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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시대 불경

불경은 고려시대와 우리나라 불교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고려시대 불교는 국가적인 지원을 받아 많은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었다. 그중 불교 경전의 간행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보여주고 있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直指)’, 오늘날까지 목판이 보존되어 있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이에 글자를 쓴 필사본 불경 등이 고려시대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힌다.

1100년의 지혜
불교는 고려인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개경에 수백 개의 사찰이 세워져 종파에 따라 교리와 신앙이 발전하였고, 강원이나 충청 지역을 비롯한 전국에서 각 지역의 특징을 반영한 불교문화가 전개되었습니다. 고려는 필사와 목판에서 시작한 오랜 출판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종이와 금속을 다루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直指)’를 간행했습니다. 고려의 뛰어난 인쇄 문화는 불교 성전의 총합체인 대장경에서 나타납니다. 송나라 대장경을 원본으로 간행한 초조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고려는 불교의 가호를 바라며 다시 대장경을 새겼습니다. 바로 오늘날 목판으로 온전하게 전하는 세계 유일의 대장경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입니다. 대장경은 불교가 전파되는 경로를 따라 광범위한 지역에서 생겨나고 전승되었던 기억의 역사이자, 진리를 향한 여정입니다. 고려의 목판인쇄술은 방대한 양의 대장경을 간행할 만큼 뛰어났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치에 필요한 여러 서적이 간행되어 지식 확산과 체계화에도 기여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임을 물리치기 위해 북송의 관판대장경(官版大藏經, 971∼983)을 바탕으로 판각한 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후 목판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인쇄본은 국내에 약 300여 권, 일본 난젠지(南禪寺)와 대마도 등지에 상당량의 초조대장경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고려초기 목판인쇄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초조대장경 인쇄본에서 초조대장경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다.

<1. 초조대장경판으로 찍은 유가파의 기본 경전,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고려 11세기, 종이에 인쇄, 국보, 송성문 기증>

<유가사지론>은 인도 미륵보살이 지은 글을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여 100권을 수록한 것으로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해인사 재조대장경 판본과 비교하면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다.

<2. 유가사지론의 핵심을 정리한 경전,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고려 11세기, 종이에 인쇄, 국보, 송성문 기증, 3. 초조대장경에만 수록된 경전, 초조본 신찬일체경원품차록 권20, 고려 11세기, 종이에 인쇄, 국보>

<현양성교론>은  인도 무착보살이 지은 글을 당나라 현장이 번역하여 20권을 수록한 책이다. 고려대장경 초조본에 포함된 내용이다. <일체경원품차록>은 당나라 종범이 여려 경권(經卷)을 대조하여 정리하고 경전 이름(經名), 번역한 사람 등의 내용을 차례로 적어 30권으로 편입시킨것이다. 이 유물은 그 중 권20에 해당한다. 초조대당경에만 수록된 경전이라 한다.


<4. 초조본으로 찍은 화엄경, 고려 12세기, 종이에 인쇄, 호림박물관>


<5. 약사신앙의 근본이 되는 경전, 고려 11~12세기, 종이에 인쇄, 보물 1780호,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품>

