작하여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나기까지 210자의 게송을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그 내용을 마음에 체득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 여기는 처음 출발한 그 자리다. 이는 법성이 원융한 사바세계 이대로가 부처님의 세계임을 의미한다. 화엄일승법계도, 법계도서인, 화엄법계도, 법성도 등으로도 불린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구광루 맞은편 종무소 건물인 사운당>

<보경당>

마당 동쪽에 있는 상당히 크게 지은 전각이다. 강당 용도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해인도 옆에 있는 범종각>

<범종각 뒷편 요사채>

‘청화당’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손님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구광루 옆쪽으로 있는 승려들의 수행공간>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주불전 마당 출입문>

해인사는 주불전이 있는 공간은 구광루 양쪽에 있는 작은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수행 및 예불공간

구광루 옆 협문을 지나면 주불전인 대적광전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마당에는 비로탑으로 불리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양쪽에 요사채가 있다. 마당보다 높게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공간에는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비로전, 응진전, 명부전 같은 불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바깥쪽으로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크고 작은 요사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해인사는 수행을 중시하는 사찰로 다른 사찰에 비해 요사채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해인사 중심 영역>

마당 가운데 석탑이, 그 좌우로 요사채가, 축대를 쌓은 높은 곳에 불전이 배치된 전형적인 산지사찰 가람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불전들이 있는 공간>

경사진 지형에 축대를 상당히 높고 넓게 쌓은 후 건물을 지었다.

<해인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화엄경을 중시하는 사찰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시고 있다. 그 앞에 깃발 등을 걸었던 당간과 당간지주를 볼 수 있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

<대적광전 옆에 있는 비로전>

비로전에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데 왼쪽이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좌상(국보)이고, 오른쪽이 법보전 비로자나불좌상(국보)이다. 특이하게 두분의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한다.

<비로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

대비로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비로전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해인사 대비로전에는 9세기에 조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 내부에서 나온 묵서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져 있다. “서원합니다. 대각간님의 비로자나부처님이시여! 오른쪽 부처님은 비(妃)님의 부처님입니다. 중화 3년(서기 883년) 계묘년 여름, 부처님을 금을 입혀 이루었습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비로전 뒷편에 있는 독성각>

앞쪽에 산신을 모시는 국사단이 있어 이곳에는 독성각이 있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학성대 바로 옆에 있어 의미가 있는 듯 하다.

<독성각 내부>

스스로 수행해서 도를 깨친 성자를 모시는 공간이다.


<독성각 옆에 있는 학사대>

오래된 전나무가 학사대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학사대(學事臺)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75~?)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학사대 아래에 있는 요사채들>

<대적광전 동쪽에 있는 응진전>

<응진전 내부>

<대적광전 옆에 있는 명부전>

<명부전 내부>

<응진진 뒷편 요사채>

<대적광전 앞 마당>

비로탑이라 불리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일반적인 사찰과는 달리 대적광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지 않았다.

<마당 동쪽에 있는 요사채>

안쪽에 관음전이 있다.

<마당 서쪽에 있는 요사채인 궁현당>

양쪽 건물 모두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수행 및 예불공간
비로탑과 석등이 있는 마당 좌우로 궁현당과 관음전이 있다. 궁현당 너머에는 적묵당과 진영전이, 관음전 너머에 정수당이 있다. 이들 전각은 대부분 해인사 승가대학(강원)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높은 축대 위에 솟은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왼쪽의 대비로전과 독성가, 오른쪽의 명부전과 응진전은 예불, 참회, 기도 등 주요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는 예불공간이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해인사의 중심 법당이며, 대비로전은 9세기에 조성된 국내 최고 목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응진전 뒤쪽에는 한때 선원으로 사용되었던 선열당(법계당), 퇴설당이 있고, 그 위로 조사전이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8년)

법보공간

법보공간은 고려 팔만대장경(국보 32호)를 비롯한 불경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으로 해인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로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세조 때 크게 다시 지었으며, 성종 때 다시 중건한 건물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인사 경내 여러 전각들은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경판전은 피해를 입지 않고 오늘날까지 팔만대장경을 지켜오고 있다.

<법보공간 출입문>

대적광전 뒷편 법보공간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이다. ‘팔만대장경’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장경판전(국보) 수다라장>

법보공간 중 앞쪽에 위치한 전각을 수다라장이라 한다. 앞면 15칸의 긴 건물로 장식성을 배제하고 목판을 보관하기 위한 기능성을 중시하고 있다.

<수다라장 출입문과 내부>

일년 중 춘분과 추분 부근 3시경에 출입문 기와의 곡선과 함께 연꽃무늬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수다라장 내부에 모셔진 고려팔만대장경(국보)>

<법보공간 안쪽에 있는 건물인 법보전>

수다라장과 비슷한 양식의 건물이다.

가야산 해인사
해인사는 서기 802년(신라 애장왕 3)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 기초하였다고 전해진다. 해인삼매는 바다에 풍랑이 그치면 그 모든 형상이 온전히 비치듯이 법계의 실상을 본래 모습 그대로 자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해인사는 창건 이래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어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지정한 최초의 총림(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포함한 종합수행도량)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고려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어 불법의 큰 보배가 현전하는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유네스코는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팔만대장경의 고유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1995년 장경판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대장경 경판을 비롯한 해인사의 모든 경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출처>

  1.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