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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사막위의 고대도시

향신료 무역은 아시아와 동북 아프리카, 유럽 사이의 무역을 말하며 계피와, 생강, 울금등 향신료가 주요 물품이었다. 기원전 1,000년 이전 이집트인들은 아라비아반도에서 홍해를 통해 인도의 향신료 등을 거래했으며, 그 이전 신석기인들도 홍해를 통해 여러 물건들이 거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대항해시대 신항로가 개척되기 전까지 아라비아반도와 홍해를 경유하는 향료무역로는 지속되었다.

고대 향신료 교역의 주요 거점이었던 아라비아반도의 주요 도시들은 교역을 통해 부를 축척하면서 고대도시로 크게 번성하였다. 타이마, 울라 그리고 카르얏 알파우는 대표적인 무역거점으로 당시 부유했던 도시국가로 이곳에는 당시의 경제력과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들로는 기하무늬가 그려진 수준높은 토기들을 비롯하여,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는 각종 장신구와 청동기, 다양한 그림들이 조각된 사원 건축 부재들이 있다. 출토유물들은 인근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도 있으며, 여러 지역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독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막위의 고대도시: 타이마, 울라 그리고 카르얏 알파우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남부 아라비아에서 생산된 향료가 북쪽으로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 이집트와 지중해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전설적인 향료 교역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길 위에서 경제적 부를 축적한 국제 도시들이 번성했습니다. 아라비아 북서쪽의 타이마에는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가 10년 동안 지배하면서 새로운 예술 양식이 전파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리흐얀 왕조가 지배했던 울라는 거대한 조각과 사원이 가득한 웅장한 고대도시였습니다. 아라비아 남부와 북동부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교역로에 있던 까르얏 알파우는 가장 부유했던 도시 중의 하나로 지중해 지역 문화의 영향이 가미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아라비아의 고대도시들>

타이마(Tayma)
아라비아 북서쪽에 위치한 타이마는 거대한 오아시스가 있었기 때문에 기원전 3천년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천년 무렵에는 아라비아 북쪽과 동쪽을 잇는 향 교역로의 중요한 중간 경유지로서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타이마에서 출토된 토기와 청동기들은 메소포타미아나 동부 지중해 지역의 영향과 지역 토착 양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가 한때 점령하기도 했던 이 지역은 이슬람이 도래하던 7세기 무렵까지 북서 아라비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타이마의 홍수는 야자나무 한 그루도, 바위 위에 세우지 않은 어떤 성도 남기지 않는다.
– 6세기 아랍 시인 이므루 알까이스, 「무알라까트」 70행 –

<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이 그릇은 타이마의 사나이예에 있는 한 무덤에서 출토되었습니다. 타이마에서 출토된 토기 중 비교적 큰 이 사발은 질적으로도 우수한 토기입니다. 곱게 정제된 흙으로 나팔 모양의 형태를 만들고 외면에 적갈색으로 기하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채색 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반, 토기에 채색>

<채색 사발, 타이마, 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반, 토기에 채색>

고운 흙으로 만든 사발에 기하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구연부 안쪽은 흰 바탕에 검은 선을 교차하여 무늬를 채웠고, 바닥 면은 선으로 4개의 공간을 나누어 무늬를 넣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채색사발, 타이마, 기원전 12~9세기, 토기에 채색>

그릇 안쪽 면에 직선을 그어 여덟 공간으로 나누고, 네 곳에 왼쪽을 향한 새를 그렸습니다. 점과 선, 간략한 형태만으로 새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하여 타이마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이 드러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채색 사발, 타이마.시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흰 바탕에 기하무늬로 공간을 구획하고 각 공간에 새의 모습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채색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바닥이 깊어 모양이 원뿔에 가깝습니다. 외벽에는 흰 바탕에 적갈색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단에는 두 평행선 위로 불규칙한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기하무늬가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항아리,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채색 잔 또는 향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바닥이 편평하고 구연부에 작은 손잡이가 달렸습니다. 바깥 면은 긴 선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손잡이도 채색되었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것으로 보아 향로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붉은간토기, 타이마,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채색사발,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표면이 거칠고 물레질 할 때 생긴 홈들이 있습니다. 바깥면에는 나란히 그은 선 사이에 X자 문양이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항아리,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초, 토기에 채색>