고려의 첫번째 대장경, 초조대장경
불교에서 삼장(三藏)은 부처의 설법을 담은 경장(經藏)과 생활 규범을 담은 율장(律藏), 경과 율에 대한 고승들의 해설을 담은 논장(論藏)을 말하며, 이를 망라한 것이 대장경(大藏經)이다. 고려는 불교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송에서 만든 개보판(開寶版) 대장경(개보장, 開寶藏)을 원본 삼아 1011년(현종 2) 부터 자체적으로 대장경을 목판에 새겨 간행하였다. 개보장의 오류를 수정하고 이후 나온 경전을 수집해서 포함시킨 초조 대장경은 고려의 사상과 학문 역량이 집결된 지식문화의 결정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수선사 노비문서, 고려 1281년, 종이에 먹, 보물 제, 송광사성보박물관>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 주지였던 원오국사 천영(圓悟國師 天英, 1215~1286)이 아버지인 양택춘에게 받은 노비와 그 자식을 수선사에 바쳤고, 이를 나라에서 공인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원오국사는 수선사에 봉안되었던 거란대장경을 관리하기 위해 자신이 상속받은 노비를 수선사에 예속시켰다. 문서 끝부분에 지원(至元) 18년이란 연호가 남아 있어 문서가 작성된 연도(1281년)를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거란대장경의 전래 사실과 더불어 승려이지만 속세의 부모에게 상속 받은 노비를 관리했던 모습, 사원이나 승려가 노비를 소유하기도 했던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리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경패, 고려, 상아.흑단목, 보물, 송광사성보박물관>

<1. 경패, 고려, 상아.흑단목, 보물, 송광사성보박물관>

<1. 경패, 고려, 상아.흑단목, 보물, 송광사성보박물관>

경전을 펼치지 않아도 어떤 경전이 보관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꼬리표이다. 한쪽 면에는 경전 명칭과 권수를 새겼고, 반대 면에는 부처와 보살 등을 새겼다. 1278년 원감국사 충지(圓鑑國師 冲止, 1226 ~ 1293)가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거란대장경 1,000여 책을 수선사로 옮겨 봉안했고, 이후 거란대장경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고 한다. 이 경패는 거란대장경과 함께 전해졌거나, 경전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송나라 승려 정원의 ‘화엄경’ 주석서, 대방광불화엄경소, 고려 1372년, 종이에 인쇄, 보물, 천태종중앙박물관>

송나라 승려 정원(淨源, 1011 ~ 1088)이 <화엄경>을 쉽게 풀이한 주석서이다. 의천이 판각을 주문하여 1087년 송 상인 서진을 통해 고려에 목판이 들어오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일본이 끊임없이 고려 팔만대장경판을 달라고 요청하자, 이 목판을 대신 보냈다고 한다. 문화 유입에 있어 상인의 역할과 동아시아 삼국 불교 교류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원본에는 변상도(變相圖)가 없었는데 1372년 이마중.박성량.김사행의 발원으로 변상도를 추가하여 개경 영통사(靈通寺)에서 간행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3. 남송 판본을 원본으로 새긴 <법화경>, 묘법연화경 권1, 고려 14세기, 종이에 인쇄, 호림박물관>

남송의 소자본 <묘법연화경> 변상도를원본으로 삼아 제작한 목판본이다. 소자본(小字本)이란 휴대하기 쉽게 작은 글씨로 판각한 경전이다. 앞부분에 석가모니가 여러 따르는 무리에게 법을 전하는 영산회상도 장면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 외 많은 목판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들 목판은 국가주도로 새긴 대장경판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긴 것이다. 당시의 불경 간경 경향과 기술수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이다.

<지옥의 모습을 새긴 목판, 불설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고려 목판, 보물, 해인사>

<지옥의 모습을 새긴 목판, 불설예수시왕생칠경변상도, 고려 목판, 보물, 해인사>

<시왕경(十王經)>이라고도 하는 이 경전에는 인간이 죽어서 만나게 되는 지옥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지옥에 있는 열 명의 시왕은 살아서 지은 죄업과 복덕을 판결한다. 이 목판에는 각 지옥에서 만나게 될 왕과 판관, 옥졸, 심판받을 영혼의 모습을 새겼다. 제5 염라왕은 동그란 업경대(業鏡臺)에 비추어진 살아생전 지은 죄로 판결을 내린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 대방광불화엄경, 고려 1098년, 목판, 해인사>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45의 일부로, 마지막 부분에 수창(韓昌) 4년(1098) 3월에 판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승려 성헌의 주도로 해인사에서 화엄경판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으로, 무수히 많은 지식이 담긴 고려대장경의 광대한 역사를 대표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화엄경’의 장엄한 세계를 새긴 목판, 대방광불화엄경주본변상도, 고려, 목판, 국보 >

