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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보물)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에 있는 보각국사탑과 비(보물)이다. 보각국사는 고려중기에 활동한 승려로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탑은 바닥돌 위에 8각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이 있는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전형적인 승탑이다. 몸돌 앞면에는 탑이름, 뒷면에는 문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며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새겨 놓고 있다. 탑비는 당대 문장가인 민지가 지었으며,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왕희지 글씨체를 보기 위하여 비석을 탁본하면서 그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다. 지금도 일부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사본이 월정사에 남아 있다고 한다.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보물)>

고려말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8각형의 목조건축물 형태을 하고 있는 전통 승탑양식을 따르고 있다.

<받침돌>

자연석 바닥돌 위에 8각형 받침돌이 3단으로 올려져 있다. 가운데 받침돌에는 동물이 조각되에 있으며 원형에 가까운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돌에는 탑이름과 문모양,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 부분>

<인각사 보각국사탑비(보물)>

일연의 행적과 비를 세운 경위, 제자들의 이름 등을 새겨 놓았다. 중국에서 직접 왕희지 글자를 집자하여 글을 새겼으며 당대 문장가인 민지가 비문을 지었다. 왕희지의 글씨를 얻기 위해 수많은 탁본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비가 크게 훼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원본은 옛 탁본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앞면>

앞면에는 일연의 행적과 그를 추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앞면에 남아 있는 글씨>

<뒷면>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제자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 남아 있는 글씨>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 보물 418호, 경북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탑비이다.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 위에 놓여 있으며,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팔각 받침돌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 조각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윗부분은 원형에 가까우며 단조롭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신은 팔각이며 정면에는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문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 입상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지붕의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살짝 들려 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 선 끝 부분에 꽃 장식이 달려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이 큼직하게 올려져 있다. 비는 국사의 제자인 법진이 세웠으며,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고,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비의 앞면에는 스승인 일연의 행적과 스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다비식 때의 영험, 제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