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지(芬皇寺址, 사적 548호), 신라 경주 칠처가람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절터인 분황사지(사적 548호)이다. 분황사(芬皇寺)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선덕여왕 때(634년) 창건되었는데 경주의 신성한 숲 7곳에 조성했던 칠처가람(七處伽藍) 중 하나이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계율종을 창시한 자장(慈藏, 590 ~ 658년)과 원효(元曉, 617 ~ 686년)가 머물면서 수행했다. 황룡사와 함께 선덕왕의 후원을 받았던 높은 위상의 사찰이었으며 원효가 창시했다고 여겨지는 불교 법성종(法性宗) 중심 사찰이었다. 고려시대 이후 법성종이 번성하지 못하고 몽골의 침입과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크게 쇠퇴하여 작은 사찰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SANYO DIGITAL CAMERA<경주 분황사지(사적 548호)>

분황사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를 비롯하여 솔거가 그렸던 관음보살상 벽화, 웅장한 약사여래상이 모셔졌던 사찰이다. 분황사는 중문, 석탑, 3금당, 강당. 회랑을 갖춘 큰 사찰이었는데 몽고의 침입과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각 대부분은 소실되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모전석탑을 비롯하여 원효대사비를 세웠던 화쟁국사비부, 당간지주, 석정 등이 남아 있다.

SANYO DIGITAL CAMERA<칠처가람의 신성한 숲을 연상시키는 분황사 전경>

2008년 발굴,조사 결과 분황사 석탑 남쪽에 중문터와 긴 회랑 건물터가 확인되었으며 그 앞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건물은 석탑, 금당, 중문이 남북으로 일직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 황룡사와 담을 맞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ANYO DIGITAL CAMERA<2009년 발굴 현장 모습>

SANYO DIGITAL CAMERA<발굴, 조사 당시 남쪽 중문터와 회랑터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구황동 당간지주>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옛날 절에서 당이라는 깃발을 달았던 깃대를 당간 이라고 하는데, 이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양옆에 세운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 바로 남쪽에 있는데,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높이는 360cm이다. 양 기둥 사이에는 동쪽으로 향한 돌거북이臺가 있는데 당간의 받침돌로 돌 거북이를 배치한 것은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기둥의 일반적인 형태이며 3개의 구멍을 설치하여 양 기둥이 서로 관통하도록 조성되어 있다. 이 당간지주는 황룡사 것이 아니라 분황사 소유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안내문, 경주 분황사, 2009년)

OLYMPUS DIGITAL CAMERA<분황사지 동쪽 건물터>

경북 경주시 구황동 분황사 절터에 남아 있는 모전석탑(국보 30호)이다.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서 쌓은 것으로 선덕왕 때  세워졌다.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나 통일신라의 삼층석탑 등이 화강석을 이용해서 목탑처럼 쌓은 것이라면, 분황사 모전석탑은 벽돌로 쌓은 전탑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현재는 3층만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

1층 몸돌에는 4면에 감실을 만들고 입구에 인왕상을 새겨 놓고 있다. 이 인왕상은 이 석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인데 조각상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7세기 신라의 조각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단부 모서리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사자상이 세워져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인왕상>

OLYMPUS DIGITAL CAMERA<사자상>

SANYO DIGITAL CAMERA<분황사 석탑을 쌓았던 석재들>

석탑에는 사리와 함께 수정.금바늘 등의 공양품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비교적 초기의 사리갖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여성이 주로 사용하는 바늘, 바늘통, 가위, 집게 등이 있어 분황사의 발원자인 선덕왕과 이 사리갖춤을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 <수정, 향유병, 장신구>

OLYMPUS DIGITAL CAMERA <선덕여왕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는 바늘, 바늘통, 가위, 쪽집게>

분황사에는 삼국시대 돌우물(石井)이 남아 있다. ‘호국룡변어정’이라 불리는 이 우물은 바깥쪽은 8각을 이루고 안쪽은 둥근 원형을 이루고 있다. 삼국통일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는 유서깊은 우물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분황사 석정>

