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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노락당과 이로당,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사적257호)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살았던 곳으로 대표적인 잠저(潛邸)이다.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이곳에서 살기는 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고종이 즉위한 이후에 새로이 지은 건물이다. 운현궁은 사랑채인 노안당, 명성왕후가 왕비수업을 받았던 노락당, 안채인 이로당, 별당인 아재당, 정자인 영화루, 은신군.남연군의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언덕에 있던 별당.사당.정자 등은 일제가 허물고 양관이라는 현대식 건물을 지었다.

운현궁에서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 건물로는 노락당(老樂堂)과 이로당(二老堂)이 있다. 두건물 모두 ‘ㅁ’자형 형태로 일반 사대부 저택 안채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원래 안채였던 노락당에서 명성왕후가 신부수업을 받았으며,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 또한 이곳에서 치러졌다. 이후 노락당은 가족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비워두고 새로운 안채 건물로 이로당을 지었다. 두 건물 모두 일반사대부 저택에 비해서 상당히 큰 규모이다. 이로당은 고종의 어머니이자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가 살았던 유서깊은 건물이다.

<출입문>

운현궁에서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에 해당하는 노락당과 이로당 출입문이다. 솟을대문을 하고 있으며 사랑채인 노안당 출입문과는 ‘ㄱ’로 배치되어 있다.

<마당>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운현궁의 안주인인 부대부인이 살았던 이로당과 직접 연결되며, 명성왕후가 신부수업을 받았던 노락당은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운현궁 노락당(老樂堂), 명성왕후가 왕비수업을 받았던 곳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인 노락당(老樂堂)이다. 정면 10칸이나되는 상당히 규모가 큰 건물로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락당은 원래 운현궁의 안채였으나,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왕비수업을 받았던 까닭에 안채는 노락당 뒷편에 이로당을 신축해서 옮겨지고 이곳 노락당은 회갑연 등 흥선대원군 일가의 가족모임을 갖는 장소로 용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노락당은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노안당의 정면 6칸보다 상당히 크고 웅장하며, 툇마루 좌우에 방이 아홉칸이나 있을 정도로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고종과 민비의 가례와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각종 중요 행사때 사용되었으며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는 노락당 대청에 걸려 있는 노락당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노락당이 광장히 높아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밖에 안된다’는 뜻에서 노락당의 호화롭고 웅장함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삼강오륜이라는 유교적 개념 아래 조선시대 여성들의 주생활 영역의 안방으로 대표되는 운현궁의 주 건물이며, 특히 노락당 벽체에서 나온 그림과 글씨는 현재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물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노락당을 출입하는 중문>

중문을 들어서면 좌측편에는 노락당 본채 건물이 있고, 우측편에는 행랑채들이 자리잡고 있다.

<노락당>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고종 즉위 직후 안채로 지어진 건물이다. 명성왕후가 이곳에서 왕비수업을 받았다. 이후 뒷편에 안채건물로 이로당을 새로 지었으며, 노락당은 주로 가족 모임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앞에서 본 모습>

노락당은 앞면 10칸의 상당이 큰 건물로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행랑채를 연결하여 그 방의 칸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툇마루 주위로 방이 아홉개나 있는 규모로 궁궐 건물에 비해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

<노락당 중문과 행랑채>

<노락당 대청마루>

<온돌방>

대청마루 오른쪽 온돌방 2칸에는 운현궁 낙성식 축하 다례연을 재현해 놓고 있다. 상궁은 청녹색당의, 부대부인은 분홍색당의를 입고 있다.

