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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

중국 투루판시에 있는 아스타나 고분군(阿斯塔那古墓, Astana Cemetery)이다. 주로 당나라 때 고창국에 정착한 한족들의 무덤으로 10 ㎢ 의 넓은 면적에 1,000개 이상의 무덤들이 모여있다. 투루판 분지의 건조한 기후 때문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미라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20세기 이후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문서들과 개인용도의 물품, 인형, 그림 등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복희(伏羲)와 여와(女媧)를 그린 그림과 6첩 병풍 형식의 동물을 그린 벽화 등이 유명하다. 또한 이곳에서는 많은 문서들이 출토되었는데 소그드어, 위구루어로 쓰인 불교, 마니교, 경교 등의 종교 문서 있어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

아스타나 고분군은 옛 실크로드에서 투루판분지로 들어오는 화염산 계곡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창국 수도였던 가오창고성에서 북쪽으로 2 km 정도 떨어져 있다. 유적지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에 12지신상과 함께 사람 얼굴에 뱀의 꼬리를 달고 있는 여와복희상을 볼 수 있으며 그 뒷편에 유적지 전체와 주변지역을 감상할 수 있는 이층 누각이 있다.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군>

중국 전설에서 창조신으로 여겨지는 복희와 여와(伏羲女媧)를 표현한 그림이 이곳에서 출토되어 복희와 여와가 유적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두 신은 상반신을 사람, 하반신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각각 컴퍼스와 구부러진 자를 들고 있다.

<복희와 여와를 표현현 조각상>


<창조신 복희와 여와, 伏羲女媧圖, 투루판 아스타나, 7세기, 복제품>

중국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다. 중앙에 두 신이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하고 등장하며, 왼쪽이 여와, 오른쪽이 복희이다. 각각 컴퍼스와 구부러진 자를 들고 있다. 이는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으로 이루어진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관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배경에는 해와 달,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 하나의 소우주를 재현하고 있다. 중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얼굴과 손에 보이는 음영 표현, 해와 달의 형상화 방식에서 중앙아시적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휴식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당대 이전 고창국부터 당나라 시대에 주로 사용된 공동묘지라 한다. 이층 누각에 올라서면 남쪽편에 넓게 고분이 펼쳐져 있는데 우리나라 고분과는 달리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고 고분인지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낮은 봉분들이 고분군을 형성하고 있다.

<유적지를 살펴볼 수 있는 2층 누각>

<누각에서 내려다 보이는 유적지 입구>

<아스나타 고분군>

<일반에 공개된 215호와 216호 무덤으로 가는길>

이곳에 있는 무덤은 대부분은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진 길과 시신을 놓은 묘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벽화를 비롯하여 비단, 마포, 종이에 그린 회화, 문서, 직물, 묘지,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 토기, 나무 그릇, 금속기, 화폐 등이 발견되었다. 현재는 215호와 216호 무덤이 일반에 공개되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일반에 공개된 무덤>

<무덤 내부 구조>

<경사로가 있는 대표적인 무덤>

215호 무덤은 경사로가 있는 굴식 무덤으로 길이 31.98 m, 깊이 5.26 m 규모이다. 《唐冯怀盛等夫役名籍》、《唐 战书牍》 문서 등이 출토되었으며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6폭 병풍 형식의 꽃과 새 등이 그려진 벽화가 유명하다.

<215호 무덤>

216호 무덤은 경사로가 있는 굴식무덤으로 길이 31.26 m, 깊이 5.28 m 규모이다.  묘실에는 유교의 가르침을 풀이한 6첩 병풍이 그려져 있다. 그 중 4첩은 성인도로서 왼쪽 앞가슴이나 등에 ‘옥인’, ‘금인’, ‘석인’, ‘목인’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216호 무덤>

210호 무덤은 경사로가 있는 굴식무덤으로 길이 20.05 m, 깊이 5.55 m이다. 부부합장 무덤으로 나무그릇, 항아리, 빗,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210호 무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무덤>

<옆에 있는 무덤>

아스타나 고분군은 아스타나와 카라호자의 두 구역으로 나누지만, 일반적으로 아스타나 고분군이라고 부른다. 1959년부터 수차례의 발굴을 통해 약 400기가 넘는 무덤이 발굴.조사되었다. 고분군 바깥에는 투루판분지에 살았던 위구르인들의 무덤들이 남아 있다.

