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 유적(사적)이다.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인 전봉준이 살았던 옛집이다. 구한말(1878)에 처음 지어진 건물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로 초가지붕을 하고 있다. 부엌.큰방.웃방.끝방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이 민가와는 다른 배치를 하고 있다 고택 앞 마을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공동우물이 남아 있다. 전봉준에는 이곳에서 농사일과 동네서당 훈장을 지내며 살았다고 한다.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옛 집(사적).
옛집은 앞면 4칸의 ‘-’형을 하고 있는 작은 초가집이다. 건물 오른쪽에 부엌이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고택 앞에 있는 우물. 이곳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우물이다.
전봉준 선생 고택 우물
예로부터 우리고장 정읍은 수질이 좋은 물이 풍부한 고장으로 알려져 왔으며 곳곳에 우물이 형성되고 각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발달하여 왔다. 이 우물은 조소마을 주민들이 사용해 온 공동우물로 근대사의 여명을 밝힌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선생이 이곳에 거주할 때 사용했던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전봉준선생 고택지, 사적293호, 전북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남향으로 터를 잡은 이 초가집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 전봉준(1854 ~ 1895)이 살던 곳으로, 조선 고종 15년(1878)에 지어졌다. 동쪽으로부터 부엌.큰방.윗방.끝방이 나란히 달린 집으로, 남부지방 일반 민가의 구조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전봉준은 농사일과 동네 서당의 훈장 등을 지내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를 거두는 등, 농민에게 각종 수탈을 자행하자 고종 31년(1894) 분노에 찬 천 여명의 농민을 이끌고 고부관아를 공격 조병갑의 잘못을 응징하였다. 이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당기는 서막이 되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출처>
-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