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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영취산 흥국사, 전라좌수영과 함께 했던 호국사찰

전남 여수시 중흥동 영취산 자락에 있는 사찰인 흥국사이다. 고려중기 불교개혁을 이끈 지눌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호국의 염원을 담아 흥국사라 이름지어졌던 남해안 변방의 작은 사찰이었다.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조선초 불교 탄압으로 폐허화 되었던 것을 조선중기 명종 때 법수화상이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참전하면서 전라좌수영의 지원을 받아 호국사찰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기 인조 때 계측대사가 사찰을 크게 중창하면서 600여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큰 사찰로 변모하였다. 대웅전(보물)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불전과 요사채 등이 이 시기에 지어진 것들이다. 흥국사는 구한말까지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승병체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전국의 승병들과 연계한 조직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조선후기 산성 축성의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흥국사 홍교를 비롯하여, 선암사 홍교와 벌교 홍교에서도 당시 승려들의 토목기술 수준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승병들이 기거하면서 수행활동을 했던 곳으로 조선후기 불교문화와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여수 흥국사>

조선후기 전라좌수영과 연계하여 600여 명이 넘는 많은 승병들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전형적인 호국사찰이다. 흥국사에는 대웅전(보물), 홍교(보물),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등 많은 문화재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들어가는 길

흥국사는 여수시 입구 여천공단에 뒷편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화학공장들이 자라잡고 있는 공단지역으로 주택이나 마을이 거의 없지만, 흥국사 계곡으로 들어서면 조용한 숲속길과 계곡이 어울져 있다. 이곳에는 원래 성벽과 성문인 공북루가 있었다고 하며, 승병들이 토목기술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홍교(보물)가 사찰 입구에 세워져 있다. 홍교를 지나면 흥국사 중창을 기념하여 세운 사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작은 개울 돌다리를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 안쪽에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거나 신도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강당 건물인 봉황루가 있는데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사찰 입구 계곡에서 볼 수 있는 홍교(보물)>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로 아치의 높이가 가장 가장 높고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인 인조 17년(1639) 흥국사를 중건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교에서 내려다 본 흥국사 계곡>

화학공장이 즐비한 공단에 위치하고 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졌다. 계곡 옆에는 이곳에 식당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조물들이 남아 있다. 한때는 북적거리던 행락지였음을 알 수 있다.

<홍교를 지나서 숲길을 걸어가면 볼 수 있는 흥국사 입구>

<흥국사 사적비. 조선중기>

흥국사가 크게 중창된 이후 그 내력을 새겨놓은 비석이다.

흥국사 중수 사적비, 1703년(숙종 29년)
흥국사의 창건과 중수 등에 대해 기록한 사적비로서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인 최창대가 지었으며, 비문을 쓴 이 역시 당대 명필이었다. 비문에는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담당과의 관계, 송광사가 세워진 직후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사실, 1560년(명종 15년) 법수화상에 의해 사찰 건물 1천여간이 증축되었다는 것, 1624년(인조2년) 계특의 대대적인 사찰 중건의 사실, 통일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이 썼는데,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조선에 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갖 고충을 극복하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중건 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을 비롯한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 석동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여수 흥국사, 2012년)

<흥국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승들의 부도>

<흥국사 출입문인 천왕문>

<강당 건물인 봉황루>

천왕문을 들어서면 상당히 큰 규모의 강당 건물인 봉황루를 볼 수 있다.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25년에 고쳐졌다. 강당은 법회를 여는 공간이지만 좌수영 객사인 진남관처럼 승병들이 회의 등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웅전 영역 사이 중문을 두고 있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아마도 유생들이었던 지방 관료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머물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도 보인다.

<안쪽에서 본 봉황루>

대웅전 영역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는 공간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사찰의 공간배치를 볼 수 있다. 석가삼존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요사채인 심검당과 적묵당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불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양쪽 요사채는 승병들이 기거했던 사찰답게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반면에 사리를 모신 석탑은 두지 않고 있다.

<흥국사 대웅전 영역>

<대웅전 영역을 출입하는 중문인 법왕문>

강당이 있는 영역과 공간적으로 분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조선중기 인조 2년 흥국사가 중건될 때 새로 지어졌는데 동시대를 대표하는 불전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석가삼존불(보물)를 모시고 있으며 뒷면는 영산회상을 표현한 후불탱화(보물)가 있다. 불단 위에는 닫집을 두어 장엄함을 더해주고 있다.

<대웅전 내부>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보물)>

한지에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 만든 첩부벽화이다.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대응전 앞 석등>

거북이 등에 석등이 올려져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를 향해 타고 가는 배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전라좌수영과 연계된 흥국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인 적묵당>

  조선중기 흥국사가 중창될 때 처음 1624년에 세워 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앞면 4칸 규모의 상당히 큰 건물이다.

<심검당>

1645년 중건될 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895년에 중수되었다. 일반적인 요사채는 보통 낮은 지붕에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반해 흥국사 요사채는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불전처럼 크고 웅장한 건물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많은 승려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범종각>


<흥국사 동종(보물)>

조선중기 사인비구에 버금가는 역량을 지녔던 김애립이 1665년에 조성한 종이다.

불전과 요사채 등

흥국사에는 조선중기 이후 크게 번창한 호국사찰로 그 특징을 보여주는 여러 불전들을 두고 있다. 옛 대웅전 건물의 부재들을 활용하여 지은 팔상전을 비롯하여, 수행하는 승려들을 상징하는 웅진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셨던 불조전, 전란을 통해 죽은 승려들이나 신도들을 위한 지장보살을 모신 무사전과 남해안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관음보살을 보신 원통전이 있다.

<대웅전 옆에 위치한 무사전>

지장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보통 지장전이라 부르는데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공간이다. 다른 사찰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것은 그 내력이 오래되었기 때문으로 승병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희생된 이들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사전에 모셔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조선중기 인조 때 조각상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권속들을 표현한 21점의 불상들과 발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팔상전>

조선중기 인조 때 흥국사를 크게 중창할 때 옛 대웅전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크게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팔상전 옆 웅진전>

흥국사는 많은 승병들이 수행하면서 거처했던 사찰로 석가모니의 제자를 모신 웅진전을 중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국사 십육나한도(보물)>

조선후기 십육나한도의 본보기가 되었던 작품이라 한다.

<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불조전>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공간으로 보통 조사당이라 부르는 불전이다.

<불조전 내부>

<적묵당 뒷편 백련사>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요사채이다. 양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백련사 뒷편에 위치한 선방인 해동선관>

양반들이 살았던 전통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물로 흥국사 주지 등 고위층 승려가 머무는 공간으로 보인다.

<흥국사 전경>

진달래가 유명한 영취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다.

<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18세기 화승 비현이 참여해 그린 그림으로 색채가 선명하고 아름다우며 장식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흥국사 수월관음도(보물)>

18세기 최고 화승 의겸이 그린 그림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1. 안내문,여수 흥국사,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