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秦始皇)으로 잘 알려져 있는 진왕 영정(嬴政)은 기원전 221년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적 제국을 세웠다. 이는 춘추시대 이래 많은 국가와 정치가, 사상가들의 열망적인 꿈이었다. 사상의 통일을 위해 일으킨 분서갱유처럼 부정적인 면모도 있지만 만리장성의 건설, 도량형을 비롯한 제도와 사회의 통일, 군현제의 실시 등 중국 역사에서 통일 국가로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천하통일(天下統一,. Unification of the country)
In 221 BC, King yongcheng of the Qin unified China and establish the first centralized empire in China, which was the patient dream of many Chinese statement and thinkers since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The Qin dynasty opened a new era in China history as a unified country.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병마용(兵馬傭, Terracotta army). 진, 시안시 린통(临潼)구 진시황릉,>
셴양(咸陽)은 기원전 350년 진효공(秦孝公)이 도읍를 동양(棟陽, 시안시 옌량(阎良)구)에서 셴양으로 옮긴 이후 143 년 동안 진(秦)의 수도 역할을 했다. 셴양은 위수(渭水) 양안에 강둑을 따라 건설되었는데, 전통적인 도시 배치와는 달리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국시대 다른 국가의 도읍과 함께 셴양은 대규모로 잘 계획된 도시로 건설되었다.
황황제도(皇皇帝都, Qin capital-xianyang)
Xianyang served as the capital of the Qin State and Qin Empire for 143 years ever since 350 BC when King Xiaogong of the Qin moved the capital from Yueyang (today’s Yanlian District of Xi’an) to Xianyang. Xianyang straddled the River Wei and was constructed along the river banks, taking the best advantage of the terrain which is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Chinese symmetric manner. With all the best practices of the six capitals in the other six states, Xianyang was build into a large-scale and well-planned city honored as “No.1 capital under heaven.”.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01. 방형 동제 건축자재(Rectangular bronze construction components), 03. 방형 동제 건축자재, 진,시안시 출토. 02. 방형 동제 건축자재, 진, 셴양시 위성(渭城)유적>
<04. 용문양 벽돌(Hollow brick with dragon pattern), 진, 셴양시>
<05. 격자무늬 벽돌(Square brick with geometric motif), 진, 셴양시>
<06. 다양한 문양의 와당들 (葵紋瓦當, The ends with floral pattern), 진>
진시황은 황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헤 제2궁전, 제3궁전이 회랑으로 연결된 웅장한 궁궐로 바뀌고 화려한 아방궁을 다시 건설하였다. 함양궁과 아방궁 궁궐터에서 화려했던 옛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은 그가 실제 권력을 잡고 친정을 시작했던 기원전 230년부터 시작되었다. 진은 진효공 이래 축적된 힘과 “약하고 적을 먼저, 강한 적을 나중에, 가까운 곳을 먼저, 먼곳을 나중에 공격한다”라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전국시대 6국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했다. 기원전 221년은 중국 최초로 황제로 등정하면서 진제국을 세운 해로 여겨진다.
횡소육합(橫扫六合, conquering other ducal states)
The actual unification process of China started from 230 BC when king Yongzheng of the Qin was in power. With the accumulated strength of the past six generations of the Qin rulers and the effective military strategy of “Defeating the weak and then the powerful. Attacking the near and then the far”, the Qin finally conquered the other six rival states and unified China in the year 221 BC leading to the establishment of the Qin Empire with King Yongzheng as the First Emperor of China.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03. “오십년” 동과(五十年 銅戈, Bronze dagger-axe with inscription indicating its manufacturing time, 전국시대, 수집품. 창에 진소왕(秦昭王) 50년 (BC 257년)이라는 제작연대가 새겨져 있다.>
<09. 착금동이(錯金銅匜, gold-inlaid bronze winte vessel), 전국시대, 바오지(宝鸡)시>
<10. 동두(銅豆, bronze container), 상뤄(商洛)시>
<12. 거푸집(stone spearhead molds), 전국시대, 시안시>
이 창 거푸집은 표면에 홈이있어 닫을 때 쉽게 묶을 수 있으며 단단하게 고정된다. 거푸집 앞에 있는 홈이 혁신적인 장치이다. 섬서성 북쪽 지방에서 발굴되었는데 흉노의 유물일 수도 있다. 이런 형태의 거푸집은 북동부 또는 내몽골 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다.
