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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왕산역사공원

경북 상주시 서성동에 있는 왕산역사공원이다. 왕산은 옛 상주목 읍치였던 상주읍성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동산이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이곳에 머물면서 왕산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과 상주목 관아들이 왕산아래 자리잡고 있었으며 지금도 상주시 도심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공원으로 조성된 이곳에는 복룡동에서 옮겨온 석조여래좌상(보물), 일제강점기 애국지사인 위암 장지연 기념비, 역대 상주목사 공덕비 등이 있다.

<상주시 도심 가운데 있는 작은 동산인 왕산역사공원>

통일신라 이래 상주지역의 중심지로 관아가 있었던 유서깊은 곳이다.

<왕산 입구>

<왕산 아래에 모아 놓은 상주 목사 등을 역임한 인물들의 공덕비>

<복룡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왕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상주목 객사 뒷편 관아가 있던 자리>

<왕산 산책로>

<이곳에 관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목들>

<왕산 정상부>

<장지연 선생 기념비>

<왕산 아래에 있는 작은 정자>

<왕산 아래 상주목 동헌이 있던 자리>

<옛 사진에 보이는 왕산과 상주목 동헌>

상주의 중심 왕산(王山)의 유래
왕산은 고도 상주의 중앙에 자리한 명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1대 신문왕 7년(서기 687년)에 주위 1천배9보의 상주성을 쌓고 성의 4대문 중앙에 자리한 작은 산이 왕산이다. 고려 31대 공민왕 11년(1362) 홍건적 침략으로 고려왕실이 상주목 상주성을 임시거처행궁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작은 산이 고려왕실의 산이 되었다. 1700년대 제작된 상산지도에는 왕산을 배경으로 관아들이 있었으며 조선조 1392년부터 1592년까지 경상감영을 겸한 곳이 이 왕산 아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 상산삼악일 일컬어 오면서도 왕산을 영산으로 여겨왔으며 1617년 이준이 편찬한 상산지에 의하면 상주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된 것이 왕산이였기 때문에 이 왕산을 일명 장원봉이라고도 불렀다. 일제강점기 때 왕산 이름을 앙산으로 하였다가 최근에 왕산으로 바로 잡았다. 창석 이준선생이 「왕산괴정」 시를 남겼고 1300년 역사를 간직한 산이 왕산이며 장원봉을 중심으로 왕산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한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

<출처>

  1. 안내문, 상주시청,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