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시대 불화

불화(佛畵)는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이나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부처와 보살의 모습, 어려운 경전의 내용을 그려서 신앙심을 두텁게 하고 교리를 쉽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했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 팔관회를 비롯하여 왕실과 국가가 주도하는 다양한 불교 행사가 있으며 이런 행사 때 신앙의 대상으로서 불화가 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중기 이전에 그려진 불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현재는 고려후기 불화 수십짐이 국내외에 전해오고 있다. 고려불화는 화려한 금선과 색감 등에서 고려후기 권문세가의 귀족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불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으로서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

신앙 의례와 불화
고려 왕조 전 시기에 걸쳐 연등회·팔관회와 같은 정기적 행사와, 왕실과 국가가 주도하거나 종파별로 개최되는 다양한 의례가 있었습니다. 어떤 의식이든, 그 기본은 공양 의례였습니다. 불, 보살, 나한 등에게 향, 꽃, 등(燈)의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는 도량을 깨끗이 하여 단(壇)을 가설하고 법식에 맞는 물품을 올린 후 의례의 존상(尊像)을 청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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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둔황 천불동, 오대 10세기, 종이에 채색, 영국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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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중 관음보살>

둔황 천불동에서 발견된 관음보살도로, 물가에 면한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을 그렸다. 대나무와 죽순이 자라는 암좌에 모습을 드러낸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화불이 있는 보관을 썼으며, 오른손으로는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으로는 작은 병을 들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둔황 출토 관음보살도에 공통되어, 이 시기 수월관음도의 도상적 특징이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상단에는 천개가 있으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인물이 보인다. 관음보살의 아래로는 비단 탁의를 덮은 단(壇)에 향로와 기물이 놓여 있고, 손 향로를 든 관리 모습의 공양자를 그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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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둔황 천불동, 오대 또는 북송,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활짝 핀 꽃으로 장엄한 천개가 있고 대나무가 자라는 관음의 정토는 갈지(之)자 형태로 구획된 수면 위에 도해되었다. 관음보살은 오른쪽 다리로 왼쪽 다리를 누른 자세로 앉아 있으며 연봉우리 형태의 뚜껑이 있는 작은 금속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화면 하단에는 손 향로를 받쳐 든 승려와 관리 모습의 공양인과 시종이 있다. 불화의 명칭과 공양자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칸이 마련되었으나 여백으로 남아 있다. 방제를 적지 않은 불화는 일종의 레디메이드 형식으로, 동서 교류 상의 실크로드에 위치한 둔황은 지역 거주민 뿐 아니라 이동 중에 있는 많은 이들의 기원의 장소이기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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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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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중 얼굴 부분>

수월관음도는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암좌(巖座) 위에 앉아 옆을 바라보는 관음보살과 배례하는 선재동자를 그리는 전형적인 구성이 대부분인데, 이 수월관음도에서는 선재동자가 화면 오른쪽으로 비켜나고 대신 관음보살의 발치에 갖가지 공양물을 든 인물과 바다 괴물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관을 쓴 용왕을 선두로 여인들과 관리들이 따르고, 뒤에서는 바다 괴물들이 보물을 나르고 있다. 통일신라 승려 의상이 7일간 재계하자 불법을 수호하는 용천팔부(龍天八部) 시종이 수정 염주를 내주었고, 다시 7일간 재계하자 관음의 진신을 만나게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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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903호,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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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중 얼굴 부분>

큰 원형 광배와 대나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기암절벽 위에 관음보살이 반가좌로 앉아 있고, 관음보살의 시선이 머무는 화면 아래쪽에는 선재동자가 보살을 향해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합장하고 서 있다. 관음보살은 양손으로 흰색 염주를 쥐고 있는데, 이와 같은 도상(圖像)은 다른 수월관음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푸른 대나무와 바위 · 정병 등의 배치나 수월관음과 선재동자의 시선이 만드는 공간감에서 고려 수월관음도의 조화로운 구성을 느낄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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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426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비교적 큰 화면의 수월관음도로 배경을 이루는 큰 원형 광배나 관음보살 뒤편으로 자라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잘리지 않고 한 폭에 담겨 있어 안정적인 화면 구성을 보인다. 관음보살의 얼굴이나 관음보살을 찾아가 배례하는 선재동자의 표정 묘사가 자연스럽다. 관음보살의 보관부터 발끝까지 투명한 사라(紗羅: 비단의 일종) 베일로 감쌌는데, 베일에는 유려한 원형의 당초무늬가 그려져 있다. 암좌 주변으로는 연꽃과 산호, 보주와 보석이 표현되어 관음의 정토를 상징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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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도(제145희견존자), 고려 1236년, 비단에 채색, 보물 1883호>

오백나한은 부처가 열반에 든 뒤 불교 경전을 편찬하기 위해 모였던 주요 제자들이다. 이들은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 존경의 대상이자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는 외적을 물리치거나 가뭄에 비를 내리도록 기원하며 나한재(羅漢齋)라는 불교 의식을 거행하였고, 나한을 주제로 한 불화와 조각도 제작되었다. 이 불화는 나라의 평안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무관 김의인의 주도로 1235년과 1236년 두 해에 걸쳐 제작된 오백나한도 중의 하나로 제145번째 희견존자를 그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수행을 돕는 불화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은 종파를 초월하여 대중적으로 성행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예불과 참회 등 여러 신앙 의례에서 아미타신앙이 확인됩니다. 마음 속 깊이 여래의 모습을 떠올리고 공덕을 되새기기 위해서는 수행을 도와줄 이미지가 필요했습니다. 아미타여래도는 개인의 수행 공 간이나 사찰 등 여러 공간 에서 예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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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도, 남송 1178년, 비단에 채색, 미국 보스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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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도 중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나한>

