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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흥법사지, 섬강변 교통로에 자리잡은 절터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절터인 흥법사지(興法寺址)이다. 절터는 원주시 문막읍에서 여주 고달사지로 연결되는 도로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남한강 지류인 섬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초 태조 왕건의 신뢰를 받았던 진감선사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염거화상탑은 가장 오래된 승탑 중 하나이며, 이곳에 통일신라 말 선종계열 사찰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고려초 번성했던 남한강 주변 교통로에 있었던 큰 사찰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조선후기에 이곳에는 도천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흥법사는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동쪽을 향하고 있다. 지금 흥법사 절터에는 삼층석탑(보물)과 진공대사탑비(보물 ) 머릿돌과 거북받침돌이 남아 있으며, 건물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절터 대부분이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는데, 조선후기 도천서원을 세우면서 옛절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진공선사탑(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지금은 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염거화상탑(국보)도 이곳에 있던 것이라 전하고 있다.

<원주 흥법사지 절터>

섬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있는 절터이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아래쪽에서 보이는 절터>

큰 돌로 축대를 인공적으로 쌓아 사찰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절터 가운데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통일신라 삼층석탑을 계승한 고려초기 석탑으로 보인다. 정형화 삼층석탑 형태를 하고 있는데, 기단과 몸돌간의 비례에서 보여주는 조형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흔적이 거의 없는 절터>

조선시대 폐사된 이후 이곳에는 도천서원이 세워졌기 때문에 절터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금도 농경지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절터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지류인 섬강>

<절터 뒷편 농가>

<절터 뒷편>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보물)>

절터 뒷편에는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보물)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이 남아 있다.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힘이 넘치는 생동감있는 표현과 조각수법이 돋보인다.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비몸>

태조 왕건이 직접 글을 짓고 당태종의 왕희지체 행서를 집자하여 글자를 새겼다.

<흥법사지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 중인 흥법사지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365호)이다. 탑은 대좌형태의 기단 위에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가 우수하며, 세부 조각수법 또한 뛰어나다.

<염거화상탑(국보)>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염거화상탑(국보)은 흥법사지 절터에 있던 것이라고 하나 확인된 바는 아니다. 이 승탑은 팔각형 평면에 3단의 기단과 탑신, 머리장식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승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비슷한 형태의 승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동제염거화상탑지(보물)>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다. 이 탑지는 강원도 원주시 흥법사지 절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염거화상탑(국보)에서 발견되었다. 염거화상탑의 조성 내력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유물이다. 염거화상(廉居和尙, ?~844)은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2대조로 도의선사의 제자이다. 주로 설악산에 머물면서 선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으며, 보조선사 체징이 그의 가르침을 계승하였다.

흥법사지
영봉산 아랫자락에 있는 흥법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적연국사 영준이 932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이 곳에 있었던 진공대사탑비에서 진공대사가 940년에 이 곳에서 돌아가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신라말에 거대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전기까지 절과 진공대사탑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693년 이 곳에 도천서원을 건립하였다가 1871년에 폐지하였다. 이 절은 1탑식 절 배치를 하고 있으며, 유물로는 흥법사지 3층석탑과 보물 463호인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가 있다. 건물터로는 탑의 동쪽 10 m 지점 축대 위에 중문으로 보이는 터가 있고, 탑의 앞인 서쪽에 절의 중심 건물이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샘과 여러 건물터가 주변에 있고, 절의 북동쪽 산기슭에는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 간 진공대사탑을 모셨던 자리가 남아 있다. 이 절은 고려 태조가 흥법선원을 만들어 진공대사에게 교화를 맡기자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근의 정산리 거돈사, 여주 고달사 등과 더불어 고려 전반기 선종계 절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원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4. 중앙박물관, 2012년
  5. 춘천박물관,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