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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인각사지(사적),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 북쪽 기슭에 남아 있는 인각사지(사적)이다. 고려 충렬왕 때 일연이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사찰입구에 우뚝 솟은 큰 바위가 기린의 뿔을 닮았다고 하여 인각사(麟角寺)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하였다고 하며 발굴.조사결과 고려시대에 절을 크게 중수하면서 건물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하며 조선중기까지 큰 사찰이었나 거의 폐사되어 지금은 최근까지 극락전과 작은 요사채 만 있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일연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탑비(보물 428호)를 비롯하고 고려시대 삼층석탑과 불상이 남아 있다. 특히 탑비는 중국에서 왕희지 글자를 집자하여 글을 새겼는데 후대에 왕희지 글자를 찾아 탁본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그 과정에 비석은 크게 훼손되었다.

<군위 인각사지(사적)>

경주에서 안동,상주로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시대에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이후 쇠퇴하여 지금은 절터에 극락전을 비롯하여 몇동의 전각들만 있다.

<인각사 주불전인 극락전>

<극락전 내부>


<극락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군위 인각사 삼층석탑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탑 양식을 이어 받은 삼층석탑으로 보기 드물게 상륜부가 남아 있어 탑의 양식과 구조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상대기단의 갑석은 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툼한 부채꼴 모양의 받침에 얕은 사각형의 받침이 겹쳐져 있는 이중 탑신과 괴임대가 있다. 옥개석은 각층 탑신의 비율에 맞게 줄어들고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전체가 4단으로 되어 있으며, 모서리의 선은 많이 둘글려져 있다. 또한 이 탑은 제1탑신석이 제2탑신석보다 높이의 비례가 크고, 옥개석의 옥개받침이 4단인 점 등을 볼 때 고려 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신라말 ~ 고려초 시기의 석탑 연구에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극락전에서 보이는 삼층석탑과 절터>

발굴.조사결과 고려시대에 사찰을 중수하면서 절의 중심영역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삼국유사 저자 일연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

<승탑 옆에 있는 불상>

<승탑 뒷편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탑비(보물)>

<일연의 행적과 그를 기리는 글 등을 적은 비석>

왕희지 글자를 집자하여 비석에 새긴것으로 후대에 여러차례 탁본을 하는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었다.

<인각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석재들>

통일신라시대 건물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고려 때 절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재사용되었다고 한다.

인각사 발굴 조사 출토 부재
이곳에 전시된 석재는 인각사(사적 374호)를 정비하려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수습된 것으로 인각사 창건(642년)부터 고려시대까지 인각사에 사용된 석재 중 중요 부재를 모아 놓은 것이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현 인각사 동쪽에서 통일신라시대 중심 사역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고려시대 후기부터 중심 사역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인각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한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하안소(1284 ~ 1289년)로 사용되면서 통일신라시대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석재를 활용하여 건물을 증축하거나 개축한 것으로 보이며, 일부 고려시대에 제작된 석재도 확인된다. 전시된 부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제작된 인화문 석등대좌를 비롯한 심초석, 방형초석, 원형초석, 기단석 등이다. 이중 2005년 극락전 해체과정에서 확인된 심초석은 통일신라시대 인각사에 목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이다.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국사전>

<국사전 옆 일연의 행적 등을 설명해 주는 전시관>

<비각 뒷편에 있는 산령각>

<인각사 입구에 있는 요사채>

<극락전 아래에 있는 요사채>

<사찰 뒷편에서 보이는 인각사지 절터>

문화재로 지정되어 건물을 증축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각사는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제 10교구 본사인 은혜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였다. 절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기린이 뿔을 바위에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 중렬왕 때 일연이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곳에 거처하면서 구산문도회를 두번이나 개최하였고, 여기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활자본으로,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 ~ 1283년(충렬왕 7 ~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조선 중종 7) 경주부사 이계복에 의하여 중간된 정덕본이 초고본이며, 그 이전에 판각된 듯한 영본이 전한다. 본서는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성사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이므로 체재나 문사가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 즉,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에 관한 서술은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는 단군을 국조로 받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는 기록인 것이다.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군위 인각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