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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비림박물관] 2실, 당대 유명 비석들.

시안 비림박물관 2실은 당나라의 유명한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나라 때 기독교 일파가 중국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비롯하여 당나라를 대표하는 명필 구양순, 구양통, 저수량, 왕의지, 안진경, 이양빙, 서호 등이 글씨를 쓴 비석들이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들은 탁본으로 만들어져 후세 사람들의 글씨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통일신라에 큰 영양을 미쳤던 당나라 비석 양식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비림박물관 2실, 당대 명필들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유명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안 비림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대진경교유행중국비”이다.  머릿돌, 비몸, 거북받참돌로 구성된 전형적인 당대 비석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진(大秦)은 로마나 후대 비잔틴제국을 말한다. 경교(景敎, Nestorian)라 불리는 기독교 일파가 중국에 전파된 것은 635년이며 이후 150년간 중국 왕조의 보호를 받았다. 이 비석은 781년 장안 대진사(大秦寺)에 세워졌던 비석이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당 781년, 석경정 찬 여수암 서>

명필 구양순(歐陽詢)의 아들 구양통이 글씨를 쓴 도인법사비(道因法師碑, Stele of Master Daoyin)이다. 도인법사는 장안 대자은사에서 현장을 도와 불경을 번역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승려이다. 이 비석은 그의 제자들이 구양통에서 부탁하여 글씨를 쓰게 했다. 연개소문 아들 연남생의 묘지(泉男生墓誌)와 함께 구양통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도인법사비, 당 663년, 이엄 찬 구양통 서>

당대 명필 구양순(歐陽詢)의 대표작인 황보탄비(皇甫誕碑, Stele of Huangfu Dan)이다. 수(隋)나라 때 정권쟁탈 과정에서 죽은 대신 황보탄을 위해 그의 아들 황보무일(皇甫無逸)이 재상 우지녕(于志寧, 588~641년)에게 글을, 구양순에게 글씨를 부탁하여 세운 비석이다.

<황보탄비, 당 627 ~ 649년, 우지녕 찬 구양순 서>

후유식기(後唯識記). 불교 이론 “유식론”에 대해 적은 비석이다. 크고 선명하며 반듯하게 쓴 글씨가 인상적이다


<후유식기(後唯識記).>

당나라 선종을 대지선사를 기리는 대지선사비(大智禅师碑, Stele of Chan Master Dazhi)이다. 당 현종 때 활동했던 명필 사유칙(史惟則)의 글씨가 남아 있는 대표작이다

<대지선사비, 당 736년, 엄정지 찬 사유칙 서>


<대지선사비 비몸에 새겨진 글씨.>


<대지선사비 뒷면>

어사대정사비(御史台精舍碑, stele of Vihara in Censorate)는 당나라 감찰기관인 어사대(御史台) 감옥 부근에 있던 불교 사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 교화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명필 양승경이 글씨를 쓴 것이다.


<어사대정사비(御史台精舍碑, stele of Vihara in Censorate), 당 723년, 최식 찬 양승경 서>

<어사대정사비 머릿돌. 섬세하면서 생동감있게 용과 구름을 새겨놓고 있다.>

<비몸에 새겨진 글씨.>

삼분기비(三墳記碑, Stele of Reinterring the Tombs of Three Elder Brothers)는 이계경이 그의 삼형제 무덤을 어떻게 개장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천선영기비(拪先塋記碑, Stele of Reinterring Ancestral Grave)는 그의 선친 무덤을 개장하면서 그 내용을 기롯한 비석이다. 이 비석들은 당나라 명필 이양빙(李陽冰)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양빙은 전서(篆書)를 잘 써서 진나라 이사와 함께 ‘이이(二李)’로 불렸다.


