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태종무열왕릉비(국보), 당나라 양식을 받아들인 최초의 석비

경북 경주시 서악동 태종무열왕릉비(국보)이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져 있는 석비(石碑)이다.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로 구성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받아들인 최초의 석비이다. 현재는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으며 글자가 새겨진 조각이 조금 발굴되었다. 머릿돌에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址碑)’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어 무덤과 석비의 주인이 확인되었다. 비몸은 없지만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의 장식은 아주 생동감있게 조각되어 있어 동양권에서도 걸작에 속하는 조각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종무열왕릉비(국보)>

OLYMPUS DIGITAL CAMERA<반대쪽에서 본 모습>

OLYMPUS DIGITAL CAMERA<뒤에서 본 모습>

거북받침돌은 거북의 모습을 아주 생동감있게 화강석으로 조각했다. 거북은 목들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게 뻗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등에는 벌집모양의 육각형을 새겼으며 몸돌을 올리는 비좌 주위에는 연꽃모양을 조각했다.

OLYMPUS DIGITAL CAMERA<거북받침돌>

OLYMPUS DIGITAL CAMERA<앞으로 솟아 오르려는 거북 얼굴>

OLYMPUS DIGITAL CAMERA<등판에 새겨진 육각형 무늬>

OLYMPUS DIGITAL CAMERA<생동감 넘치게 조각된 발>

OLYMPUS DIGITAL CAMERA<뒷편에서 본 모습>

글이 새겨진 비몸돌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부근에서 출토된 글자가 새겨진 비석파편이 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비에 새겨진 글씨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글씨이다.

OLYMPUS DIGITAL CAMERA<태종무열왕릉비 조각, 경주박물관, 2011년>

OLYMPUS DIGITAL CAMERA<태종무열왕릉비 조각,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1년>

머릿돌은 높이가 110 cm이며, 좌우에 여섯마리의 용이 세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서 석비와 왕릉 주인이 태종무열왕임을 알 수 있다.

OLYMPUS DIGITAL CAMERA<머릿돌 앞면>

OLYMPUS DIGITAL CAMERA<옆면>

OLYMPUS DIGITAL CAMERA<뒷면>

OLYMPUS DIGITAL CAMERA<석비가 모셔진 비각>

OLYMPUS DIGITAL CAMERA<신라 29대 태종무열왕릉(사적)>

신라 태종무열왕릉비(太宗武烈王陵碑, 국보),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이 비석은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비는 무열왕릉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빗돌[碑身]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받침돌(龜趺)과 용을 새긴 머릿돌(螭首)만 남았다. 길이 333 cm, 너비 254 cm, 높이 86 cm이며, 거기에 조각된 돌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신라인의 진취적인 기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높이가 110 cm인 머릿돌 좌우에는 여섯 마리의 용이 서로 세 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이다. 앞면 중앙에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金仁問)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 (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돋을새김되어 있어 비의 주인공을 밝혀 주고 있다. 이 비는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