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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통일신라의 대외교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이루었던 7~10세기의 동아시아는 국제적인 성격이 강했던 강력한 당왕조를 중심으로 비교적 안정적이면서 개방적 성격이 강했던 시기이다. 이시기 통일신라는 주로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 서역, 일본과 교류하였다. 당으로는 견당사와 구법승, 숙위학생을 파견하고, 신라방을 설치하는 등 밀접하게 교류하였다.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과 최치원, 혜초 등으로 대변되는 당나라 유학생, 당나라세 소재했던 신라방 등 역사 기록에는 수많은 대외교류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 또한 나라시대 일본과는 긴밀한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는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 도다이사 쇼쇼인(正倉院)에 소장된 유물 중에서는 당시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 남아 있는 유물이나 유적지는 그리 많지는 않으며, 유적으로는 완도의 청해진만이 당시의 활발한 대외교류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통일신라의 대외교류 흔적들은 고대국가나 삼국시대에 비해서도 유물이 빈약해 보이며, 당시에 크게 성행하였던 차문화, 중국 당나라 월주요에서 생산되었던 청자 등 도자기 등 통일신라시대 대외교류를 나타내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통일신라 유물 중 상당수는 중국 서안지역에서 출토되는 당나라시대 유물들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볼 때 당시 당나라와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항아리, 경주 충효동, 중국 6~7세기, 청동, 향을 담는 그릇, 6.출토지모름, 중국(당), 금동

허리띠꾸미개, 1. 경주 장군로, 남북국시대(통일신라) 7~8세기, 청동, 2.경주 구정동, 남북국시대(통일신라) 7~8세기, 은

꽃모양접시, 3.황해도 평산, 남북국시대(통일신라) 9~10세기, 청동

손잡이 향로, 4.출토지모름, 중국(당), 청동

사리단지, 5.경주 전 황룡사지,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은

동물 포도무늬 거울, 7.부여 쌍북리, 중국(당), 청동, 8.출토지모름, 중국(당), 청동, 9.출토지모름, 중국(당), 청동,

동물 포도무늬 거울,10.출토지모름, 중국(당), 청동, 동물무늬거울, 11.출토지모름, 중국(당), 청동.은

청자완, 1. 군위 인각사, 중국(당), 청자, 2.공주, 중국(당말-오대), 청자

청자 뼈 항아리, 3.경주 삼릉부근, 중국(오대), 청자

통일신라 유적에서 발견되는 도자기는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대부분 중국 저장성(浙江省) 월요(越窯)에서 제작된 것이 많다. 특히 수도인 경주에서 출토된 월요 청자의 대부분은 품질이 뛰어난 것이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월요가 만든 최고 경지의 청자인 비색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보상화무늬 수막새, 1.출토지모릅,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2.출토지모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새무늬 수막새, 3.출토지모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보살무늬수막새, 4.출토지 모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당초무늬암막새, 5.출토지모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6.출토지모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보상화무늬전돌, 7.경주 월지,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사자무늬수막새, 8.경주,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보상화 무늬 수막새, 9.출토지모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토제.

돌함과 뼈단지, 국보, 경주, 남북국시대(통일신라) 8~9세기, 돌.녹유

삼채낙타, 출토지미상, 중국(당), 삼채, 삼채서역사람, 출토지미상, 중국(당), 삼채

합, 1.경주, 남북국시대(통일신라) 6~7세기, 연유, 2.경주, 남북국시대(통일신라) 6~7세기, 연유

항아리, 3.출토지미상, 남북국시대(통일신라) 6~7세기, 연유, , 4.출토지미상, 남북국시대(통일신라) 7~8세기, 녹유


항아리, 5.전 경상도, 남북국시대(통일신라) 7~8세기, 녹유, , 6.전 경남, 남북국시대(통일신라) 7~8세기, 녹유

녹유토기
통일신라는 당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의 많은 문물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왕경 유적에서는 당으로부터 수입된 도자기나 금공품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당삼채는 통일신라와 당의 교류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한편 당삼채가 유통되던 신라에서도 삼채와 비슷한 기술로 만든 녹유 토기가 유행하였다. 녹유토기는 표면에 낮은 온도에서 발색되는 연유계통의 녹유를 발라 구워 낸 토기이다. 주로 7세기 전후에 출현하였으며 통일신라에서는 뼈단지로 주로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동아시아와의 교류 
통일신라는 당으로 견당사와 숙위학생, 구법승을 파견하고, 신라방의 설치를 통해 당과 밀접하게 교류했다. 또 나라시대 일본과도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었다. 일본 도다이사(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된 소장품 중에는 통일신라와 일본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 많다. 또 경주 괘릉과 흥덕왕릉을 지키는 무인상은 서역과의 교류를 잘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다를 통한 교류
통일신라는 드넓은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 서역, 일본과 교류하여 한자문화, 차문화, 불교, 도자기 등의 문물을 도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통일신라는 동북아시아의 해상을 장악하면서 이 지역의 문화교류에 이바지한 해상왕국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9세기에 동북아시아의 바닷길을 장악하여 삼국 사이의 무역을 주도한 것이 장보고와 청해진이다. 바다를 통한 문화교류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도자기와 차문화으 수입이다. 통일신라에서는 왕경과 지방에서 중국 월주요에서 생산한 도자기를 널리 사용하였고, 귀족과 스님을 중심으로 차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 또한 바다를 통하여 신라의 승려들이 당으로 유학을 가서 새로운 선종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문화교류를 통하여 신라는 독자적이면서도 국제적인 문화를 향유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