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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박물관] 삼국시대 천안

원삼국시대 천안지역은 해상교통로의 거점이었던 아산만과 수로를 통해 중부 내륙지역과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당시 이 지역에는 목지국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백제가 주도권을 잡기까지 마한연맹체의 중심국가였으며 삼국시에는 백제의 주요 지방세력이었다. 천안지역에는 당시의 위상으로 보여주는 유물들이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청당동에 출토된 말모양 띠고리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고대사회 천안의 위상
천안지역은 아산만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통해 바닷길로의 접근이 쉽고, 남부지역으로 통하는 육로상의 길목이라는 유리한 교통로상에 위치한다. 따라서 일찍부터 상당한 위세를 가진 세력이 자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원삼국시대 청당동유적은 금박유리구슬, 청동곡봉형대구 등 중국(군현)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출토유물을 통해 이러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후 백제에 편입된 천안지역의 위상은 화성리, 용원리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화성리.용원리유적에서는 청자반구호, 흑유계수호 등의 중국제 자기류와 은상감.용봉문 환두대도, 관모장식,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백제 중앙이 지방 세력가에게 하사한 위세품으로 천안지역이 백제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천안지역은 마한의 중요국에서 백제의 중요지역으로 여전히 상당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9호 돌덧널무덤, 천안 용원리유적, 백제시대,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산직마을

토광묘 밀집지역에서 남쪽으로 거리를 두고 1기만 조사된 구덩이식 돌덧널무덤. 무덤은 긴 사다리꼴이며 규모는 남북간 760 cm, 동서간 490 cm, 깊이는 190 cm 정도로 크다. 바닥은 돌이 깔려져 있고, 묘광(무덤구덩이) 내 묘실의 규모는 바닥을 기준으로 남북간 445 cm, 동서간 115 cm 정도이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인데 토기류는 발형토기, 짧은목항아리 등이, 철기류로는 쇠창,쇠도끼와 다량의 관못과 꺽쇠가 출토되었다. 특히 위세품으로 볼 수 있는 유물들인 금동관모, 고리자루큰칼, 금동제 귀걸이, 중국제 자기, 뚜껑있는 검은간토기, 화살통, 말갖춤 등의 풍부하게 보여지고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청당동 유적 출토 말모양 허리띠고리, 원삼국시대

은세김고리자루큰칼,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뚜껑있는 검은간토기,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검은간토기,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용무늬고리자루큰칼,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금동관모,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귀걸이, 천안 용원리유적, 삼국시대


바리토기, 천안 화성리 유적, 삼국시대

유리제구슬, 천안 화성리 유적, 삼국시대

원삼국시대 천안
원삼국시대는 삼국시대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기로 대체로 1~3세기를 말한다. 이 무렵 낙랑과의 접촉을 통해 철기생산이 본격화됨에 따라 철제 무기류나 농공구류 등의 사용이 확대된다. 이에 다수의 세력집단이 출현하였고, 중부 이남에서는 삼한이라 일컬어졌던 소국들이 자리하였다. 천안지역에는 마한 소국의 맹주국인 목지국이 자리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고, 또 그에 상당하는 중요한 유적과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유적으로는 장산리, 용원리, 두정동유적 등이 있고, 분묘유적으로 청당동, 운전리, 두정동, 신풍리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주거지유적은 대체로 직사각형의 평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강유역의 출입구가 시설된 여(呂)자형, 철(凸)자형의 중도유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분묘유적의 경우 도랑이 구획된 주구묘가 확인되는 등 지역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

깊은바리토기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

청동곡봉형띠고리, 말모양 띠고리

원삼국시대 마한지역의 주요 유적지 중 한 곳인 청당동 유적지

청당동유적
청당동유적은 청당동 산성에서 서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구릉이 남향선상에 위치한 중서부지역 원삼국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유적이다. 1990년 이후 4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루어져 모두 22기의 토광묘가 조사되었다. 그중에 13기는 무덤 구덩이 위쪽에서 무덤을 감싸듯이 ∩모양의 도랑이 갖춰져 있다. 이러한 형태의 주구묘는 청당동 유적에서 처음 확인되었고, 주로 충청도 내륙지방에서 보여지고 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 청동기, 구슬류, 칠기 등으로 토기류는 원저단경호와 심발형토기가 조합되는 모습이다. 청동기로는 청동마형대구와 곡봉형대구가 출토되고 있는데 곡봉형대구는 토기 조합과 함께 낙랑지역 목관묘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유리제구슬, 곱은옥, 금박구슬,유리구슬

