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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옛 중국인의 생활과 공예품] 의례 속 음악과 곡예

의례에 등장하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곡예를 하는 부분은 의례나 연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 흔적은 우리나라의 궁중연회나 종묘제례악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한대화상석이나 벽화 등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나, 곡예를 하는 장면 등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장례의식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중국인의 의식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불교가 전래된 남북조시대 이후에는 서역과 중국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새로운 중국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진씨 등 13명이 세운 조상비, 수 개황2년(582)>

중국 수나라 때 조성된 불비상이다. 중국의 비석 형식이 불교에 채용되는 형태로 6세기 남북조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나리 비석 형식이 확립되는 수.당대까지 크게 유행했으며 불상과 비석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

<생(笙), 비파(琵琶), 피리(笛), 횡적(橫笛), 곡경비파(曲頸瑟琶)를 연주하는 장면>

불비상을 봉안하는 불교행사를 반영하고 있는 부분으로 우리나라 석탑 등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오른쪽에 있는 조상비는 수대 582년에 진씨를 비롯한 불교 신도 13명이 건립한 것이다. 앞면 중간부분에는 생과 비파, 피리, 횡적, 곡경비파를 연주하는 키 작은 속인들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를, 그 아래에는 불보살상과 향을 올리는 공양자를 조각했다. 이 기악잡기 장면은 북위대부터 조상비를 완성한 후 공양자들과 승려가 재회(齋會)를 열면서 치뤘던 봉안 행사를 반영한다. 이러한 공연은 불교의례에 장엄함을 더할 뿐만 아니라, 참여한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적인 측면도 지녔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공양자행렬과 장대타기 곡예 장면, 두연화.관아이 등 조상비, 북위 529년, 보스톤미술관)>

4월 4일, (장추사,長秋寺) 불상이 행상을 나갔는데 악을 물리치는 사자가 그 앞을 인도하였다. 한쪽에서는 칼을 삼키거나 불을 토하고 말을 몰았으며, 다른 쪽에서는 장대를 오르거나 줄을 타는 등 평소에 보기 어려운 기이한 묘기들을 벌였다. 불상이 멈춘 곳에서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여러 겹 둘러싸듯 많아서 서로 밟거나, 뛰어넘어 죽는 자가 항상 생겼다.
『낙양가람기』 권1 성내 창추사조

무릇 중부 인도에서는 이나라(마가다국)의 도성인 파련불읍이 제일 컸다. 매년 건묘월의 8일에는 항상 행상을 행했다. 사륜마차를 만들고 감실에는 모두 좌불이 있고 보살이 서서 시위하고 있었다. 행상일이 되면 경내의 도속이 모두 모여들어 기악을 부르고 연주하며 꽃과 향으로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 바라문이 와서 불상을 초청하면 불상은 차례차례 성내로 들어와 하룻밤을 묵었다. 그날 밤에는 밤새 등을 켰고 기악으로 공양했다.
『고승법현전』, 마갈제국조

<목이 구부러진 비파(곡경비파, 복원품)>

목 부분이 구부러진 비파로, 네 줄의 현이 있는 사현비파로 당비파로도 불린다. 이 비파는 6세기 무렵에 서아시아로부터 북주(557~581년)로 전래된 것으로 원래 특별히 연주법이 정해져 있지 않아 나무조각으로 자유로이 연주했으며 당나라 때부터 손가락이나 골무를 끼고 탔다고 전한다. 이에 반해 다섯줄의 현이 있는 오현비파는 중앙아시아의 구자국(쿠차)에서 중국에 전래된 비파로 ‘구자비파’라 불렸는데, 곧은 목의 형태여서 직경비파로도 불렸다. 직경비파는 우리나라에 삼국시대때 전래되어 향비파라 불리웠으며, 일본 쇼소인에 그 예가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불교의례와 다양한 공연
옛 중국인들은 불교의 숭배 대상을 상(像)으로 만드는 것이 극락왕생을 위한 공덕을 쌓는다고 믿었다. 또한 이 공덕을 죽은 조상에게 양도하는 회향도 가능하다고 여겼다. 이런 목적으로 제작된 불교 조상(造像)들은 승려가 주도하는 의식인 재회를 거쳐 신성성을 갖추게 되었다. 북위 시기(385~534년)에는 재회나 행상, 곧 장식된 가마에 불상을 안치하고 거리를 행차하는 의식을 행할 때 다양한 부대 행사가 열렸다. 각종 악기를 연주하며, 이국적인 옷을 입은 이방인들이 장대타기, 줄타기 같은 곡예를 하고 눈을 속이는 마술 공연을 선보였다. 이런 의례와 함께 거행된 잡기(雜技) 행사는 인도에서 전래된 것으로, 당시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춤과 곡예를 그린 그림(乐舞杂技画像, Image of Dancer and Acrobats), 동한, 지난시>

중국 산동성박물관. 춤과 곡예를 그린 화상석이다. 상당히 큰 규모의 잔치를 기록한 그림으로 보인다.


<춤과 곡예를 그린 그림(乐舞杂技画像, Image of Dancer and Acrobats), 동한, 텅저우시(滕州市)>


<악사와 곡예를 그린 그림(伎乐杂技画像, Image of Musicians and Acrobats), 동한, 쟈상현(嘉祥县) >

<악기연주와 춤 장면, 당 746년, 산시성 시안 소사욱묘>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는 인물 도용, 송>

한대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도용을 의장용으로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주악은 이러한 주악용이나 벽화나 화상전에 주악대를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고분 미술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한 조를 이루는 주악용은 4명의 연주자와 4명의 무용수로 구성되었다. 즉 모자를 쓴 2명의 남자, 큰 관모 머리를 한 2명의 여자, 상투머리를 하고 피리 부는 3명의 연주자, 박을 치는 1사람이 한 조를 이루고 있다. 모든 사람은 줄무늬 옷을 입고 여자들은 갈색 앞치마 위에 외투와 긴 치마를 입은 차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북을 든 인물 도용,북조>

무덤 속 주악 장면
음악은 다양한 의례나 연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중국의 무덤에서는 벽화나 화상석, 화상전, 도용 등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 장면이 나타난다. 한대 이래로 오랫동안 여러 무덤에서 주악 장면은 대개 죽은 사람의 초상 부근에 배치된 행렬도나 신하들의 배알도와 함께 등장하거나, 또는 주악용으로 표현된다. 이런 장면은 고인 생전의 연화와 행렬 의식, 또는 사후의 장례의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5~6세기에 조성된 남조(420~589년)의 등현묘나 금가촌묘의 화상전에서는 무덤에서 벌인 나례(儺禮) 의식 또는 천상세계로 향하는 행렬과 함께 주악대가 등장하는데, 이는 장례의식에서의 주악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2. 안내문, 중국 산동성박물관,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