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연동리 마을, 윤선도 유적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에 있는 연동리마을이다. 조선후기 문신 윤선도가 살았던 고택 녹우당이 있는 마을로 해남의 대표적인 고산 윤선도 유적지이다. 조선중기 윤효정이 처음 터를 잡고 살았으며, 종택에 해당하는 녹우당과 마을 재실인 추원당, 윤효정 사당과 고산 사당 등이 남아 있다. 마을 입구에는 큰 연못과 유물전시관이 있으며, 안쪽에 마을 내력을 보여주는 수백년 수령을 자랑하는 큰 은행나무가 있고, 마을 뒷편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비자나무 숲이 있다.

연동리마을 해남 윤씨는 조선후기 장자 상속 전통이 자리잡은 대표적인 집안으로 큰 부를 축적하였다.  유물전시관에는 해남윤씨 집안에서 소장한 많은 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데,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 고려시대 노비문서(보물 483호), 윤두서가 그린 그림 등 서화첩(보물481호), 종가 문적(보물 482호) 등이 있으며, 마을 뒷편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전통마을이지만 종택인 녹우당 외에는 큰 규모의 고택이 남아 있지는 않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 연동리마을 입구. 이곳이 고산 윤선도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입구에 있는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연못. 대지주계층이었던 해남윤씨 집안에서 농사를 위해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해남윤씨 고택인 녹우당(사적 167호). 연동리마을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마을이지만 녹우당 외 큰 고택은 남아 있지 않고 마을 규모 또한 크지 않은 편이다.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앞에 조성된 광장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사랑채. 윤선도가 효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수원에 있던 집을 옮겨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안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 대나무숲

SANYO DIGITAL CAMERA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녹우당 내 사당.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옆 윤선도를 모시는 고산사당.

SANYO DIGITAL CAMERA고산사당 뒷편에는 입향조인 윤효정을 모시는 어초은사당이 있다.

SANYO DIGITAL CAMERA마을 뒷편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 마을 입향조인 윤효정이 처음 조성한 인공숲이라 한다.

해남 연동리의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 241호,
해남윤씨의 중시조인 효정이 500년 전 심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 하며 가장 큰 나무는 높이 20 m 내와, 가슴높이의 지름이 1 m 정도이다. 위쪽에 커다란 참식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고 아래쪽은 곰솔이 우거졌으며, 소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다. 가장 큰 곰솔은 높이가 25 m, 지름이 1 m 정도이다. 숲 속에는 사스레피, 참식, 개비자, 모새, 자금우, 동백, 마삭덩굴, 남오미자, 송악 및 보리밥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종과 더불어 맥문동, 소엽맥문동 및 춘란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주변에는 참나무류 및 서어나무류 등의 낙엽활엽수로 싸여 있다. 비자나무숲 밑에 있는 곰솔숲 앞에는 해남윤씨의 선조를 모신 사당이 세워져 있다. 1972년 7월31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뒷편 재실로 가는 길.

SANYO DIGITAL CAMERA마을 재실인 추원당.

SANYO DIGITAL CAMERA녹우당 앞에 있는 옛 유물전시관.

해남 연동리마을 22-20140418

윤두서 자화상(국보 240호). 유물전시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해남윤씨 집안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해남 연동리마을 21-20190708 윤단학 노비허여문기 및 입안(보물 483호). 고려 공민왕 때 윤광전이 그의 아들 윤단학에게 노비를 상속한 문서이다. 송광사 노비첩과 함께 대표적인 고려시대 문서이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이 곳은 조선조의 문신이요,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일컫는 윤선도(1587~1671) 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의 자는 약이, 호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선생은 광해 4년(1612)에 진사되고, 4년후 성균관유생으로서 권신의 횡포를 지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벽지에 유배되었다. 광해 15년에 인조반정이 일자 석방되어 의금부도사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이곳 향리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인조 6년(1628) 별시문과의 초시에 장원한 후 봉림과 인평을 모시는 왕자시부가 되고 한성서윤과 예조정랑을 역임하는 등 수차에 걸쳐 나라에 중용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주로 완도의 보길도와 해남의 수정동 및 금쇄동에 은거하여 자연에 들어 원림을 경영하고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 등 불후의 명작을 이루어 조경문화 및 국문학의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그 사이 효 종의 부름으로 벼슬에도 나아갔으나 당쟁으로 다시 유배당하는 등 많은 파란을 겪다가 현종 12년에 85세로 졸하였는데 숙종 원년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를 충헌이라 하였다. 이곳 유적지에는 선생이 시문에 열중하던 해남윤씨 종가의 고택과 녹우당(사적 제167호), 그리고 그의 선조 어초은사당 외에 고산사당 및 추원당이 있고 유물전시관에는 윤공재 자화상(국보 제240호)을 비롯하여 해남윤씨가전고화첩(보물 제481호), 윤고산수적관계문서(보물 제 482호), 지정 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2호) 등 소중한 유물이 있다. 뒷산 중로에 있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은 약 500년전 선생의 선조가 이루어 놓은 수림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해남군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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