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신라 50대 정강왕(재위 886~887년)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형인 헌강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1년만에 병으로 죽고 여동생 진성여왕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다. 헌강왕릉과 함께 경주 남산 북동쪽 구릉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쇠퇴기에 조성한 소박한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강왕이 즉위하다 ( 886년 07월(음) ), 정강왕(定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황(晃)이고 경문왕(景文王)의 둘째 아들이다.
정강왕이 죽다 ( 887년 07월05일(음) ), 〔2년(887)〕 가을 7월 5일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정강(定康)이라고 하고,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제11 정강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봉분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이며 이 4 m, 지름 14 m의 크지 않은 규모이다. 아래에는 잘 다듬은 화강석을 3단으로 둘레석을 쌓았다. 무덤 앞에는 제사를 위해 제단이 있다. 전성기 왕릉과는 둘레석에 십이지신상을 장식하지 않았으며 제단도 아주 간소하게 만들어졌다. 문.무인석을 비롯하여 석상들의 전혀 없다.
신라 정강왕릉(定康王陵,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
이 능은 경주 남산(南山)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 김황)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의 높이 4 m, 지름 15 m로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분이다. 봉분 하단에는 둘레돌을 돌렸는데, 최하단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장방형 깬돌(割石)을 2단으로 쌓았다. 바로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