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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독락당(보물), 조선중기 이전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고택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고택인 독락당(獨樂堂, 보물)이다. 조선중기 문신 이언적이 옥산천 계곡 경치좋은 곳에 지은 별장 성격의 한옥이다. 현존하는 고택 중 비교적 른 시기인 1516년(중종11)에 지어졌다. 이언적은 인근 양동마을 출신으로 벼슬을 물러난 후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렀다. 이후 그의 손자들이 이곳에 살림집인 경청재를 지었으며 가까운 곳에 이언적을 모시는 옥산서원(사적)이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이언적 후손들이 사는 생활 터전이 되었다. 옥산천을 따라 상류로 조금 조금 올라가면 13층석탑(국보)이 남아 있는 통일신라 절터가 있다. 옥산천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인근 들판과 가까우면서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경주 독락당>

독락당은 고택 중 옥산천 계곡에 지어진 사랑채 건물을 말한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계곡을 향한 오른쪽 3칸은 넓은 대청마루이고 왼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만든 창을 만들어 대청마루에서 계곡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목재구조물 등에서 조선중기 이전 한옥건축 양식이 잘 남아 있는 건축적으로 중요한 고택이다.

<독락당(보물)>

<‘옥산정사’ 현판>

건물 내부를 보면 가운데 2칸과 오른쪽 1칸은 분리된 공간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오른쪽에도 온돌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락당 내부>

<독락당에 걸려 있는 액자들>

<오른쪽 대청마루 천장, 조선중기 이전 한옥 건축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뒷편에서 본 독락당>

<계곡을 볼 수 있는 창이 있는 담장>

<계곡에서 보이는 독락당과 담장>

독락당 뒷마당에는 약쑥이 심어진 밭이 있다. 약쑥밭은 1553년에 이언적의 아들 이전이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약쑥인데 지금은 국내 약쑥과 섞어 있다고 한다.

<뒷마당 약쑥밭>

독락당 뒷편에는 계곡 경치를 감상하면서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정자 성격의 건물인 계정(溪亭), 독락당에서 전해오는 중요한 전적들을 보관하는 어서각(御書閣),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공간은 독락당이 있는 공간과는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계정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가는 협문>

계정은 계곡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ㄱ’자형 건물이다. 마당쪽으로 온돌방을 두고 있으며, 계곡을 향하는 방향으로 벽이 없는 넓은 마루를 두고 있다.

<계정>

<계곡에서 보이는 계정>

어서각에는 집안에서 전해오는 중요한 전적들을 보관했다고 한다. 중요 유물로 , 이언적 수필고본 일괄(보물)이 있다.  해동명적(보물)은 조선 중종 때 서예가 신공제가 역대 명필을 모아 석각한 것을 탁본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신라 최치원, 김생, 영업 등의 글씨가 실려 있다. 이언적 수필고본은 이언적이 남기 친필저술들이다.

<어서각>

<어서각 뒷편 최근에 지어진 유물전시관>

<사당>

경주 독락당(慶州 獨樂堂, 보물),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이 건물은 옥산서원(玉山書院) 뒤편에 있으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이다. 조선 중종(中宗) 11년(1516)에 세웠으며, 일명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한다. 낮은 단 위에 세워진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이 건물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八作) 지붕이다. 대청은 3칸 2칸이고 나머지는 칸을 막아 1칸 2칸 온돌방으로 하였다. 건물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 ‘이다. 이 건물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서 대청에서 살창을 통해 앞 계곡의 냇물을 바라보게 하였다. 이는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空間構成)이며, 뒤쪽의 계정(溪亭) 또한 자연에 융화시키 고자 한 의도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독락당은 옥산천 계곡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후손들이 지은 살림집인 경청재가 있고 대문 옆으로 독락당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 옥산천은 수량이 비교적 풍부하면서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대문 옆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길>

<독락당 아래 옥산천>

<옥산천에서 보이는 계정>

<계정 아래 옥산천>

<옥산천 상류>

독락당은 이언적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살림집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독락당 살림집은 1601년(선조34) 회재  이언적의 손자들이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유지하기 위해 지은 집으로 경청재(敬淸齋)라 한다.

<살림집인 경청재>

<솟을대문>

앞쪽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사랑채가 있으며, 마당 한쪽에는 집안 하인들이 거처하던 공간인 공수각이 있다. 사랑채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인데, 독락당을 찾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툇마루가 없는사랑채 방문>

<안채를 들어가는 중문>

<대문 안쪽에서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길>

<공수각>

<공수각 마당>

<안채>

<안채 뒷편>

<독락당 담장>

경청재(敬淸齋)
본 고택(古宅)은 1601년(선조 34년) 3월 12일 회재 이언적 선생의 손자 휘(諱), 준(浚)과 순(淳). 두 형제가 옥산별업 (王山別業)을 봉수(奉守)하기 위해 화의문(和議文)을 작성하면서 세운 집이다. 선생은 1538 년(중종 33년) 3월에 청백리(淸白吏)에 가자(加資)되었다. 청백은 공경지심 (恭敬之心)에서 나온다하여 후손들이 본 집을 경청재(敬淸齋)라 이름하였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