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절터인 거돈사지(居頓寺址, 사적)이다. 중문, 탑, 강당, 승방, 회랑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통일신라 평지사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일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승방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건물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곳에는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과 탑비(보물 78호), 그리고 삼층석탑(보물 750호)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 원공국사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현재는 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거돈사는 충주나 제천지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육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도로나 철도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지도를 살펴보면 걸어서 여행을 하던 시절에는 중요 교통 요지였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남한강 뱃길의 주요 나룻터인 창말나루터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역원기능을 겸하면서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이 없어지면서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원주 거돈사지(사적), 삼층석탑과 금당, 강당이 일렬로 나란히 배치된 1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 사찰 중에서는 보기 드문 가람배치이다. 금당 앞에는 회랑을 두었으며, 주변에 많은 건물터가 확인되고 있다.
사찰 앞 중심 공간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보물 750호).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넓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삼층석탑을 올려놓고 있다. 축대가 넓은 기단과 같은 역할을 하여 안정감을 주면서 웅장하게 보인다.
삼층석탑 뒷편에 있는 금당터. 금당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2층 건물로 추정되며, 지금의 금산사 미륵전과 비슷한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
금당을 오르는 계단. 금당터는 잘다듬은 큰 화강석으로 축대를 쌓고 건물을 올렸다.
금당터 중앙에는 불상을 올려 놓았던 석재로 만든 대좌가 있다.
금당 뒷편에는 강당으로 보이는 큰 건물터가 있으며, 옆쪽에는 회랑으로 추정되는 긴 건물터가 있다.
금당 뒷편 강당터로 보이는 건물터와 주위의 크고 작은 건물터.
금당 옆쪽편으로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이자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요사채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절터 뒷편 언덕에는 원공국사탑(보물 190호)를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승탑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복제품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보물190호). 고려초 활동한 원공국사 지종(智宗)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절터에 입구에 있는 원공국사탑비(보물 78호)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탑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거북받침돌 머리는 험한 인상의 용의 얼굴을 하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무늬로 거북등껍질을 표현하고 하고 있는데 그 안에 卍자와 연꽃무늬를 새겼다. 비석의 글은 당대 학자였던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운이 글씨를 썼다.
<출처>
- 안내문, 원주시청, 2010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