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벌교읍 옛 보성여관 건물, 벌교읍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었던 벌교읍 옛 일본인 거리에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어진 것으로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양식이 섞여 있는데 일본식 건물양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건물은 2층으로 된 주 건물과 부속건물들이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벌교읍에서 공공건물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토벌대의 숙소로 사용된 남도여관으로 소개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에 남아 있는 옛 보성여관 건물. 벌교읍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옥과 일본식 가옥 양식이 섞여 있는 건물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여관과는 달리 지역을 대표하는 호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여관 출입문. 도로 방향으로는 상가건물처럼 지어졌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9-20180324출입문을 들어서면 숙소가 있는 마당으로 복도가 연결되어 있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10-20180324지금은 방문객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로옆 공간. 식당 등으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보인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11-20180324전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8-20180324가운데 복도를 지나면 아담하게 꾸며놓은 작은 마당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묵는 숙소가 배치되어 있다. 전통 한옥의 ‘ㅁ’자형 공간배치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1-20180324전통한옥의 대청마루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넓은 마루.

보성 벌교 보성여관 02-20180324툇마루가 있는 한옥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3-20180324일본식 목조주택 양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

보성 벌교 보성여관 07-20180324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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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복도.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보성 벌교 보성여관 05-20180324다다미를 깔아놓은 2층.

보성 벌교 보성여관 04-201803242층 창문에서 보이는 벌교읍.

보성 벌교 보성여관 06-201803242층 복도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당과 숙소건물들.

OLYMPUS DIGITAL CAMERA보성여관이 있는 벌교읍 거리. 경전선 벌교역에서 낙안읍성으로 연결되는 도로 주위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성한 일종의 신도시였던 공간이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인 가옥들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전형적인 시골 소읍 풍경으로 바뀌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벌교읍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옛 보성여관 건물.

남도여관
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인들은 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헐어버리고 시멘트 건물들을 짓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이런 건물들은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는 문자의 기록만이 아니다. 유물을 보았을 때 설명이 필요 없이 지난 시대를 한순간에 실감하게 된다. 수난과 고통의 역사일수록 그 시대의 유물은 남겨지고 보호되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 본전통이라고 불렸던 이 길에 이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시절에도 이 건물은 여관이었고, 그때의 실제 상호는 보성여관이었다. 소설에서는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한다.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

지금이 어느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 (태백산맥 3권 85쪽)

<출처>

  1. 안내문, 보성군청,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