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유역과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은 고대 한.중.일 무역로 주요 거점으로 오랜 세월 중국, 일본과 교류해 왔다. 삼국시대에도 백제의 영향권에 들어갔지만 지방세력으로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오다 점차 백제에 흡수된다. 반면에 전남 동부지역은 가야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전남지역에서는 중국과 교류를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장고형고분, 곱은옥, 야요이토기 등 유적과 유물로서 일본과의 교류를 확인해 주고 있다.
금동관모,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삼국시대.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지역세력에게 나누어준 위세품으로 보여지는 금동관모이다.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동북아시아 속의 마한
광주.전남지역 선사시대에는 결합식낚시바늘, 귀걸이, 흑요석, 화천, 오수전, 동경, 중국식동검, 납-바륨계 유리, 낙랑토기, 야요이계토기, 하지키계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런 문물은 광주.전남지역이 신석기시대부터 일본열도, 중국과 문화교류가 활발하였음을 보여준다. 마한이 기원후 286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고, 4세기 후반 백제왕권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광주.전남지역에 금동관모.금동신발.금속.유리제 장신구 등이 돌방무덤에서 출토된다. 이러한 위세품은 삼국시대부터 마한이 중국, 일본, 백제와 정치적인 교류로 성격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전남 동부지역은 4세기 후반 ~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가야계문화가 확인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오수전, 여수 거문도, 중국 한~수. 한.중.일 무역교통로에 위치한 전남지역에서는 낙랑 등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중국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당시 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동전을 들 수 있다.
금박유리구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삼국, 빈구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삼국, 구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삼국, 백자완, 광양 마로산성, 중국, 청자완, 광양 마로산성, 중국
기원전 4~3세기 경 중국으로부터 철기문화가 유입되면서 화천, 오수전, 동경, 중국식동검, 납-바륨계 유리, 낙랑토기 등 중국문물이 함께 들어온다. 마한은 3세기 후반까지도 중국 서진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중국과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 7세기 무렵에는 중국의 통일왕조인 수나 당을 통하여 도자문화가 전해진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그릇받침, 순천 덕암동, 굽다리항아리, 해남 가좌리, 긴목단지, 순천 덕암동, 그릇받침, 순천 운평리, 가야. 전남 동부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가야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토기들이다.
굽다리접시, 광양 원월리, 고흥 신촌, 순천 왕지동, 가야
전남 동부지역은 6세기 전반까지 가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순천 운평리.용당동.왕지동, 여수 죽림리에서 확인된 가야계 돌덧널무덤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지역 가야 문화는 가야연맹체의 성쇠와 함께 변천한다. 4세기 후엽 ~ 5세기 전반에는 금관가야 및 아라가야문화가, 5세기 ~ 6세기 초에는 소가야계 문화가, 5세기 말 ~ 6세기 전반에는 대가야 문화가 나타난다. 이후 백제의 진출과 함께 가야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백제문화에 편입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딸린곱은옥, 일본 고분시대, 순천 월산리 반원. 곡옥은 일본 천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 중 하나로 고대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입큰구멍단지, 일본 고분시대, 무안 맥포리, 광주 동림동, 영암 만수리, 무안 사창리, 장군, 일본고분시대, 광주 산정동, 광주 하남동
광주 전남지역은 신석기시대부터 일본열도와 밀접히 교류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와 청동기 제작기술을 일본 야요이시대 성립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야요이계 토기와 하직기계 토기는 이를 뒷받침한다. 6세기 무렵에는 영산강유역에 일본 스에키토기를 비롯하여 일본과의 연관성이 제기되는 무덤들과 백제계 문물이 등장하면서 일본과 백제의 문물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영산강 유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장고형고분. ‘전방후원분’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일본의 고대 무덤 형식이다.
장고형고분
6세기 후반 이후 마한 지역에 원형 분구를 갖춘 백제식 돌방무덤이 유행할 무렵, 영산강 유역이나 서해안 지역에 둥근 분구 앞부분에 네모난 봉토를 덧붙이 형태의 장고분이 나타난다. 이른바 ‘전방후원분’이라고도 하는 장고분은 무덤의 외형 뿐 아니라 원통형토기 등 일본 관련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있어 무덤의 성격에 관하여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목간, 복제품, 나주 복암리.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목간이다. 복암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향을 받은 영산강 유역 지방세력의 무덤으로 당시 사람들이 중국과 거래, 행정 등을 위해 문자를 사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토제잔, 삼국시대, 보성 도안리 석평, 해남 황산리 분토
전달린토기, 삼국시대, 광주 양과동 행림, 작은단지, 삼국시대, 무안 맥포리, 영암 신연리
긴목잔, 삼국시대, 해남 황산리 분토, 보성 도안리 석평, 영암 만수리, 굽다리 완, 광주 평동, 주전자, 광주 동림동,
뚜껑접시, 삼국,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짧은목항아리,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말띠꾸미개, 삼국,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굽다리접시,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문자와 차 문화
6세기 후반, 마한 지역에 들어온 백제문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문자’이다. 나주 복암리유적에서는 모두 65점의 목간이 출토되어, 이 시기 활발한 문자 생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목간은 행정문서나 세금 관련 기록, 물자 이도에 따른 꼬리표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목간에는 먹으로 글씨를 쓴 경우가 많으며, 글씨를 지울 때는 손칼을 사용하였다. 차(茶)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의 신라 흥덕왕 3년(828) 기사에서 확인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4~5세기 무렵 불교 수용과 함께 차 문화도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광주 동림동유적 출토 토기 주전자에는 물 따르는 주구 안쪽에 거르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차와 관련된 용기로 추정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쇠낫, 삼국,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쇠손칼,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미늘갑옷,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긴칼,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쇠투겁창,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물미,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마한속의 백제문화
369년, 백제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벌한 후 재지세력자들에게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중국도자기 등 당시 희귀한 물품을 내려주는 간접지배 방식을 채택하였다. 천안이나 익산, 나주 등지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이런 물품들은 백제문화의 확산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목간을 사용한 문서의 유통이나 차문화 같은 백제 상류층의 귀족문화도 함께 전해져 마한의 전통 문화는 점차 약화된다. 6세기 부반부터는 마한 토착묘제를 대신하여 백제계 돌방무덤이 수용되면서 완전히 백제문화에 흡수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안동고분은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안동마을에 있다. 2006년, 전남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여 분구 정상부에 1기의 돌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에서는 금동관모를 비롯하여 금동신발, 금동귀걸이, 청동거울, 철제갑옷과 투구, 고리자루칼, 살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동관모는 백제왕실에서 지방 유력자에게 하사한 사여품으로, 멀리 떨어진 해안지역까지 백제 중앙의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2018년)
<출처>
-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