몸체가 구형에 가깝고 구연부가 넓은 이 항아리는 거친 붉은색 점토로 만들었습니다. 바깥 면에는 평행선 세개가 구연부 아래쪽을 두르고 있고, 그 아래쪽에는 물결선 세 개를 그려 넣어 장식적인 효과를 높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항아리, 타이마, 기원전 7세기경, 토기에 채색, 항아리, 타이마, 기원전 7세기경, 토기>

<팔찌,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타이마의 무덤군에서 모두 여덟개의 조개 팔찌가 발굴되었습니다. 각 팔찌는 큰 조개껍질을 한 방향으로 자른 뒤 조개 안을 제거하고 잘린 가장자리 부분을 부드럽게 다듬어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청룡도끼, 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청동>


<청동검, 타이마, 기원전 1천년기, 청동>

타이마에서 출토된 청동무기는 전사를 상징하며 무덤에 부장되었습니다. 기원전 2천년 무렵에 북쪽의 시리아나 레반트 지역에서 사용한 청동검과 형태가 유사하여, 타이마와 레반트 지역 사이의 직접적인 교류를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목걸이, 타이마.사나이예, 기원전 1천년기 초, 조개껍질.돌.유리.나무>

펜던트의 크기와 모양, 재질이 다양합니다. 양 끝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보아 줄을 꿰어 목걸이로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나보니두스(Nabonidus)
기원전 6세기 중반 바빌로니아의 왕 나보니두스가 10년 동안이나 타이마에 머물렀던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전 아시리아의 왕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부유했던 북서 아라비아 지역을 지배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명문에서 그가 이곳에서 활발한 건축 사업을 펼쳤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보니두스가 타이마에 머물면서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이 지역에 널리 확산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바빌로니아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본격적인 침략을 받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노니두스 석비, 탁본, 타이마, 기원전 6세기 중엽, 사암>

긴 옷을 입고 왕관을 쓴 긴 수염의 인물로 왕을 표현하는 것이 당시 아시리아 왕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아치모양의 비석 윗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인물은 타이마에서 10년동안 머무른 나보니두스왕(기원전 556 ~ 539 재위)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주변에는 초승달, 날개달린 태양, 별과 같은 상징적인 도상들이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일부 판독 가능한 설형문자는 나보니두스가 타이마에 세운 화려한 건축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명문은 나보니두스가 아라비아 북서지역에서 정주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른 시기의 사료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명문이 있는 원판, 타이마, 기원전 6세기 중엽, 사암>

설명문자가 새겨진 두 조각은 원판모양의 조각 일부였습니다. 가장자리에 신바빌로니아 설명문자로 “바빌로니아의 전능한 왕 – 나보니두스의 그림과 석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주춧돌, 타이마, 기원전 5~4세기, 사암>

타이마의 함라 사원 유적에서 출토된 이 정육면체 형태의 돌은 건축물의 기단부를 장식했던 주춧돌로 추정됩니다. 두 면에 걸쳐 새겨진 도상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태양원반을 들고 있는 소가 중심에 있고 이는 이집트의 아피스 황소와 매우 유사하며 긴 옷을 입은 사제와 초승달과 날개달린 태양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상들도 혼재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함라 석비, 타이마.사스르 함라, 기원전 4세기경, 사암>

상부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징적인 도상들이 있고, 아랫부분에 일부 판독이 가능한 아람 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 아람 어는 국제 무역어였습니다. 명문에는 리흐얀 왕실 가문의 아들이 봉헌물을 바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로써 이 비석의 연대는 타이마가 리흐얀왕조의 지배 아래 있던 기원전 4세기경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그림이 새겨진 석판, 타이마, 기원전 4세기, 돌>


