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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만인의총(사적), 정유재란 남원전투에서 희생된 이들이 함께 묻힌 곳

전북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만인의총(사적)이다. 이곳은 정유재란 남원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이 전투에서 만여명의 조.명연합군과 백성들이 희생되었는데 임진왜란 직후 시신을 한곳에 묻었으며 광해군 때 (1612년) 충렬사라는 사당을 세웠다. 무덤은 원래 남원역 부근에 있었는데 1964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성역화하였다. 유적지에는 시신을 묻은 봉분, 죽은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세운 조형물, 기념관 등이 있다.

남원전투는 1957년 8월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였다. 당시 조.명연합군은 양원을 비롯한 명군 3000 여명과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조선관군 1000여명이 남원성을 지키고 있었던 반면 왜군은 고니시를 중심으로 56000여명의 대병력이 호남지방을 공략하기 위해 남원성으로 집결하였다. 조.명연합군은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크게 패하고 만여명의 민.관.군이 희생되었다. 남원을 함락시킨 왜군은 전주를 무혈입성하고 충청도까지 진출했으나 명랑해전으로 보급로에 문제가 생겨 더이상 진격하지는 못하였다.

<남원 만인의총(사적)>

정유재란 남원전투에서 희생된 만여명이 함께 묻힌 무덤이다. 원래 주택가에 있었는데 1964년 사당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성역화하였다.

<남원전투에서 희생된 8충신을 모신 사당인 충렬사>

임진왜란 후 광해군 때 처음 세워졌다.

<사당 내부>

<만인의총 무덤>

당시 전투에서 희생된 만여명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1964년에 세워진 ‘만인의총’ 비석>

<유적지 앞 기념 조형물>

<만인의총 기념 비석>

<전투가 벌어졌던 남원읍성(사적)>

만인의총, 사적 272호, 전북 남원시 향교동
이곳은 정유재란 때 왜적을 맞아 남원성을 지키다가 순절한 민.관.군을 합장한 무덤이다. 남원은 호남 곡창의 관문이자 서울로 통하는 길목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선조 30년(1597) 8월 오만 육천의 왜군이 남원성을 에워싸고 공격하였다. 성안에서는 정기원.이복남의 지휘 아래 민.관.군이 굳게 뭉쳐 성을 방어 하였다. 결국 성이 함락되어 거의 만명에 달하는 주민과 관.군이 죽음을 맞았다. 파괴 또한 극심하여 성안에는 겨우 민가 17가구만이 남았다. 난이 끝난 뛰에 순절한 이들을 한곳에 묻고 그들을 추무하는 사당을 지었다. 광해군이 이 사당을 충렬사라고 이름지었다. 근래에 무덤과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였다. 두려움과 고통을 감내한 의로운 선조의 강직한 절개가 새삼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출처>

  1. 안내문, 남원시청, 2010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4. 위키백과,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