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헌덕왕릉(사적), 신라 41대 헌덕왕

경북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 김언승)의 무덤이다. 헌덕왕은 원성왕의 손자이자 소성왕의 동생으로 난을 일으켜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안정화하고, 제방을 수리하는 등 농사를 장려하였다. 웅주도독 김헌창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동강 지역에 장성을 쌓고 국방을 강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반란을 통해 조카를 죽이고 즉위하였으며 귀족세력의 반란 진압했던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반기 귀족세력간의 갈등을 이끌었던 측면도 있었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헌덕왕릉(사적)>

헌덕왕이 즉위하다 ( 809년 07월(음) ), 헌덕왕(憲德王)이 즉위하였다. 왕의 이름은 언승(彦昇)으로 소성왕(昭聖王)의 어머니까지 같은 동생[同母弟]이다. 원성왕(元聖王) 6년(790)에 당에 사신으로 갔다 온 후 대아찬(大阿湌)의 지위를 받았고, 동왕 7년(791)에 역신(逆臣)을 주살하여 잡찬(迊湌)에 올랐으며, ~ 생략 ~ 애장왕(哀莊王) 원년(800)에는 각간(角干)이 되었고, 2년(801)에 어룡성(御龍省) 사신(私臣)을 역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등(上大等)이 되었다가 이때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헌덕왕이 죽다 ( 826년 10월(음) ), 〔18년(826)〕 겨울 10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諡號)를 헌덕(憲德)이라 하고 천림사(泉林寺) 북쪽에 장사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0 신라본기 제10 헌덕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봉분은 지름 26 m, 높이 6 m의 원형봉토분이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석을 둘렀으며, 바깥쪽에는 난간석이 세워져 있다. 1970년대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봉분 앞에는 서구 신전 제단처럼 만들어 놓은 상석이 세워져 있다. 문,무인석 등은 없지만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여 조성된 원성왕릉(38대)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헌덕왕릉 봉분>

OLYMPUS DIGITAL CAMERA<봉분 앞 제단 형태를 하고 있는 상석>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석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해 놓고 있는데 수해 등으로 훼손되어 현재는 돼지, 소, 호랑이, 토끼 등 5개의 12지신상 만 남아 있다. 둘레돌 일부와 돌난간석들은 1970년대에 능을 정비하면서 새로 만들었다.

OLYMPUS DIGITAL CAMERA<둘레석>

OLYMPUS DIGITAL CAMERA<12지신상 중 토끼>

OLYMPUS DIGITAL CAMERA
<호랑이>

OLYMPUS DIGITAL CAMERA
<소>

OLYMPUS DIGITAL CAMERA
<쥐>

OLYMPUS DIGITAL CAMERA
<돼지>

OLYMPUS DIGITAL CAMERA<난간석>

신라왕릉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꾸불꾸불하게 자라는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왕릉이 보인다.

OLYMPUS DIGITAL CAMERA<헌덕왕릉 소나무숲>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천림사의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헌덕왕릉이 있는 곳은 경주 북천(알천) 너머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천(알천)은 그의 할아버지인 원성왕이 즉위할 때 원성왕보다 서열이 높은 김주원이 홍수로 알천을 건너오지 못해서, 왕으로 추대된 일화가 있는데, 이런 일화를 상기시키면서 집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덕왕이 죽다 ( 826년 10월(음) )
〔18년(826)〕 겨울 10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諡號)를 헌덕(憲德)이라 하고 천림사(泉林寺) 북쪽에 장사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0 신라본기 제10,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북천(알천)>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북천 너머 절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

신라 헌덕왕릉(新羅 憲德王陵,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80
이 능은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 재위 809~826, 김언승)을 모신 곳이다. 경주시 북쪽을 가로지르는 북천 (北川)의 북안(北岸)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크기는 밑둘레 82m, 직경 26.8m, 높이 6m이다. 무덤의 하부에 병풍처럼 다듬은 돌로 보완했고, 보호석에 십이지신상 (十二支神像)을 새겼는데 지금은 북쪽에 있는 쥐[子)상을 비롯하여 소(丑)·범[寅)·토끼[卯)·돼지(亥)상 등 5개만 남아있다. 헌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김헌창(金憲昌)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당(唐)나라와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였고, 국방에 힘써 패강장성(江長城)을 쌓았다. 고려·조선 시대의 기록에 북천이 범람하여 능이 훼손 되었다고 전하며, 1970년 경주 고도 관광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보수되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