<묘비, 타이마, 기원전 5~4세기, 사암>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비석에는 직사각형의 틀 안에 낮은 부조로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자드의 아들 타임을 기념하여”라는 아람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비석은 남부 아라비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북서부 아라비아와 남부 지역 간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머리조각상, 타이마, 기원전 4~2세기, 사암>

머리의 크기로 보아 원래 약 4 m 크기의 거대한 석상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이집트 인들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 넘긴 모습이지만 리흐얀 왕들을 표현한 조각상들과도 비슷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석상 조각, 타이마, 기원전 4~2세기, 사암>

이 석상은 무릎까지 덮는 천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천을 고정시키는 벨트 왼쪽 끈 부분에 붉은 안료가 남아 있어 이 조각상이 일부 채색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뒷면은 편형하여 기둥이나 벽면에 기대에 세워졌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제단의 부분, 타이마, 까스라 함락, 기원전 5~4세기, 사암>

붉은 사암으로 만든 이 물건은 탁자나 제단 등 종교용품의 아랫부분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아람어 명문이 있는 세면대, 타이마, 기원전 1세기경, 사암>

녹색을 띠는 사암 덩어리를 조각하여 만든 이 세면대에는 아람어 계열인 나바테아 문자로 쓰여진 명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합이라는 사람이 자신과 후손들의 영혼을 위해 여신 만화에게 봉헌한다는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아인자완(Ayn Jawan)
타투만의 북서쪽에 위치한 아인 자완은 아라비아에서 매우 규모가 큰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 9개의 방으로 조성된 대규모 가족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무덤에는 남성 3명, 여성 1명이 묻혀 있었고, 금 목걸이와 귀걸이와 같은 화려한 보석들이 함께 묻힌 여자 아이의 무덤도 있었습니다. 이 가족 무덤은 지중해 지역과의 교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류층 가문의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목걸이.펜던트, 아인 자완, 2세기, 금>

<목걸이, 아인자완, 2세기, 금.마노.자수정.홍혹수.진주>

<귀걸이, 아인자완, 2세기, 금>

<장신구, 아인 자완, 2세기, 금.진주.준보석>

타즈의 무덤(Tomb of Thaj)
1998년 여름, 아라비아 북동쪽 주바일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인 타즈에서 1세기 무렵에 조성된 6세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의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소녀의 얼굴에는 황금 가면이 놓여 있었고 금과 루비, 진주, 터키석으로 장식된 목걸이와 아르테미스 여신이 새겨진 금귀걸이를 차고 있었습니다. 소녀 주변에는 200개가 넘는 금으로 된 단추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지중해에서 온 화려한 수입품들이 가득한 이 무덤은 부유한 가문의 자녀에 대한 애뜻한 사랑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동쪽까지 확산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사람 모양의 침대 다리, 타즈, 텔 알지에르, 1세기, 철.역청.납.>

소녀가 누웠던 침대는 지중해 양식으로 꾸몄고, 침대 다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카메오가 있는 목걸이, 타즈.엘 알자예르, 1세기, 금.진주.터키석.루비>

소녀의 머리맡에 있던 목걸이는 루비, 진주, 터키석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황금가면과 황금장갑, 타즈.엘 알자예르, 1세기, 금>

소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황금 가면에는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만 간단히 표현되었습니다. 가면의 크기로 보아 여자 아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장신구(팔찌, 목걸이, 금판), 타즈.텔 알지예르, 1세기, 금.진주.터키석.루비>

소녀가 누웠던 자리에서 발견된 금판의 일부에는 제우스 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주전자, 타즈, 기원전 3~1세기, 토기>


<조각상, 타즈, 기원전 3~1세기, 토기에 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