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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유신묘(사적)

경북 경주시 충효동 송화산 동쪽 구릉에 있는 김유신 장군 무덤(사적)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가 멸망하면서 투항했던 금관가야 지배층 후손으로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것으로 볼 때 진천지역에서 세력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흥왕과 진평왕대에 김유신 일가는 삼국간의 충돌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한다. 김유신은 선덕왕대에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군을 토벌하고, 백제를 공격하여 많은 성을 빼앗는 등 당대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여동생이 후에 왕위에 올라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결혼하여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과 그의 동생 김인문을 낳는 등 일개 귀족세력에서 신라왕실의 주축세력이 되었다.

김유신이 죽다(673년 07월01일(음))
가을 7월 1일에 이르러 사저의 정침(正寢)에서 죽으니 향년 79세였다. (삼국사기 권 제43 열전 제3 김유신 하,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1년)

<경주 김유신묘(사적)>

최대 성씨인 김해김씨는 사실상 김유신 장군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통일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우고, 신라 왕실과 혼인관계를 통해 주류세력에 편입됨으로써 오늘날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능역 출입문, 삼문형식을 하고 있다.>

<들어가는 길>

무덤은 지름 30m 정도의 큰 봉분이다. 봉분 아래에 둘레돌을 배치하고 바깥쪽에 돌난간을 둘렀다. 둘레돌은 조각이 없는 것과 12지신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무덤주위에 12지신상으로 둘레돌을 장식하는 것을 당(唐)의 능묘제도의 영향을 받은 신라 33대 성덕왕릉 이후부터인 것으로 볼 때 후대에 장식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9세기 흥덕왕 때 왕릉의 예를 갖추고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왕릉과는 달리 상석 외 문무인석을 비롯하여 특별한 석물을 두고 있지 않다. 

후일 흥덕대왕이 공[김유신]을 봉하여 흥무대왕(興武大王)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43 열전 제3> 김유신 하,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1년)

<당의 능묘제도가 반영된 봉분>

<봉분 앞에 놓여진 상석, 서구 신전의 제단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봉분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십이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세밀하게 잘 새겨진 부조상으로 우리나라 십이지신상을 대표하는 부조상이다.

<둘레석>

<둘레석 바깥 난간석>

< 쥐(子), 소,(丑), 호랑이(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

무덤 앞에는 조선시대 경주부윤이 세운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가 남아 있다.


<태대각간비>


<흥무대왕비>

능역 입구에는 김유신장군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1966년에 세워진 비석으로 비문은 1933년에 정인보가 지었으며 이를 이세호가 1956년에 써서 후손인 김형배가 새겼다.

<신도비 비각>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김유신장군 묘(사적), 경북 경주시 충효동 산 7-10
이 무덤에는 김유신(595~673) 장군이 모셔져 있다. 충효동 송화산(松花山)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끝에 위치해 있으며,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모양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金官伽倻)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증손(曾孫)으로 15세에 화랑이 되었으며, 무예와 지략이 뛰어나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지휘하였다.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7년(660)에 나당 연합군(羅唐 聯合軍)이 결성되었을 때 신라군 총사령관이 되어 백제를 병합하였고, 이어 문무왕(文武王) 8년(668)에는 고구려를 병합하였으며, 한반도 전체를 복속시키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당나라 군사도 물리쳤다. 문무왕 때에는 태대각간(太大角干)이라는 관작(官爵)을 받았고, 뒷날 흥덕왕(興德王) 때에는 흥무대왕(興武大王)’ 으로 추봉되었다. 능은 밑둘레가 50m, 지름이 18m, 높이는 5.3m인데 아래쪽에는 높이 1.2m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긴 보호석이 둘러져 있다. 십이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5.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타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