<온돌방>

 황금색당의를 입고 있는 조대비와 연보라색 당의를 입고 있는 철종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운현궁을 대대적으로 보수, 증축하였다. 고종 1년(1864) 9월 노안당과 노락당의 낙성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조대비와 철종비가 궁중 소례복인 보를 부착한 당의를 착용하고 부대부인과 함께 노안당과 노락당의 낙성을 축하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출처:서울시청>

<대청마루 왼쪽편 온돌방>

<온돌방>

명성왕후의 부대부인 생신 축하 방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명성왕후는 연두색 당의, 부대부인의 송화색 마고자를, 세자는 사규삼과 오방장 두루마기를, 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은 전복과 오방장 두루마기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왕비는 궐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부모의 생신, 병문안, 상 등의 제한적인 경우에 사가를 방문할 수 있었다. 명성왕후가 부대부인의 생신을 맞이하여 세자를 데리고 운현궁을 방문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명성왕후는 당의를 착용하고 부대부인은 평상복인 치마, 저고리에 마고자를 착용하고 있다. 세자는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사규삼을 착용하였고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은 오방장 두루마기 위에 전복을 착용하였다. <출처:서울시청>

<노락당 왼편 행랑채와 부엌>

<부엌 내부>

<노락당 오른쪽 날개채와 행랑채>

<부엌 내부>

<노락당에 딸린 행랑채>

<행랑채 내부. 대청마루와 온돌방>

<노락당 뒷마당.>

구한말 건물의 특징으로 뒷편에 약간 넓은 툇마루에 난간을 두고 정자처럼 사용했다. 노락당은 새로지은 안채인 이로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노락당 뒷편 툇마루와 굴뚝>

<노락당과 안채인 이로당을 연결시켜주는 복도>

<노락당 뒷마당을 출입하는 작은 출입문>

운현궁 이로당(二老堂),  운현궁 가족들이 거처했던 안채

이로당(二老堂)은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거처했던 운현궁에서 제일 안쪽에 위치한 건물로 운현궁에서 안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원래는 노락당이 안채였으나 그 곳에서 고종의 가례의식을 치러 안채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새로 신축한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7칸으로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중정이 있는 ‘ㅁ’자형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명성황후가 왕비수업을 받았던 노락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마루와 문창살, 건물 간 통로 등 구한말에 지어진 한옥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이로당은 정면 7칸, 측면 7칸으로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입 구(口)자’ 모양으로 된 건물로 가운데 중정이 있다. 노락당과 더불어 안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여자들만 살 수있게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로당의 안주인은 운현궁 전체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이로당은 노락당이 고종의 가례장소로 사용된 후 흥선대원군 일가에서 노락당을 안채로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지게 되자 안채 용도로 새로 건립한 건물이다. 주로 여성들이 거주하며 살림하던 공간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ㅁ’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출처:문화재청>

<운현궁에서 제일 안쪽에 위치한 이로당(二老堂)>

‘ㅁ’자 형태로 지어졌으며 내부에 작은 마당이 있는 구조이다. 원래는 노락당이 안채였으나, 고종이 노락당에서 가례를 치러 별도로 안채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궁궐건물처럼 축대를 상당히 높게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고 있다.

<대청마루>

이로당은 앞면 7칸의 큰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이 곳에서 예절교육을 하고 있는데 주로 어린 학생이나 유치원생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

<이로당의 온돌방과 기둥에 걸어놓은 주련>

<이로당 앞 마당>

노락당과는 달리 행랑채 건물이 많지 않으며, 가족 모임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마당을 두고 있다. 노락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노락당과 이로당을 연결하는 복도와 작은 별채>

<이로당 동쪽편  마당>

운현궁은 전체적으로 구한말에 지어진 건물로 그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뒷마당 쪽에 난간이 있는 툇마루가 있어 정자나 누마루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

<뒤에서 본 모습>

이로당 동쪽편 마당은 노락당 뒷마당과 같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마당에는 큰 우물이 남아 있다. 마당 동쪽편 언덕에는 사당과 정자, 별당 등이 있어 후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양관이라는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섰다.

<노락당 동쪽편 마당>

건물 앞으로 작은 툇마루를 두어 후원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로당 북쪽 뒷마당.>

<안채인 이로당을 출입하는 작은 쪽문과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한 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