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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고려의 금속공예

금속공예는 금속을 재료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을 만드는 미술의 한 분야이다.  금속은 처음에는 지배 계층의 전유물로 실용품보다는 권위를 상징하는 물품으로 제작되었다. 중국 당나라와 통일 신라에서는 청동그릇 등 실용적인 금속공예품이 많아으며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세련된 기형과 문양이 갖추어졌다. 고려시대에는 화려한 은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지는 한편, 민간에서 모두 청동 그릇을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금속공예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불교에서는 향로, 촛대, 화병 등 금속 공양구를 사용하였는데 아름다우면서도 사용에 편리한 공예기법을 완성시켰다.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
고려의 수도 개경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신도시로,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예로부터 한반도에 다양한 문화를 전한 중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까웠습니다. 한 국가의 중심 도시가 되자, 당의 수도 장안이 그랬듯이 주변 국가의 물산이 개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고려는 외국인에게 포용적이었습니다. 고려를 침입했던 요(遼)나라 포로 가운데 정교한 솜씨를 가진 사람을 개경으로 데려와 공예품을 제작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려는 외부에서 전해진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고려만의 문화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고려를 대표할 만한 공예품인 나전칠기나 청자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려는 송나라에 나전으로 만든 벼룻집 등을 선물할 정도로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서긍이 극찬했던 것처럼 고려의 나전칠기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섬세함으로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도자기 또한 청자 제작에 집중하여 아름다운 비색을 탄생 시켰으며 흰색, 붉은색, 금색 등을 더해 다양한 청자를 만들었습니다. 고려의 공예품은 기술적으로도 뛰어났지만, 재료가 가진 색을 다채롭게 표현함으로써 시각적인 쾌감도 선사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금동대세지보살좌상, 고려 14세기, 금동, 보물, 호림박물관>


<금으로 된 장신구, 고려>


<금으로된 장신구, 고려>

<금동 여지무늬 허리띠 장식, 고려, 금동, 개인소장>

금속공예 기법의 정점, 타출 기법
고려인의 뛰어난 기술력은 청자뿐 아니라 금속 공예에서도 발견됩니다. 타출 기법은 금속판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정을 두드려 마치 부조(浮彫)처럼 무늬가 튀어나오도록 한 장식 기법입니다. 고려 금속공예품 중에는 은으로 표주박 모양 병이다. 장도집을 만든 후 무늬를 매우 도드라지게 표현하여, 장식성을 한껏 드러낸 것이 있습니다. 다시 표면에 금을 도금한 병이나 장도집은 고려 금속공예품의 화려함을 잘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은제 금도금 칼집, 고려, 은에 금도금>

<은제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 은제 금도금 고리, 고려, 은에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은 중국의 오대(五代) 이후 북방지역에서 11세기에 유행하였고, 고려에서도 제작하였다. 이 병은 고려시대 표형병 중에서 무늬와 형태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돋을새김한 위에 선각으로 세부를 표현하고 무늬 주변의 여백을 어자문(魚子文)으로 다시 눌러주어 입체감이 뛰어나다.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병, 은제 금도금 고리, 고려, 은에 금도금>

<은제 금도금 표주박 모양 병과 고리, 고려, 개성부근 출토, 은에 금도금>

안동 태사묘 소장 허리띠
태사묘(太師廟)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867~936)을 물리칠 때 큰 공적을 세웠던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세 인물은 공로를 인정받아 각각 개국공신과 태사(太師, 왕의 스승)란 칭호를 받았고, 이 지역은 ‘널리 동쪽을 편안하게 했다는 의미의 안동(安東)이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금동 재질의 <여지무늬 허리띠>는 태사의 유물로 전하며, 〈모란무늬 허리띠>와 동으로 된 <여지무늬 허리띠>는 공민왕이 하사했다고 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여지무늬 허리띠 장식, 금동, 보물, 안동 태사묘>

<여지무늬 허리띠 장식, 금동, 보물, 안동 태사묘>

<모란무늬 허리띠, 금동, 보물, 안동 태사묘>

<여지무늬 허리띠, 청동, 보물, 안동 태사묘>

<‘복녕궁방고’가 쓰인 은제 꽃 모양 접시, 고려, 개성부근 출토, 은>

<은제 꽃 새무늬 팔찌, 고려, 은, 은제 허리띠 장식, 고려, 은>

<은제 꽃 모양 잔, 고려, 은, 청자 풀꽃무늬 잔, 고려 12세기, 개성 부근>

은은 잘 펴지고 잘 늘어나면서도 금보다 단단하여 실용적이며, 향균과 방부(防腐)의 속성이 있다. 은입사(銀入絲)는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은실을 넣어 무늬를 표현하는 금속공예 기법이다. 동이나 철 등 다른 금속 바탕과 화려한 은색이 대비를 이루는 독특한 장식 효과를 낸다.

청동과 은의 만남, 금색과 은색의 조화
청자만 다채로운 색으로 장식된 것은 아닙니다. 금과은, 청동과 은이 만나 금색과 은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고려시대 성행한 입사(入絲)는 청동에 은선을 넣어 장식하는 기법입니다. 금색과 은색이 대비되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효과는 부분 금도금과 유사합니다. 색상의 대비를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에서 고려미술의 다채로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청동 은입사 봉황무늬 합, 고려 청동에 은입사, 국보, 삼성미술관>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고려 1177년, 청동에 은입사, 국보, 표충사>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무늬 정병, 고려 12세기, 청동에 은입사, 국보>

세계 최초 금속 활자
인류의 지혜를 직접 필사하던 것을 목판에 새기게 되면서 많은 책을 쉽게 찍어 낼 수 있었습니다. 지식과 사상이 날로 발전하고 다양한 시작이 필요해지자 움직이는 글자인 활자가 사용되었습니다. 나무에 새긴 목판으로 한 종류의 책만 찍어낼 수 있다면, 낱개 글자로 되어 있는 활자를 다양하게 조합하면 여러 종류의 책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고려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습니다. 금속을 녹여 활자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놀라운 창안이자 새로운 인쇄술이었습니다, 아마도 무수한 실험과 기술적 시도를 거쳐 이루어냈을 것입니다. 개경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전하는 ‘復(복)’ 활자는 고려가 금속활자의 최초 발명국이란 점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의 금속활자 ‘복(㠅)’, 고려, 전 개성 출토, 청동>

고려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이 금속활자는 남한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고려시대 활자이다. ‘㠅(산덮을 복)’은 잘 쓰지 않는 글자로 일반 사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활자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으며 사면의 길이도 각각 다르다. 뒷면은 원형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이다. 이런 형태는 조신시대 활자와 구분되는 고려 활자의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 활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시대 인쇄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자, 고려가 금속활자의 발명국 임을 입증하는 실물로서 의의가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한글 금속활자, 조선 1461년 이전, 청동>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조선 전기의 한글 금속활자이다. 강희안(1417~1464) 쓴 글씨를 글자본으로 1455년(세조 1) 을해년에 만든 한자 활자인 을해자(乙亥字)와 함께 쓰여서 을해자용 한글활자라고도 한다. 1461년에 <능엄경>을 한글로 풀이해 간행한 <능엄경언해> 인쇄에 사용하였다. 이 활자는 조선 후기 활자와 글자체나 모양이 달라서 조선시대 인쇄술의 변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려의 발전된 인쇄술이 있었기에 조선 전기부터 활자를 이용한 다양한 서적 간행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