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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가리포진, 객사 건물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 수영

가리포진은 완도읍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영으로 첨사가 파견되었다. 완도는 남해안 연안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통일신라 때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었다. 청해진이 해체된 이후 조선초까지는 인근 강진현과 해암군, 영암군에서 분할하여 관장하였으며, 조선 중종 때 수영이 설치되었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 군내리에는 가리포진에서 사용했던 관아 건물인 객사가 남아 있다. 조선후기 경종 때 가리포진 첨사 이형이 처음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구한말인 179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이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가리포진 관아>

완도 부근 해역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수군 진영인 가리포진에서 사용했던 관아 건물인 객사이다. 정면에 ‘청해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객사 건물>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으로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가,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가운데 정청을 두고, 양쪽에 익랑이 있는 일반적인 관아 객사에 비해 건물 규모가 작은 편이다.

<정청 내부>

가운데 대청마루,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를 모셨던 공간이다.

<오론쪽 1칸규모의 온돌방>

이곳을 찾은 관리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이다.

<옆쪽에서 본 모습>

앞쪽에 마루를 비교적 넓게 두고 있다.

<객사 마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 출입문 너머로 지금은 마을 건물들이 보이지만, 배들의 정박했던 포구가 내려다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솟을삼문 형식을 하고 있는 객사문>

‘호남제일번’이러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객사 뒷편 고목>

객사 뒷편에 있는 오래된 고목이 이곳에 관아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가리포진 선박들이 정착했던 완도항>

완도 객사, 전남 완도군 완도읍 주도길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로 객관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는 1279년(충렬왕 5) 8월에 객관을 처음 지었다는 기록이이 있으나, 실제로는 고려 초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으며,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했다. 완도 객사는 1722년(경종 2)에 가리포진 124대 첨사 이형이 세웠다. 1869년(고종 6)에 첨사 이위소가 중수하였으며, ‘호남제일번’이란 현판은 1854년(철종 5) 첨사 홍선이 쓴 것이다. 이 객사는 일명 ‘청해관’이라고도 불린다.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출처>

  1. 안내문, 완도군청, 2018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