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상주박물관] 사벌국과 신라

사벌국(沙伐國)은 초기 역사시대 경북 상주지역에 있었던 작은 소국이다.  『삼국사기』 에 따르면 신라 첨해이사금 대(249년)에 토벌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법흥왕 때 상주를 설치하고 군주를 파견하면서 신라에 속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상주에는 병성동, 지천동, 함창읍 신흥리, 사벌면 화달리 등 여러곳에 고분군이 있는데 그 중 4세기 대 조성된 고분도 확인되고 있어 신라가 진출하기 이전 지방세력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토기류, 말갖춤 등이 있는데 지역적인 특색을 보이다 점차 신라의 영향을 받은 형태로 바뀐다.

사벌국의 성립과 강성
원삼국시대 상주지역에는 사벌국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벌국 고성이 병풍산 아래에 있다”는 기록이나 삼국사기 첨해이사금 3년(249)조에 신라가 사벌국을 정복했다는 기록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사벌국의 존재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원삼국시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인 조사 역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원삼국시대의 상주 문화 내지는 사벌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다만 사벌면 금흔리 일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토광묘유적과 그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이부곡토성을 통해 어느 정도 접근해 볼 수 있다. 이부곡토성은 하천변의 나지막한 구릉지를 이용하여 축조한 포곡식 산성인데, 출토 유몰로 볼 때 1차 축성의 하한 연대는 적어도 5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또한 병성동, 지천동, 함창읍 신흥리, 사벌면 화달리 등의 지역에는 대형분이 포함된 광범위한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주지역에도 강력한 정치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흥리유적과 성동리유적에서는 4세기 대의 무덤이 조사된 바 있는데, 이들 유구는 신라가 상주지역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조영된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추가 조사에 따라 사벌국의 실제가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마형대구, 성동리고분군.청리고분군, 삼국시대

옹, 바리, 양범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잛은목항아리, 성동리고분군, 삼국시대

손잡이잔, 성동리고분군.청리고분군, 삼국시대


바리, 성동리고분군.상주출토, 삼국시대

사벌국과 고분
사벌국과 관련된 상주지역의 유적은 공성면에서 청리면을 연결하는 병성천을 따라 양안에 분포하는 고분군과 상주분지를 중심으로 동쪽의 능선상에 형성된 고분군, 그리고 함창분지의 이안천을 끼고 형성된 고분군, 낙동강 양안의 고분군, 금강 수계의 모서.화동고분군 등이 있다. 고분은 대체로 수계를 가까이 하면서 넓은 들이 펼쳐진 구릉이나 산의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상주지역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그 성격의 일단이 밝혀진 고분군은 상주분지의 입구에 해당되는 청리고분군과 상주분지의 성동리고분군, 병성동.헌신동고분군, 신상리고분군, 유곡리고분군 및 함창분지의 신흥리고분군, 가장리고분군 등이 있는데, 이들 고분군은 구조와 출토유물에 있어서 각 지역별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상주 병성동 14호 돌덧널무덤

병성동.헌신동 일대의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구제 발굴 조사 시에 확인된 6세기 경의 삼국시대 고분으로 지하에 깊은 움을 파고 할석 등으로 직사각형의 덧널을 짠 형태의 돌덧널무덤이다. 이 고분에서는 짧은목항아리, 굽다리접시, 금귀걸이 등 총 25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고분의 특징은 일반적인 돌덧널무덤이 한 사람의 시신을 묻는 것과는 달리 한쪽 단벽을 제거하고 달아내어 덧널을 연장한 후 2차로 시신을 묻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분의 형태는 우리나라에서 경북 북부지방에서만 현재까지 확인되어 경북 북부 지방의 고분 성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세잎무늬 고리칼, 환두대도, 상주지역, 삼국시대


대도(상주출토), 화살촉(신흥리고분군), 투겁창(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투구.목가리개.팔가리개,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발걸이,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발걸이.병성.헌신동고분군, 편자, 성동리고분군, 삼국시대

말안장장식,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재갈,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말띠드리개, 신흥리고분군, 삼국시대

사벌국의 말갖춤과 무기
말갖춤은 말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것으로 말에 올라타기 위한 발걸이나 말 등에 얹는 안장, 말을 제어하는 재갈 등이 있다. 초기에는 실용적인 말갖춤이 주류를 이루다가 점차 금은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말갖춤이 등장하게 되어었다. 상주지역의 고분에서는 다량의 말갖춤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 당시의 말갖춤 문화의 수용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무덤에서는 말갖춤과 함께 화살촉, 큰칼, 쇠창, 도끼 등 당시의 무기들도 함께 출토되는데 이는 신분에 따라 그 부장량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말갖춤과 무기를 통하여 당시의 전쟁 방식이나 무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금동관, 전 상주출토, 삼국시대, 복제품

신라 금동관의 전형적인 형태는 경주의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되는 금관인데 대륜 위에 3개의 출자형 세움장식이 세워지고 그 양쪽에 녹각형 장식이 1쌍씩 세워진 형태입니다. 상주 출토로 전하여지는 이 금동관은 녹각형 장식이 없고 대신 출자형 세움장식 5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6세기대이 유물로 추정되는데, 신라 금동관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허리띠고리, 청리 출토, 삼국시대

굽다리 긴목항아리(오대동고분군), 삼국시대

긴목항아리(신흥리고분군), 뚜껑굽다리접시(병성.헌신동고분군), 삼국시대

그릇받침, 긴목항아리.그릇받침, 병성.헌신동고분군, 삼국시대

굽다리접시(성동리고분군), 뚜껑손잡이굽다리그릇(병성동고분군), 새모양손잡이잔(청리고분군), 삼국시대

오리모양 토기, 청리 출토, 삼국시대

신라 세력의 확장과 상주
경주에서 발흥한 신라는 서서히 낙동강 서안의 가야를 정벌하는 한편 주변 지역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AD 400년 고구려의 남정 이후 고구려에 정치적인 수모를 당했던 신라는 눌지왕 대부터 고구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433년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대항하여 나제 동맹을 결성하면서 고구려와는 적대적인 관계로 급변하였다. 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여 신라는 소백산맥의 계립령로와 죽령로 곳곳에 삼년산성, 굴산성 등 산성을 쌓았다. 그리고 이찬 실죽으로 하여금 신라 서북 방면의 방어를 담당케 하였다. 6세기 중반 이후에는 지금의 상주정을 두어 서북 지방 경영의 거점으로 삼아 소백산맥에서 한강유역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상주는 신라가 고구려이 남하를 효과적으로 막고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진흥왕 18년(557년) 남쪽의 가야를 공략하기 위해 상주정이 감문주(지금의 김천 개령)로 잠시 이동한 경우를 제외하면 상주는 줄곧 신라 북방 개척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고고학적인 조사 결과로도 대략 5세기 이후가 되면 토기와 장신구 등의 유물에서 신라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와 같은 일면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상주박물관,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