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성(사적)이다.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간 분쟁이 많았던 충주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고구려와 신라가 세력권의 표시로 만든 충주 고구려비(국보 205호)와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6호)이 남한강을 따라 약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은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장미산(337.5 m)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둘레는 약 2.9 km 정도이다. 성벽은 중간 크기의 돌을 대강 다듬어 석축을 쌓았는데 높이는 5 m, 폭은 약 5 ~10 m 정도이다. 성벽 일부는 온전하게 남아있고 많은 부분은 허물어져 있지만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산성 중심부 장미산 정상에 올라서면 남한강 주변 충주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충주 장미산성(사적). 삼국시대 한강유역까지 진출했던 고구려가 쌓은 여러 산성 중 하나이다. 중간크기을 돌을 대충 다듬어 촘촘히 쌓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벽은 일부 훼손되기는 했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장미산성 북쪽 계곡에 위치한 작은 사찰인 봉학사에서 산성 탐방을 시작할 수 있다. 이 곳 주변 성벽이 훼손되어 있으며 최근 성벽을 복원했다.
최근 북원된 봉학사가 있는 북쪽 계곡 일대 성벽. 성벽은 높이 5 m 정도이고, 성벽 위 폭은 약 5 ~10 m 정도이다. 경사가 있는 지형을 적절히 활용하여 적이 공략하기 상당히 어려운 구조이다. 여장 있는 후대 성벽과는 달리 목책을 올려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성벽 위에 마련해 놓고 있다.
정상부 주변 온전한 모습이 남아 있는 부분. 바깥쪽은 비교적 큰 돌을 잘 다듬어 석축을 쌓았다.
안쪽은 중간크기의 돌을 촘촘히 쌓아 견고한 석출을 만들고 있다.
장미산 정상부 주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 둘레 2.9 km로 상당히 큰 규모의 산성이다.
장미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한강 주변 충주지역. 주변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산성을 쌓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남한강변(오른쪽)에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6호)가 있는 중앙탑사적공원이 보인다.
장미산성 남쪽에 위치한 충주 고구려비(국보 205 호).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중앙탑 사적공원에 있는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6호). 삼국통일 후 신라가 쌓은 석탑이다. 신라가 통일 후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장미산성, 사적 400호,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해발 337.5 m인 장미산을 중심으로 계곡을 감싸 돌로 쌓은 산성이다. 수로 및 육로교통의 요충지이자 삼국시대에 전략적 거점이기도 한 이곳에는 백제시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산성의 원류는 고구려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중원 고구려비’와 관련하여 고구려 세력의 남하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이 성과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재주서이십팔리유고석성, 충주의 서쪽 28리에 돌로 쌓은 옛성이 있다.”라 했으며, 「대동여지도」에도 “장미산에 오래된 성터가 남아 있다.”라 기록되어 있다 현재 성벽은 다소 훼손된 상태로, 성의 크기는 높은 곳이 5 m, 폭은 5~10 m이며, 둘레는 2,940 m이다. (안내문, 충주시청, 2009년)
<출처>
- 안내문, 충주시청, 2009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