동북아시아에서 성행한 오백나한 신앙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불화로, 연대가 알려진 오백나한도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다. 하단에는 네 명의 나한과 이국적인 복식의 공양인이 향을 올리며 합장하고 있으며, 화면 상단에는 구름 사이로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나한이 나타난다. 중국 저장성 닝보 동전호반에 있었던 혜안원(惠安院)에 봉안되었으며, 한 폭에 다섯 나한을 그려 총 100폭으로 구성했다. 일본 나라국립박물관과 동경문화재연구소의 광학 조사로 명문이 해독되어, 1178년부터 1188년에 이르는 시기에 인근 지역민의 시주를 받아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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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도(제92대수대장존자), 고려 1235년, 비단에 채색, 보물18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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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부분>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을 줄여 일컫는 말로 일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이 있는 불교의 성자를 뜻한다. 고려시대는 나한신앙에 기초한 나한의례가 국가적인 규모로 성행했다. 1235년과 1236년에 무관과 군관 등의 주도로 제작된 오백나한 중 제92번째 수대장존자를 그린 것이다. 백발의 존자는 오래된 고목을 배경으로 흑칠 탁자를 앞에 두고 돈대형 의자에 앉아 있다. 먹을 위주로 하면서 가사의 금강저 무늬 등에는 금니를 사용했다. 손에 든 사리병에서 발하는 광채는 화면 상부로 뻗어 나간다. 나한의 도상으로 즐겨 그려진 사리공양을 그린 것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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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1238호>

현존하는 고려 불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미타계열의 불화이지만, 독존형 여래도는 총 6점만이 알려져 있다. 자세 면에서 대부분 측면을 향해 왕생자를 맞이하는 내영(來迎)의 상징성을 암시한다. 이에 비해 오른 손을 내리면서도 이처럼 정면을 향한 자세로 표현한 형식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오른 손에는 금니로 법륜 무늬가 있으며, 가슴에는 반대로 된 ‘만(卍)’자형 무늬가 있다. 녹청의 내의에는 구름과 봉황무늬가, 군청의 치마끝단은 꽃무늬로 장식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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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도, 고려 14세기, 이탈리아 문화박물관>

어둠 속에 빛을 발하는 아미타불은 기도의 결과 만나게 되길 고대했던 존재의 모습을 숭고하게 재현했다. 푸른 연꽃 위에 서 있는 아미타여래는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리고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뻗었다. 여래에게서 발하는 빛을 형상화한 두광(頭光) 만이 있을 뿐, 모든 이들이 태어나고 싶어 했던 정토에 대한 묘사는 없다. 그럼에도 고개를 숙여 응시 하는 시선에서 신비로운 공간의 느낌이 전해진다. 고려시대 에는 방대한 경전에서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염송과 염불을 통해 여래의 상호와 공덕을 관상하는 수행 방식이 유행했다. 기존에는 중국 불화로 인식되다가.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아미타여래도임이 밝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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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도, 남송 13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누군가를 맞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미타불를 그렸다. 이런 도성의 그림은 임종을 준비하기 위해 수행할 때나 실제 임종을 맞이하는 의식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중국 불화이지만, 같은 시기 한반도와 일본에도 유사한 도상의 불화가 남아 있어 동아시아에 아미타 내영(來迎)에 대한 신앙과 불화가 유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아미타여래도는 선묘(線描)가 단순하고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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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여래도, 남송 13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국 남송대에는 아미타정토 신앙이 성행하여 아마타불이 많이 그려졌다. 정토신앙에서는 관상(觀想) 수행을 중시하여 아미타불과 정토의 모습,아미타불이 죽은 자를 맞이하는 모습 등을 뚜렷해질 때까지 반복하여 상상함으로써 실제로 정토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만나고자 하였다. 이 그림의 아미타불은 몸을 옆으로 틀어 죽은 자에게 손을 내미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적외선 촬영 결과 하단 왼쪽에서 ‘경원부세마교동’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 경원부는 1195년부터 1277년 사이에 사용된 중국 닝보의 옛 지명이므로 이 그림이 해당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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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강림도, 고려 14세기, 비단에 채색, 미국 보스턴박물관>

북극성을 여래의 모습으로 표현한 치성광불도이다. 화면 중앙에는 소가 이끄는 화려하게 장엄한 수레를 탄 치성광불이 있으며, 그 주위와 화면 상·하단에 걸쳐 여러 별을 의인화하여 배치했다. 인물 옆에는 각각의 명칭을 적은 제목이 있어 일부는 도상(圖像)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불화는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치성광여래도로는 유일하며 북두칠성을 비롯한 명왕(明王), 이십팔수(二十八宿), 십이궁(十二宮) 등과 여러 별자리가 그려져있다. 당시의 신앙과 천문관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불화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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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광여래와 오성도, 당 897년, 둔황 천불동, 비단에 채색, 영국박물관>

둔황 천불동에서 발견된 불화로, 두 마리의 소가 이끄는 마차를 탄 치성광불과 수성· 금성 · 화성 · 목성 · 토성을 상징하는 다섯 인물을 그렸다. 해·달·별을 부처로 의인화하고 북극성을 치성광불로 신앙하는 경향은 당·송·원대에 매우 성행했다. 화면 상단 왼편에 조성 배경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그림은 제작 연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제 면에서도 희소한 중요한 작품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