분황사 석정(芬皇寺石井)
이 것은 호국룡변어정이라고도 불리는 신라시대 우물이다. 우물틀의 외부는 높이 70cm의 8각, 내부는 원형인데 이것은 불교의 팔정도와 원응의 진리를, 우물안의 4각형 격자는 불교의 근본인 사성체를 뜻한다. 삼국유사에 보면 “원성왕 11년 당나라의 사신이 와서 신라의 호국용을 세 마리의 물고기로 변신시킨 뒤 잡아서 본국으로 떠났다. 그 하루 뒤에 두 여인이 원성왕 앞에 나타나서 자신들은 통지, 청지에 사는 두 호국용의 아내인데 당나라 사신과 하서국사신이 자신의 남편과 분황사에 사는 호국용을 주문을 외어 작은 물고기로 변화시켜 대나무통 넣어 가지고 갔다고 하면서 이를 구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을 쫓아가서 물고기를 다시 빼앗아 각각의 우물에 넣어 살게 하였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경주 분황사, 2019년)

분황사지석탑 옆에는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인 화쟁국사비 받침돌이 남아 있다. 고려 명종 때  원효대사를 위한 비석이나 시호가 없음을 애석하게 여긴 왕이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추사 김정희가 절근처에서 발견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OLYMPUS DIGITAL CAMERA<화쟁국사비 받침돌>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이 비부는 고려사에 세워진 원로 비 의 받침들이다. 비석은 고려 숙종 6년(1101) 8월에 내린 조서에 의해 분황사에 건립 되었다. 숙종은 원효가 동방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비석이나 시호가 없어 그 덕이 크게 드리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유사로 하여금 비를 세우게 하였다. 현재 비는 없이고 비편만 가끔씩 발견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비신을 받쳤던 대를 절 근처에서 발견하여 이를 확인하였다. 현재 비대석에는 ‘차신라화쟁국사비적’ 이라고 쓴 김정희의 친필이 음각되어 있다. 비대는 직육면체이고, 상대는 비신을 삽입하는 직사각형의 홈이 파져 있다. (안내문, 경주 분황사, 2019년)

분황사는 석탑을 중심으로 동.서.북면 세곳에 불전을 배치한 품(品)자형의 일탑삼금당식 가람배치흘 하고 있는 신라 최초의 공간배치이다. 기록에 따르면 30만근 이상의 구리를 들여 약사여래상을 조성해 금당에 안치하였으며 화가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도 있었다고 한다.

경주 분황사지 03<분황사 가람배치>

OLYMPUS DIGITAL CAMERA<분황사 출토 석조 유물>

SANYO DIGITAL CAMERA<불상과 석등>

OLYMPUS DIGITAL CAMERA<건물 주춧돌>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무늬 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석조>

OLYMPUS DIGITAL CAMERA<금동사자, 7~8세기, 분황사>

OLYMPUS DIGITAL CAMERA<연꽃보상화무늬수막새, 새무늬암맥새, 분황사 출토>

현재의 분황사는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되었는데 약사여래를 모신 보광전이 옛 북금당터 한쪽편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분황사 보광전>

분황사(芬皇寺), 사적 548호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이래 지금까지 법등(法燈)을 이어온 유서깊은 사찰이다. 분황사 창건 직후에는 당대의 명승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와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가 주석하였다. 분황사에는 솔거(率居)가 그렸던 관음보살상 벽화와 경덕왕 14년(755)에 강고내말(强古乃木)이 구리 306,700근으로 주성하였던 약사여래상 등이 있어 사격(寺格)을 높였다. 분황사는 당간과 지주·중문.석탑.3금당·강당·회랑을 갖춘 대가람이었으나, 고려시대 고종 25년(1238) 몽고침입과 조선왕조시대의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차례로 겪으면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버리고 광해군 원년(1609)에 중창하고 새로 주조한 보광전과 약사여래입상 등이 사역(寺域)을 지키고 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신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모전석탑(국보 제30호), 원효대사의 비석을 세웠던 화쟁국사비, 구황동 당간지주, 신라 호국룡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석정 등의 석조문화재가 남아있다. (안내문, 경주 분황사, 201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 분황사,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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