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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산관, 옛 상주목 관아 객사 건물

경북 상주시 만산동 임란북천전적지에 있는 상산관이다. 조선시대 상주목 관아 중심이 되는 건물로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무는 객사건물이다.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며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고 중건하기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관아가 있던 상주 도심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다.

건물은 가운데 궐패를 모시는 정청을 두고 양쪽에 숙소인 동익헌.서익헌이 있다. 정청은 앞면 3칸, 동익헌은 앞면 7칸, 서익헌은 앞면 4칸 규모이다. 정정 건물을 높게 하고 양쪽에 익랑형태로 건물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객사 건물로 상당히 큰 규모이다. 내부에는 원본은 아니지만 조선후기 현종 때(1666현) 상산관을 중건하면서 지은 상량문을 비롯하여 고려 떄 안축이 지은 객관기, 이규보와 조준이 지은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어 오랜 세월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객사 건물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상주 상산관>

전형적인 객사 건물로 현존하는 일반 객사 건물 중 남부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가운데 정청>

“상산관”이라 적힌 큰 현판이 걸려 있다.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정청 내부>

상주목사가 궐패를 향해 예를 올리는 망궐례를 재현해 놓고 있다.

망궐례
이곳 상산관은 조선시대 상주목의 개사로 궁중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를 행하듯 이곳 전청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두고 대궐을 향하여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고 절하던 의식을 행하던 곳으로 배례의식은 목사가 부임할 때와 나라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매월 초하루 보름에 정기적으로 행하여져 왔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동익헌>

앞면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이다. 동익헌은 상주를 방문한 문신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서익헌에 비해 크게 지었다. 동익헌 대청마루는 앞면 4칸 옆면 3칸의 상당히 넓은 공간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연회 등을 여는 공간이다.

<동익헌 대청마루>

<대청마루 천장.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옆에서 본 동익헌>

<서익헌>

동익헌에 비해 작은 앞면 4칸 규모이다. 뒷편에 3칸 온돌방을 두고 있으며, 왼쪽끝 1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서익헌 대청마루>

<상주객사 상량문>

1666년 전임 군수인 조정융이 옛터에 복원하는 상산관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상량문이다. 

<객관기>

1343년(고려 충혜왕 4)에 상주목사로 부임한 근재 안축 선생이 상산관을 보고 지은 기문이다.

<고려 고종때 문장가 이규보(1168 ~ 1241년)가 지은 “상산관의 높은 추녀 아래서”라는 글>

<조선초 문신 조준(1346 ~ 1405년)이 지은 “상주객사의 판상운 따라..”라는 글>

<동쪽에서 본 상산관>

<뒷편에서 본 모습>

상주 상산관, 경북 상주시 경상대로
객사는 지방 관아의 중심 건물로서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시설이다. 이 건물은 1328년(충숙왕 15) 목사 김영후가 중수했다는 「상산지」 기록으로 보아 이보다 앞서 창건된 것으로 여겨지는 객사이다. 1526년(중종 21) 소실된 것을 목사 윤탕이 중건하였으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 재건하고, 1666(현종 7)에 다시 중건하였다. 근대에는 현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 상주여자중학교로 옮겨와서 교실로 사용하다가 1991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