<14. 연왕직검(燕王职劍, Bronze sword with inscription indicating its owner), 전국시대, 옌안(延安)시 뤄찬(洛川)현 출토, 15. 철검(鐵劍, iron sword), 전국시대, 시안시 랸텐(蓝田)현 출토, 16. 동검(銅劍, bronze sword), 전국시대, 옌안(延安)시 안싸이(安塞)구>
<18. 동촉(銅鏃, bronze arrow head), 전국시대, 시안시 랸텐(蓝田)현>
<19. 동촉(銅鏃, bronze arrow head), 진, 시안시 랸텐(蓝田)현>
쇠뇌라고도 불리는 무기로 활보다 긴 사정거리와 강한 관통력을 가지는 무기이다. 활에 비해 장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이후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많이 시용되었다.
모(矛)와 피(鈹)는 고대 중국에서 사용했던 상대방을 찌르는 무기이다. 모(矛)는 긴나무끝에 양날의 창날을 부착하는 형태이며, 피(鈹)는 칼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를 꽂는 형태이다. 피(鈹)는 문헌상으로만 전해져 왔던 것으로 보이는데 진시황릉 병마용에서 피를 들고 있는 병사가 있어 그 형태가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戈)는 나무끝에 ‘ㄱ’자모양의 날을 부착한 무기로 전차를 타고 싸울 때 상대방을 끌어내기 위하여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27. 동모(銅矛, Bronz spear head), 춘추시대부터 진(秦)대까지 다양한 형태의 창>
<32. 동피(銅鈹, bronze lance head), 전국시대, 안캉(安康)시 출토>
<08.09. 과(戈, bronze dagger), 진, 수집>
<37. 월식정(越式鼎, Bronze Tripod from Yue), 전국시대, 안캉(安康)시>
<38 동정(銅鉦, Bronze chime bell), 전국시대, 안캉(安康)시>
<40. 동배(銅盃, Bronze wine vessel with coiled Serpent pattern), 전국시대, 바오지(宝鸡)시>
진(秦)은 중국통일 후 사회 통합을 위해 일련의 조치를 시행했다. 잘 조직된 중앙정부와 군현제는 향후 2,000년 동안 중국 국가 제도의 기반이 되었다. 공식언어, 통화, 법률, 도량형 통일 등은 후대 중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황권일통(皇權一統, A unified power)
A series of measures were adopted for the consolidation of the empire. A well-organized central government and county system was established laying the foundation for the centralized political system for China in the coming 2,000 years. Standardization of the written language, currency, legal codes, weight and measurement further strengthened the empire which had a far influence on Chinese history.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01. 동방승(銅方丞, Squre bronze measurement),진, 수집.>
<03. 고노동화석권(高奴銅禾石權, stone weight with inscription), 진, 시안시>
권(權)은 오늘날 무게를 재는 저울추에 해당한다. 현 옌안시 부근 고장으로 보내졌지만 통일 후 다시 회수했으며, 기원전 209년 새로운 칙령으로 다시 보내졌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도량형 개혁의 연속성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04. “重卅斤” 동권(銅權, bronze weight with inscription), 진, 시안시>
무게가 300근(斤)이라 적혀 있다.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바닥에 홈이 있다. 도량령 통일을 위한 엄격한 장치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05. 철권(鐵權, iron weight), 진, 수집>
<09. 정(鼎, bronze tripod with inscription indicating its origin), 전국시대, 옌안(延安)시 황링(黄陵)>
포폐(布幣)는 조, 위에서 주로 사용된 화폐로 삽모양을 하고 있다. 도폐(刀幣)는 제, 연나라에서 사용했던 화폐로 칼모양을 하고 있다. 의비전(蚁鼻钱)은 초나라에서 주로 사용된 화폐로 개미가 콧등에 올랐을 때 얼굴모습이라 하여 의비전이라 부른다. 조개껍질 형태인 동패(銅貝)에서 발전된 형태이다. 원폐(環幣)는 진, 한나라에서 사용했던 화폐로 방직기구를 본떠서 만들었다. 둥근형태에 둥근 구멍이 있다. 초나라에서는 금으로 만든 영원(郢爰)이 사용되었다. 진시황은 통일후 다양한 화폐를 원형에 네모구멍이 있는 반량전으로 통일시켰다. 반량전은 후대 화폐의 기본 형태가 된다.
<15. 반량전, 14. 19, 20. 21. 22. 포폐(布币, spade-shaped coin with inscription), 16. 의비전(蚁鼻钱, coins with insect design)>
<도폐(刀幣), 명도전(明刀錢), 원전(圜錢), 반량전(半兩錢), 영원(郢爰)>
<출처>
- 안내문, 섬서역사박물관, 2019년
- 위키백과, 2020년
- 무기와 방어구(중국편), 도서출판 들녁,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