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고려 이전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전각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경내에 있는 조사당(국보)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 초상을 모시는 건물로 무량수전 뒷편 언덕 숲길을 따라서 조금 걸어가면 볼 수 있다. 조사당 앞에는 의상대사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 전해지는 어사화가 있고, 동쪽에는 사명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취현암이 자리잡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사천왕상 등이 그려진 고려시대 벽화(국보)가 있다.

조사당은 고려 말 (1377년)에 세워졌으며, 여러차례 수리를 거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3칸, 옆면1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을 하고 있는 작은 건물이다. 앞면 가운데에 출입문을 두고 있으며, 양쪽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고려말에 지어졌지만 삼국시대 이래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던 불전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어 건축의 역사에서 중요한 건축물이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02<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건물은 앞면 3칸 규모로 주심포 공포를 비롯하여 앞면이 벽으로 되어 있는 등 고려시대 이전 건축 양식이 잘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옆에서 본 모습>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08<지붕을 받치는 공포>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15<지붕을 받치는 공포>

조사당 현판은 세로 쓰기를 하고 있으며, 장식 등에서 당시 중국(원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09<조사당 현판>

가운데에 출입문을 두고 있는데, 벽면 가운데 작은 출입문을 두고 있다. 고려시대와 이전 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양쪽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작은 광창을 두고 있다. 무량수전과 마찬가지로 배흘림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가운데 출입문>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11<출입문이 열린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양쪽편 빛을 받아 들이는 광창>

SANYO DIGITAL CAMERA<옆쪽에서 본 모습>

내부에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상을 모시고 있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06<조사당 내부>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03<벽화가 있던 자리(동쪽)>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04<벽화가 있던 자리(서쪽)>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20221029_005<내부 천장>

조사당 내부 벽면에 있던 벽화(국보)는 사천왕상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벽화는 일제강점기에 떼어내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국보19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11-20151009<조사당 벽화(국보)>

영주 부석사 조사당, 국보
조사당은 사찰에서 부처님의 법을 이어 온 조사(祖師) 스님 또는 사찰 창건주 등을 기리려고 만든 전각으로 조사전(祖師殿) 또는 조당(祖堂)이라고도 한다. 부석사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처음 지은 시점은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신종 4년(1210)에 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우왕 3년(1377)에 다시 지었으며, 조선 성종 21년(1490)에 고쳐 지었다. 조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크기이고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인 공포를 기둥 위에서만 짜서 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출입문 좌우 벽 안쪽에는 고려 후기에 그린 벽화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건물을 수리할 때 벽화를 떼어 내어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지금은 부석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사찰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제석천.범천.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원래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본뜬 그림을 복원해 두었다. 조사당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의 사찰 건축 연구에 매우 중요한 전각이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22년)

SANYO DIGITAL CAMERA<조사당 앞에 심어진 선비화>

조사당 선비화
선비화의 학명는 골담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한다. 1300년 이상 조사당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보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부석사는 통일신라 화엄십찰을 대표하는 사찰로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부석사에는 주불전인 무량수전(국보18호)과 조사당(국보19호) 등 대표적인 불교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건물들은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것으로 경주 불국사와 함께 한국적인 사찰 건축의 모범이 되었던 곳이다. 예산 수덕사, 안동 봉정사 등 많은 사찰들이 부석사와 비슷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조사당 옆에 있는 작은 암자. 사명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OLYMPUS DIGITAL CAMERA<2017년>

 

 

SANYO DIGITAL CAMERA<2009년>

<출처>

  1. 안내문, 영주 부석사, 2017년, 202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