<삼분기비, 당 767년, 이계경찬 이양빙 서.>


<천선영기비, 당 767년, 이계경 찬. 이양빙 서>

명필 저수량(褚遂良)이 글씨를 쓴 동주삼장성교서비(同州三藏聖敎序碑, Stele of Preface of Consecrated Buddhism for the Buddhist Monk Xuanzang in Tongzhou)이다. 현장법사가 번역한 불경에 대한 당 태종(太宗)의 서문과 세자였던 이치(당 고종)가 쓴 불경 번역에 대한 경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동주삼장성교서비, 당 663년, 저수랑 서>

양수겸비(梁守謙碑, Stele of Liang Shouqian)는 군사적인 업적으로 직위와 토지를 받은 양수겸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비석 몸돌과 받침돌 옆면에 수준높은 문양을 조각해 놓고 있다.


<양수겸비(梁守謙碑, Stele of Liang Shouqian), 당 822년, 양승화 찬 및 서>

<거북받침돌>

경동(經懂)은 받침돌과 머릿돌 사이에 부처의 이름이나 불경을 새겨놓은 석조기둥이다. 이 경동은 한자와 범어로 팔각형 기둥 각면에 5줄씩 중국어와 범어로 다라니경을 기록해 놓고 있다. 절반만 적혀 있지만 당시 불경 번역 사업 등 서역과의 문화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이다.


<범한문타라니진언경동(梵漢合文陀羅尼真言經懂, Dharani Sutra Pillar in Sanskrit and Chinese), 석해각 서>

광지삼장화상비(廣智三藏和尚碑, Stele of Buddhist Monk Guangzhi Tripitaka)는 당 밀종 고승으로 장안 대흥선사에 머물며 불경 번역 등을 했던 서역인 불공화상(不空和尙)의 비석이다. 당나라 명필 서호(徐浩)가 쓴 비석으로 유명하다.


<광지삼장화상비, 당 781, 엄영 찬 서호 서>


<광지삼장화상비 뒷면>

당나라 명필 안진경(顏眞卿, 709 ~ 785년)의 대표작이자 후대 서예의 교본처럼 사용되었던 작품인 다보탑감응비(多寶塔感應碑, Stele of Abundant Trearsure Pagoda)이다. 장안(長安) 천복사(薦福寺)에 건립된 비석으로 안진경이 44세 때 쓴 글씨이다. 안진경 특유의 서풍이 보이기 전 글씨로, 단정한 자형에 정밀하고 변화가 큰 필획을 보여주고 있다. <다보탑비>로 잘 알려져 있으며, 북송 때 비림이 조성되면서 옮겨졌다.


<다보탑감응비, 당 752년, 잠훈 찬 안진경 서 서호 제액>

명필 안진경이 쓴 대표작인 안씨가묘비(颜氏家庙碑, Stele of Yan’s Family Temple)이다. 머릿돌에 적힌 비이름은 전서의 대가였던 이양빙이 쓴 글씨로 비석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안씨가묘비(颜氏家庙碑, Stele of Yan’s Family Temple), 당 780년, 안진경 찬 및 서 이양빙 전액>

<안씨가묘비 머릿돌. 전서체의 대가 이양빙의 고풍스러운 글씨를 볼 수 있다.>

<외부에 전시해 놓은 비석들>

제2 실
이곳에는 당나라의 유명한 비석이 위주로 진열되어 있다. 그중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당나라의 중외 문화 교류를 연구함에 있어서 보귀한 자료이다. 구양순이 쓴 《황포탄비》, 구양통이 쓴 《도 인법사비》, 저수량이 쓴 《동주삼장성교서비》, 회인집 왕의지가 쓴 《삼장성교서비》, 안진경이 쓴 《다보탑비》, 《안가묘비》, 유공권 이 쓴 《현비탑비》 등은 모두 서법을 배우는 우수한 체본이다. 그외 많은 비석의 측면에는 조각이 정교하고 구조가 아름다운 무늬 장식 이 있는데 또한 고대 도안 장식 예술의 보귀한 자료이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1.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2. 위키백과, 2020년
  3. 미술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