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시 칠금동 일대에 있는 탄금대(명승)이다.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라 불려왔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을 맞아 큰 패배를 당했던 곳이다. 대문산으로 불렸던 해발 100 m 작은 야산이지만 충주의 주산으로 여겨졌던 곳이다. 충주댐을 지나온 남한강이 속리산에서 흘러 내려온 큰 하천인 달천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하류방향으로는 중앙탑으로 불렸단 탑평리 칠층석탑, 장미산성, 고구려비, 누암리고분군 등 삼국시대 한강유역 차지하기 위한 싸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탄금대의 주인공 우륵 또한 진흥왕이 충주지역을 점령한 후 이주시킨 신라 귀족 집단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충주 탄금대(명승). 삼국시대 가야출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타금대 숲길. 충주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뀐 지금은 다양한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탄금대 앞을 흐른 남한강. 하류 방향으로 근처에 조정지댐이 있어 남한강 수량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인다.
남한강 하류방향. 이 곳에서 달천과 남한강이 만난다. 탄금대 앞으로 용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팔천고혼위령탑. 임진왜란 때 탄금대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8천여명의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충주 탄금대, 명승 42호
탄금대는 해발 108 m 정도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하며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합수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라는 명칭은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한데서 유래하였다. 우륵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이었는데 신라 진흥왕이 가야지역을 차지한 후 사민정책에 따라 충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시 신립장군은 탄금대에서 8천여명의 병사들과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옛 전쟁터이기도 하다. 탄금대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위치하여 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 명승 42호로 지정되었다. 탄금정 인근에 고대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충혼탑과 팔천고혼위령탑 등의 현충시설이 있다. (안내문, 충주시청)
<출처>
- 안내문, 충주시청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