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양관(洋館)은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의 저택으로 일제가 한일합방 이전인 1907년도에 지어준 건물이다. 원래 이 곳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의 뒤뜰에 해당하는 곳으로 별당격인 아재당과 정자인 영화루, 은신군.남연군의 사당이 있었던 자리로 이들 건물들을 헐고 일제가 한일합병에 앞서 왕실인사를 회유하기 위해서 만들어 준 것으로 보인다. 이준용은 흥선대원군의 장손으로 여러차례 국왕을 추대되었던 인물이다. 일제가 을사늑약 이후 고종을 압박하기 위해 이 건물을 일본에서 귀국한 이준용에게 지어주었다. 이 건물은 그후 의친왕의 차남이 이우의 소유가 되었다가 해방후인 1946년부터 덕성학원에서 소유하게 되어 현재는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독부청사 등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건축했던 많은 서양식 건축물들과 비슷하게 바로크 건축양식을 모방해서 만든 건물로 외형적으로 화려하면서 곡선이나 타원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의 건축시기 또한 비슷한 양식의 건물에 비해서 이른 시기인 1907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공공기관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관 출입문을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돌출되게 지어졌다.
대원군이 사저였던 운현궁 동쪽편 언덕에 세워진 운현궁 양관.
구한말 청나라를 비롯하여 여러차례 고종을 폐위하고 이준용을 국왕으로 옹립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이준용은 을미사변 이후 일본으로 쫓겨났다가 고종이 폐위되고 순종이 즉위한 1907년에 귀국하였다. 이 건물은 그가 귀국하던 1907년에 일제가 황제였던 고종과 순종을 압박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운현궁 양관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운현궁 양관과 그 주변은 해방 이후 덕성학원이 소유하게 되어 지금은 운현초등학교와 덕성여대 평생교육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입구에는 정자 용도로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을 볼 수 있다.
운현궁 양관이 있는 덕성여대 평색교육관 들어가는 길. 정원이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다.
중앙에 현관을 두고 있는 2층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서양식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식이 많은 함석지붕을 하고 있다.
철근 콘크리이트로 지은 건물로 보이는데, 유럽 건물들을 모방하여 원형기둥들과 아치를 많이 사용하여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정원을 감상하기 좋도록 한옥의 툇마루나 누마루처럼 베란다를 많이 두고 있다.
일제가 만든 공공기관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붕이 있는 현관 입구. 마차나 자동차를 현관에서 비를 맞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서양건축물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는데, 유독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