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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도남서원, 정몽주 등을 배향하기 위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서원

경북 상주시 도남동에 있는 도남서원이다. 조선중기 선조 때(1606년) 정경세를 중심으로 지방유림들이 당시 상주목사였던 류성룡의 품의를 받아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졌다. 이후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조선후기 숙종 때 ‘도남서원’이란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선현들을 모신 서원이지만 지방유림들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교육 중심의 서원이다.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옛 건물들은 대부분 없어졌다가 최근에 다시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당인 도정사, 강당인 일관당, 누각인 정허헌, 출입문인 입덕문이 경사진 언덕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와 전사청, 고직사 등의 건물들이 있다.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안동 도산서원과 비슷한 형태로 건물들을 배치해 놓았다.

<상주 도남서원>

서원으로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상주지방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낙동강변 경치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도남서원 출입문인 입덕문>

<큰 규모의 누각인 정허루>

<정허루에서 강당으로 오르는 계단>

<강당 건물인 일관당>

<아래쪽에 있는 원래 강당인 일관당이었다는 건물>

지금은 고직사 건물처럼 사용되고 있다.

<도남서원 현판, 조선시대>

창건 당시 정경세는 원호의 제정 등 제반사항을 유성룡에게 품의하여 정했는데, 그 바탕에는 상주를 영남유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큰 뜻이 있었다. 서원 명칭인 ‘도남’은 정자가 제자 양시를 고향으로 보낼 때 ‘내 도가 남쪽으로 가는구나’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동재인 손학재>

<서재인 민구재>

<사당인 도정사>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도남서원 앞 표지석>

그 뒤로 낙동강과 상주보가 보인다.

<도남서원 상량문, 조선시대>

정경세가 지은 도남서원 상량문이다. 영남에서 일어나 전해진 도학의 정맥이 이 서원을 통해 천년이나 이어질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정경세는 원우의 제도와 위치, 원호의 제정, 각종 예식문의 찬솔 등 제반사항을 앞에서 지휘했다. 이로써 정경세는 사후 2년 뒤인 1635년에 사후 2년 뒤인 1639년에 자신도 추배되었으며, 당시 봉안문은 전식이 지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도남강학계안과 조선팔도 서원록(도남서원이 적혀 있다.)>

도남서원
1606년에 창건되어 1676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1871년(고종 8)에 국령으로 훼철되었으나 향토 유림에서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른다. “도남”이란 명칭은 송나라 정자가 제자 양씨를 고향으로 보낼 때 “우리의 도가 장차 남방에서 행해지리라”한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의 유학 전통은 바로 영남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명명한 것이다. 서원에는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 선생을 모시고 해마다 춘추향사를 지내고 있다. 낙동강가에 자리잡은 서원에서 바라보는 경관과 정취는 매우 수려하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9년
  2.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