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경복궁, 흠경각과 함원전

국왕부부의 생활공간이었던 경복궁 침전이었던 강녕전과 교태전 서쪽편에는 행각으로 둘러싸여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2동의 전각이 자리잡고 있다. 앞쪽에는 세종이 장영실에게 명하여 설치한 천문시계인 옥루(玉漏)가 있었던 흠경각이 위치하고 있으며, 뒷편에는 세종 때 불상을 모셔두고 불교행사을 열기 위해 마련한 전각이 함원전이 있다.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그 변화를 예측하는 천문학은 하늘과 소통하는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는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졌다. 흠경각이 정치의 중심지였던 정전(正殿)이 부근이 아닌 생활공간이었던 침전 가까이 세웠던 것은 그만큼 천문학을 중시여겼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함원전 또한 민심을 잡기 위해 불교를 중시했던 조선초기 세종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흠경각(欽敬閣), 천문시계인 옥루기륜(玉漏機輪)이 설치되었던 전각

흠경각은 1438년(세종20)는 세종대 장영실이 만든 천문시계인 옥루(玉漏)가 설치되었던 전각이다. 흠경각에 설치되었던 천문시계인 옥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한 일종의 물시계이다. 자격루 물시계와 마찬가지로 물의 흐름으로 모든 기계장치가 자동으로 돌아가면서 시간과 천상을 표시하도록 고안되었다고 한다. 자격루시계와 마찬가지로 옥루는 그 장치가 워낙 정교해서 성종대에 이미 사용하지 못하여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임진왜란으로 궁복궁이 불타버린 이후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흠경각은 임진왜란 이후에는 창덕궁에 세워졌으며, 그 뒤 영조대에는 관상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장영실이 만든 천문시계인 옥루가 설치되었던 흠경각>

세종대 설치되었던 흠경각은 교태전과 경회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종대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복원되었다가 허물어졌던 것을 1995년에 복원하였다. 건물은 앞면 6칸규모로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잡상들이 추녀마루에 세워져 있다.  아마도 국왕이 신하들과 천문학과 관련된 학문을 논의하는 공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 옆에 있는 경회루와 연결되어 있다.

<뒤에서 본 모습>

<혼천시계(국보)>

흠경각에 설치되었던 옥루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조선후기 톱니바퀴를 이용한 서양 시계를 접목한 혼천시계(국보)와 비슷한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천체와 별의 움직임을 이해하는데는 이 혼천시계의 원리가 상당히 유용했을 것이다.

<흠경각 앞 마당>

<흠경각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

<강녕전을 출입하는 협문>

<뒷편 함원전으로 연결되는 통로>

흠경각 앞 마당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국왕의 침전이었던 강녕전에서 작은 협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 현재의 행각은 뒷편 함원전까지 연결되어 있다. 불상을 모셨다는 함원전과 흠경각은 생활공간이 아니었기때 문에 공간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

함원전(含元殿), 왕실 불교행사가 열렸던 공간

함원전은 교태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전각으로 세종대 불상을 모셔두고 불교행사를 열었던 공간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88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다시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것을 1995년에 다시 중건하였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 궁궐에 불교행사가 열렸던 전각이 있었던 점이 특이하지만, 조선초기 불교가 차지하고 있었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경복궁 함원전>

건물은 앞면 6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불교행사가 열렸던 건물이지만 교태전과 연결되어 있으며,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는 잡상들이 추녀마루에 올려져 있다. 아마도 왕비나 대비가 주관하는 행사를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보인다.

<함원전 행각>

<당호가 걸려있는 방>

행각은 마루방과 온돌방, 창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호가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는 방들도 있다.

<함원전 앞 마당>

행사가 열렸던 공간으로 마당이 넓은 편이다. 교태전과 연결되는 중문이 있다.

<함원전 동쪽 교태전 행각>

<뒷편 정원>

<굴뚝>

함원전 뒤편에도 교태전과 마찬가지로 작은 정원인 화계(花階)가 조성되어 있다. 아마산굴뚝처럼 화려하게 장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붉은 벽돌로 만든 굴뚝도 볼 수 있다.

<아미산정원으로 연결되는 협문>

함원전 일대가 궁궐 여인들을 위한 공간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뒷편 우물>

<경회루에서 함원전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경회루에서 큰 잔치가 있을 때 왕비를 중심으로 행사를 준비하던 상궁.나인들이 출입했던 통로로 보인다.

<경회루와 함원전 사이의 골목>

흠경각(欽敬閣)과 함원전(含元殿)
농본사회를 운영하는 왕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건물들이다. 농업 위주의 전통사회에서 시간과 천체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하기 위해 천체기구들을 왕실에 가까이 두었다. 세종은 옥루기륜(玉漏機輪), 앙부일구(仰釜日晷) 등의 시계와 간의(簡儀)를 만들어 흠경각 일원에 설치하였다. 경회루 남쪽에 있었던 보루각, 궁성 서북쪽의 간의대 등도 흠경각과 관련된다. 이와 달리 함원전은 불교 행사가 자주 열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채롭다. 현재의 건물들은 1995년에 복원되었다.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