<‘화엄경’의 장엄한 세계를 새긴 목판, 대방광불화엄경주본변상도, 고려, 목판, 국보 >

화엄종의 근본이 되는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의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화엄경 변상도이다. 이 목판은 당나라 때 번역한 80권 『화엄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새긴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자나불이 문수와 보현보살에게 깨달음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다양한 모습의 청중이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전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을 대체하고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새긴 대장경판이다.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체제와 내용도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 고종 23년(1236) 시작하여 고종 38년(1251)에 완성되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법보종찰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고려는 중국의 대장경을 가져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고려의 대장경을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목판을 짜고 새길 수 있는 축적된 기술뿐만 아니라, 인쇄에 필요한 종이와 먹을 생산하는 기술, 수많은 경전을 모아 비교하고 검증하는 지적 역량까지 갖춰야 가능한 일이었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과 함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 목판은 경전에 관한 지식의 정수(精髓)를 예술로 승화시켰음을 보여주며, 1098년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화엄경 목판은 고려의 길고 긴 대장경 역사를 알려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해인사 대장경판에서 인쇄한 조선시대 팔만대장경, 1883년 인쇄, 종이에 인쇄, 월정사>

팔만대장경은 고려를 침략한 몽골을 불교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이다. 경판의 수가 8만여 장에 이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 이라고 부른다. 경판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1393(태조 2), 1458(세조 4), 1500(연산군 6) 등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인쇄되었지만 국내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월정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경판에서 직접 찍은 것으로, 1865년(고종 2)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후원으로 인쇄한 대장경 2부 중 하나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사경(寫經)은 불교 경전을 베껴쓰는 불교의식을 말한다.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래 경전을 베끼는 사경은 불경을 보급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으나 목판본으로 불경이 배포되면서 사경의 기능은 상실하고 ‘공덕’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그 전통은 이어졌다. 고려시대 국왕이나 민간 주도로 많은 사경이 이루어졌으며 금.은으로 글자를 새겨 상당히 화려하면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는 불경들을 볼 수 있다.

서원(誓願) , 모든 것의 시작
아주 오래전, 누군가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모든 이들이 올바른 깨달음을 얻고 생사에서 벗어나 고통 없는 정토에 태어날 수 있게 돕겠다고 했습니다. 서원은 중생을 위해 소망을 세우고 반드시 이루겠다는 맹세입니다. 깊은 푸른빛과 찬란한 금빛의 사경(寫經)은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법화경 변상도, 묘법연화경 권2 변상도, 고려 1340년경, 감지에 금니와 은니,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푸른색의 쪽빛 물감을 들인 종이인 감지(紺紙)에 금니로 그림을 그리고 은니로 글씨를 쓴 <법화경>이다. 화면 오른편에는 부처가 설법하는 장면이, 왼편에는 경전 내용 중 ‘불타는 집의 비유’, ‘가난한 아들의 비유’가 묘사되어 있다. 불타는 집의 비유는 아버지가 아이들을 불타는 집에서 나오게 하려고 선물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가난한 아들의 비유는 어릴 때 집을 나가 고생하며 자란 아들이 부자 아버지를 다시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하자, 아버지가 그를 일꾼으로 데려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점점 중요한 일을 맡기며 결국 후계자로 심는다는 내용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국왕이 발원한 ‘불공견삭신변진언경, 고려 1275년, 감지에 금니와 은니, 국보, 개인소장>