시루

두귀달린단지

화로모양토기

네발달린항아리

소뿔모양손잡이, 얼굴모양손잡이

철도끼

두정동 유적
두정동 유적은 노태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그 주변의 퇴적평야에 위치한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비롯해 백제초기 주거지 및 본묘유적이 조사되었다. 중심 유구는 원삼국시대에서 초기 백제에 이르는 유적이다. 주거지는 인근의 장산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수혈주거지로 평면은 직사각형이며, 지붕구조는 화재주거지를 통해 맞배식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분구묘, 토광묘, 옹관묘 등 다양한 분묘유적이 조사되었다. 특히 무덤구덩이를 얕게 파거나 분구 중에 여러 개의 매장주체를 마련하고 다짐토로 봉토를 만든 분구묘는 천안지역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으로 서울 가락동 1,2호분 등과 비교된다. 출토유물은 가야계의 화료형토기.손잡이잔.이중구연호.사족호 등의 토기류와 환두대도.마구류 등의 철기류가 있다. 그 외에도 금박옥 등의 구슬류도 출토되었다. 두정동 유적은 3~4세기대 주거지와 마구류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삼국시대 천안
천안지역은 백제가 고대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본격적으로 마한지역을 병합해 가는 과정에서 백제의 세력권내에 편입되었다. 이 무렵 화성리, 용원리유적 등의 분묘유적은 이러한 한성 백제와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성리 유적은 목관 또는 목곽을 사용한 토착적 무덤인 토광묘 유적이면서 직구단경호, 흑색마연토가기(검은간토기) 등 백제초기 토기 기종이 보여지고 있어 백제 중앙의 직간접적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위세품적 성격의 은상감 환두대도, 중국제 자기류 등은 백제 중앙의 하사품으로 중요지역 세력가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예는 용원리 유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백제내에서 천안의 위치를 짐작케한다. 천안지역은 백제가 마한지역을 병합하는데 있어서 마한의 중심국으로써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지리적으로도 한강유역이나 금강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이후에도 중요한 방어상의 요지로 삼국시대 천안이 갖는 중요성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짧은목항아리

살포

쇠낫, 쇠끌

쇠집게, 철도끼, 쇠못

용원리 유적
용원리 유적은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 산직마을 뒤편 야산에 위치하는 백제 초기의 대규모 분묘군으로 토광묘 137기, 석곽묘 13기, 용관묘 2기와 주거지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석곽묘는 토광묘와 함께 일정하게 배치되거나 구역을 달리해 조성되었다. 토광묘와 석곽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유물내용에 있어 같은 성격이나 석곽묘가 보다 화려하다. 토광묘에서는 흑색마연토기를 비롯 단경호, 발형토기 등 벡제초기이 토기류와 환두대도 등의 무기류, 금제이식.구슬류 등의 장식품이 출토되었다. 석곽묘에서는 중국제 흑유계수호, 금동용봉문.은상감환두대도, 관모장식,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용원리유적은 4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백제시대 대규모 분묘유적으로 당시에 천안지역의 위상과 문화상을 엿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짧은목항아리, 운전리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손잡이잔

천안의 관방유적
천안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관방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광방유적은 대부분 산성유적이라는 특징을 갖느다. 천안지역에는 20여개소에 이르는 산성유적이 알려져 있는데 위례산성, 사산성, 백석동 토성 등 많은 예가 있다. 대부분의 토성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천안지역이 한강이남 지역과 남부지역을 이어주는 길목으로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많은 관방이 축성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천안지역 산성분포도.

삼국시대 천안지역은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여러곳에 산성들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때까지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례산성 발굴모습

세발토기

쇠뿔모양손잡이, 기대편, 토기편

도장무늬굽다리사발, 토기편

토기편

흙으로 빚은 말

위례산성
위례산성은 천안시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호당리의 경계에 위치하는 관방유적이다.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는 위례산은 해발 529.5 m로 성거산과 함께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차량산맥 북서쪽의 천안, 직산, 입장, 안성 일대의 평야지대와 멀리 아산만과 평택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새이다. 산성은 산정상을 중심으로 한 테뫼식산성과 산성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포곡식산성이 연결된 복합형 산성이다. 테뫼식산성의 평면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고 구간별로 토석혼축성과 석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둘레는 950 m로 포곡식 산성까지 합하면 2 km 정도로 본다. 석성은 문지로 연결되는 경사가 심한 곳에 40 m 구간이 남아 있고, 높이는 4 m 가량이다. 토석혼축성은 1~2열의 석렬을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었는데 높이는 1.5 m 정도이다. 성내에 시설물로는 산성의 서북쪽 모서리에서 우물 1기가 조사되었다. 백제의 삼족기를 비롯한 토기편이 출토되고 있어 성의 초축연대를 4세기 까지 올려보는 연구자들도 있으나 현존하는 성벽의 초축시기와 관련된 유물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그 시기를 확실하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

안장틀

재갈

재갈, 표주박형 인수호

발걸이, 띠고리

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

화살통

쇠화살촉

쇠창

은세공봉황무늬고리자루큰칼

<출처>

  1. 안내문, 천안박물관,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