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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박물관 진한 이후] 진시황 순행과 도량형 통일

진나라 중국을 통일한 이후 산동지방은 통일과 함께 번영했습니다. 번성하는 경제와 산동의 화려한 문화는 진과 한제국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남북조시대에는 다시 정치적으로 분열되었다. 수.당시대에는 대운하와 같은 정치적, 경제적 통일을 기여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다시 누렸다. 산동성박물관 9번째 전시실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한, 남북조, 수,당을 거쳐 명나라 때까지 산동지방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The history of Shandong Peninsula since the Qin and Han dynasties featured unity and prosperity. The thriving economy and splendid culture of this land contributed a great deal to the sustenance of the Qin and Han Empires. During the subsequent Wei, Jin, and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Shandong was also subject to political decentralization. But since the Sui and Tang dynasties, Shandong again enjoyed economic and cultural prosperity owing to political unity and grand communication Project such as the Great Canal. (안내문, 산동성박물관, 2013년)

<산동성박물관 9번째 전시실. 진시황 통일 이후 산동지방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진시황이 중국 통일 이후 산동지방은 도교적인 철학과 사상 등으로 유명했으며 진시황은 산동지방을 여러 차례 순방하였으며 당시 순행기록을 남긴 2기의 중요한 비석이 세워졌다. 또한 불로초를 얻기 위해 산동지방 사람 서복(徐福)이 파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도 문화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승상 이사의 주도로 군현제 실시, 도량형 통일 등 정치.사회적.문화적으로 중국을 통일하는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였다. 

In 221 BC, the First Emperor of Qin annihilated the rivaling states and founded the first unified empire in China. During the early imperial era, Shandong was renewed as a land of immortals, philosophical thinkers, and vibrant economy. For these reason, the first Emperor of Qin frequently made his way to this land. The emissary Xu Fu who was sent to seek elixirs turned out to expand the influence of Qin to Korea and Japan. (안내문, 산동성박물관, 2013년)

<중국 통일 이후 산동지방의 주요 도로망>


<태산각석(泰山刻右, 복제품)>

진시황 28년(BC 219)에 태산에 세워졌다. 각석의 전문은 『사기』에 남아 있다. 총 144자였으며 2세황제대 78자가 추가되어 12행 222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진나라 승상 이사가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비석은 송나라 때 발견되었으며 명나라 때 다시 발견되었을 때 진2세 황제 때 추가한 29자만 남아 있었다. 비석은 청나라 때 없어졌으며 29자가 적힌 탁본만이 남아 있다.


<낭야각석(琅琊刻石, 복제품)과 이를 발견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

진시황이 산동지방을 순행하면서 이를 기념하여 낭야산에 세운 비석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 중 하나로 18행68자가 남아 있다. 진나라 승상 이사가 쓴 글씨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진2세가가 추가로 새긴 부분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역사와 서예에서 중요한 유물로 여겨진다.

<01.진반량전(秦半两钱, Banliang Coin), 진>

“半兩”이라 적힌 글자가 새겨진 동전으로 진시황 때 발행되었다. 승상 이사의 주도로 도량형을 통일할 때 동전의 규격을 반량으로 정하면서 발행되었다고 한다.

<02. 진2세원년동소판(秦二世元年铜诏版), 진.>

진2세 원년에 승상 이사가 내린 조서가 적혀 있는 동판이다.

<03.진기량(秦箕量, Scoop-shaped Meusure), 진>

<04.진소도량(秦诏陶量), 진,>

도량형을 통일하면서 그 내용을 밝힌 20행 40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05.06. 진소도량(秦诏陶量), 진>

<출처>

  1. 안내문, 중국 산동성박물관, 2013년
  2. 미술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