<봉분이 남아 있는 무덤들>

<유적지 바깥쪽 위구르인 무덤들>

<멀리 보이는 화염산>

<화염산과 전망대>

아스타나 무덤은 서역 북도의 투루판 시에서 동남쪽으로 3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하고 있다. 아스타나와 카라호자의 두 구역으로 나주지만, 일반적으로 아스타나 고분군이라고 부른다. 1959년부터 수차례의 발굴을 통해 약 400기가 넘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아스타나에서 무덤은 기원후 3세기경부터 시작되어, 국씨 고창국(502~640)과 당 왕조 지배기(640~8세기 후반)에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일부 무덤은 수직으로 구덩이를 파 시신을 놓은 수혈식이지만, 대부분은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진 길과 시신을 놓은 묘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벽화를 비롯하여 비단, 마포, 종이에 그린 회화, 문서, 직물, 묘지,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 토기, 나무 그릇, 금속기, 화폐 등이 발견되었다. 투루판에는 일찍부터 한족 집단이 형성되었던 까닭에 아스타나 고분군 출토품은 중국적인 요소와 중앙아시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중앙박물관에는 상당히 많은 중앙아시아지역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의 주지승이었던 오타니 고즈이가 20세기초 3차의 원정을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수집, 약탈해 왔던 유물들을 일제강점기에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를 통해 조선총독부에 기증한 것이 오늘날까지 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카라호자에 있는 무덤에는 시신을 안치한 널방 입구에 이와 같은 상상의 동물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진묘수라고 하며, 널방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사람 또는 짐승의 얼굴을 지닌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돤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상상의 동물 진묘수가 발견되었다.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鎭墓獸頭部), 8세기, 투루판. 투루판의 아스타나, 중앙박물관>

진묘수는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시신을 안치하는 널방의 문에 한 쌍이 배치되며, 때로는 천왕을 표현한 인형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앞다리를 세워 정면을 향해 응시하고 있는 자세를 취한다. 묘를 지키는 역할에 어울리게, 상대를 위협하는 듯한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두상은 투구를 쓰고 있는 사람 얼굴을 보여준다. 머리 윗부분에는 잘려나간 뿔의 흔적이 남아 있고, 목 아래에도 짐승의 털이 묘사되어 있어 진묘수의 머리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鎭墓獸,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중앙박물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구슬 문양으로 장신된 그릇(連珠紋明器),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그릇 표면을 장식한 문양을 연주문이라고 하며, 작은 흰 구슬을 이은 것과 같은 모양을 띤다. 서아시의 사산조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문양으로, 중앙아시아,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여기 전시된 그릇은 무덤에 넣기 위해 만든 명기로 주로 쟁반에 얹어 시신의 머리맡에 놓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새머리 장식이 있는 병, 鳳首形壺,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투루판 카라호자, 중앙박물관>

물따르는 곳과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에 새의 눈을 표현하여, 물따르는 부분이 새의 부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은 기형은 그리스의 오이노코에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중해지역, 사산조 페르시아, 중국에서 금은기, 유리기, 도자기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신라의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유리병이 발견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생전에 높은 지위에 있었던 관리의 무덤에서는 시종, 무사, 관리, 무용수나 약사를 표현한 인형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세에서 누렸던 삶이 내세에도 이어지기를 바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문인상(文人像)은 당나라 관복의 형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인형이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관식과 비슷하게 생겼다. 몸통을 폐지를 이용해서 만들었던 종이에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문인상, 文人像, 투루판 카라호자, 7~8세기>

당대(唐)의 전형적인 관식(冠飾)인 복두(幞頭)를 쓰고 있다. 팔 부분은 종이를 꼬아서 만들었으며, 이는 투루판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이처럼 이 지역에서는 부장품을 만들 때 폐기된 문서를 재활용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는 ‘투루판 문서’라고 불리며,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무덤에서는 당시 투루판 사람들이 사용했던 생활용기들도 다수 출토되고 있는데 중국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유물도 상당수 있어 당시의 문화교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나무 항아리(木製小壺), 그릇받침(明器),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나무 굽다리접시(木製高杯), 투루판 아스타나, 6~7세기, 중앙박물관>

<표주박 그릇, 瓢制容器, 투루판 아스타나, 중앙박물관>

<출처>

  1. 위키백과, 2020년
  2. 百度百科, 2020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7년
  4. 실크로드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사,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