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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대표적인 통일신라 사방불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굴불사 절터에 남아 있는 석조사면불상(보물)이다. 이 불상은 큰 바위 에 불상을 새겼는데 서쪽에는 아미타여래, 동쪽에는 약사여래, 북쪽에는 미륵보살, 남쪽에는 석가모니를 새긴 사방불(四方佛)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행차했을 때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입체감과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뺴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통일성이 부족하며 조화를 잘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사방불(四方佛)이란 각 방위마다 불국토가 있고 그곳에 상주하며 네방위를 패표하는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다. 불국토 신앙과 오악숭배사상, 호국사상 등이 결합되어 통일신라 떄 성행하였다. 불교경전엔 약 5세기경에 언급되기 시작했으며 시대와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서쪽은 아미타여래 삼존상을 표현하고 있다. 아미타여래는 바위에 몸통을 새기고 그 위에 머리를 조각해 올려 놓았다. 좌우에는 별도로 보살상을 조각해 세워놓고 있다.

<서쪽 아미타여래 삼존상>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표현하고 있는데 양발을 무릎위에 올리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과 신체가 세련되고 생동감있게 표현되었다.

<동쪽 약사여래좌상>

<약사여래 얼굴>

북쪽면 오른쪽에는 입체감있게 조각한 보살입상이 서 있고 왼쪽에는 6개의 팔이 달린 관음보사을 얕은 선으로 새겼다.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쪽면 관음보살과 미륵보살>

남쪽면에는 석가여래삼존상을 표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오른쪽 보살상과 가운데 본존상 머리를 떼어갔다고 한다. 4면에 새겨진 불상 중 조각수법이 제일 나은 것으로 보인다.

<남쪽면 석가여래삼존상>

<굴불사지 절터와 석조사면불상(보물)>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보물),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 4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 산인 소금강산(小金剛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 (四方佛)형태이다. 불상은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 남쪽면에는 삼존입상(二等立像)이, 북쪽면에는 보살상(菩薩像) 두 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고(金鼓)에는 굴석사 (石寺)라는 명문(銘文)이 있다. (안내문, 2012년, 경주시청)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