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백률사, 삼국시대 이차돈이 순교한 곳에 창건된 사찰

경북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에 있는 사찰인 백률사(栢栗寺)이다. 삼국시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이차돈의 순교한 장소에 세워졌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삼국유사>에 693년(효소왕 2)에 이 사찰에 대한 대비관음상에 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율사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금동불상인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를 모시고 있었던 것으로 볼 떄 상당히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되었으며 그 떄 관음상이 없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률사에 있던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와 이차돈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은 일제강점기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OLYMPUS DIGITAL CAMERA<경주 백률사(栢栗寺)>

백율사(栢栗寺)
계림(鷄林)의 북쪽 산을 금강령(金剛嶺)이라고 하는데 [그] 산의 남쪽에 백율사(栢栗寺)가 있다. 절에는 대비(大悲)의 상(像) 한구가 있는데, 언제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영험하고 이로움이 자못 현저하였다. 혹은 중국의 신장(神匠)이 중생사(衆生寺)의 불상을 조성할 때 함께 만든 것이라고 한다. 속설에는 이 대성(大聖)이 일찍이 도리천(忉利天) 위에 올라갔다가 돌아와서 법당에 들어갈 때 밟았던 돌 위에는 발자국이 지금까지 마멸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 혹은 부례랑(夫禮郞)을 구해서 돌아올 때의 자취라고도 한다.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 백율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 오르는 길>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에서 내려다 본 모습>

현재 백률사에는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를 모셨던 대웅전을 중심으로 요사채,범종각 등의 전각들이 있다. 오랜 세월 번창했던 사찰이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대웅전은 임진왜란 후 다시 지어진 건물로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이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 대웅전>

백률사 대웅전, 경북 경주시 동천동 406-1
백률사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法興王)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多包)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 (金銅佛)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는 높이 1.7 m로 통일신라 금동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현재는 약단지를 쥔 손이 없지만, 옛 사진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남아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OLYMPUS DIGITAL CAMERA<요사채와 범종각>

백률사에는 이차돈순교비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따. 순교비에는 이차돈의 순교장면을 묘사한 그림과 그 내력을 적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 9세기 헌덕왕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
<이차돈순교비에 표현된 순교장면>

사찰 경내에는 옛 건물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주춧돌을 비롯하여 석조유물들을 볼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석조유물>

OLYMPUS DIGITAL CAMERA<주춧돌로 보이는 석조유물>

백률사 아래에는 8세기 경덕왕 때 창건된 굴불사(掘佛寺)가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8세기에 경덕왕이 백률사를 행차했을 때 염불소리가 들려 땅을 파보니 큰 돌이 나와 4면에 불상을 새기고 불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OLYMPUS DIGITAL CAMERA<백률사를 오르는 길에서 보는 굴불사지>

OLYMPUS DIGITAL CAMERA<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5.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 백율사,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