충렬왕 즉위 원년에 은자대장원(銀字大藏院)에서 만든 국왕 발원 사경으로, 9미터가 넘는 본문은 ‘삼중대사(三重大師)’라는 승계를 지닌 승려 ‘안체(安諦)’가 필사했다. 경전 내용은 관음보살의 변화신인 불공견삭관음보살(不空羂索觀音菩薩)의 진언과 염송법, 화상법(書像法) 등에 대한 것으로, 국가가 주도하여 대장경을 사경한 기념비적인 불사의 귀중한 사례이다. 사경의 바탕이 되는 푸른 감지와 표지의 장식, 역동적인 신장의 표현, 마치 먹으로 쓴 듯 부드러우면서도 강건한 필획을 구현한 글씨에서 최고의 격식과 예술성을 볼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깨달음의 수행 방법을 담은 ‘원각경’, 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 고려 1367년, 상지에 금니, 보물, 호림박물관>

상수리 열매로 물들인 종이 위에 금니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의 설법도를 그리고 경문(經文)을 적었다. 이어 <문수최상승무생계법(文殊最上乘無生戒法)의 경문을 적었으며, 뒷면에는 <법보단경(法實壇經)>의 경문을 적어 세 경전을 하나로 엮었다. 1357년 공민왕 계항을 위해 최적과 일장이 김청, 계심과 함께 발원하였다. 평민이 발원한 사경의 귀중한 자료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다양한 신중을 그린 화엄경 변상도, 대방광불화엄경신중합부, 고려 1350년, 감지에 금니>

1350년(충정왕2) 연안군부인 이씨가 돌아가신 남편 김석과 부모님의 명복을 빌며 발원한 사경이다. 표지에 쓰인 제목은 <대방광불화엄경신중합부(大方廣佛華嚴經神衆合部)>로, 감지의 앞면과 뒷면에 모두 경전을 필사했다. 앞면은 고려 시대에 가장 인기를 누렸던 보현보살의 서원 <보현 행원품(普賢順行品)>이고, 뒷면은 <화엄경>의 첫 번째 품인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이다. 비로자나불의 설법 장면을 그린 변상도를 지나면 금강신, 신중신 등 39위 신중의 행렬과 이들의 서원을 담은 게송(偈頌)이 있다. 모든 여래가 형상으로 나타난 곳에 따라 가며, 거하시는 곳을 항상 수호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이들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아미타경 변상도, 불설아미타경변상도, 고려 1341년, 감지에 금니와 은니, 영국박물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의 하나이자 정토신앙의 근본 경전인 <아미타경>을 필사한 사경이다. 감지 위에 금니로 아미타여래의 설법 장면과 연꽃에서 태어난 중생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렸고, 은니로 글씨를 썼다. 곳곳에 나무 여러 그루가 배치된 점이 독특하다. 경전 말미에는 비구 총고의 발원문과 지정원년(至正元年, 1341)이라는 제작 연도가 남아 있다. 총고가 1340년 사경한 묘법연화경이 일본의 사가현립박물관에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비구 총고는 경전을 전문적으로 필사하는 사경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화엄경 보현행원품, 고려 1334년, 감지에 금니, 보물, 호림박물관>

<글씨 부분>

<나전 모란넝쿨무늬 경함, 고려 13~14세기, 나무.나전, 보물>

2014년 (사)국립중앙박물관회가 기증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나전 경함은 모두 9점으로, 대부분 국외에 소재하여 높은 예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쉽게 감상할 수 없었다. (사)국립중앙박물관회의 기증으로 국내에서도 고려 공예의 정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복잡한 형태의 모란무늬를 능숙하게 표현했으며 고려 공예 기술의 정정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나전 국화 넝쿨무늬 경함, 고려 13세기, 나전, 영국박물관>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상자다. 현재 남아 있는 나전 경함은 형태나 크기, 무늬 표현 제작기법 등이 거의 유사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같은 장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272년에 원나라 황후가 고려에 대장경을 요구했을 때, 경함을 제작하는 전함조성도감(細函造成都監)이라는 임시 관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해준다. 국화넝쿨무늬를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질서정연한 느낌을 주면서도 한 단씩 꽃의 위치를 어긋나게 하는 등 변화를 주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