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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마소, 지방 유생들이 여론을 형성했던 공간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사마소(司馬所)이다. 향교가 있는 교촌마을 동쪽 월정교 터에 있던 것을 1984년 마을 입구로 옮겼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영조 때(1592년) 중건하였다고 한다. 사마소는 16세기 초 지방의 사마시 출신 젊은 유림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체로 관아 부근에 위치하여 지방관의 지방통치를 간섭하는 세력이 되었다. 조선중기 이후 서원이 지역여론을 장악하면서 타지역에서는 없어졌다.

<경주 사마소>

경주 사마소는 교촌마을 경주최씨 집안이 관직에 진출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세력으로 잡으면서 활동공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고도 경주를 찾는 방문객이 머무는 공간으로 활용했던 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쪽에 사랑채 기능의 건물 2동이 있고, 뒷편에 살림집 안채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사마소>

사마소 건물은 앞면 4칸으로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바깥주인이 머누는 사랑채와 거의 비슷한 구조로 손님접대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대청마루>

병촉헌은 앞면 2칸 규모로 온돌방으로 되어 있으며 앞쪽에 넓은 툇마루가 있다.

<병촉헌>

<뒷편 고직사 성격의 건물>

경주 사마소(慶州 司馬所), 경북 경주시 교동 89-1
사마소는 조선시대의 과거에 합격한 그 지방의 생원 (生員)과 진사(進士)들이 유학(儒學)을 가르치거나 정치 (政治)를 토론하던 건물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도 자기 수양을 위해 이 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연산군 때에는 생원·진사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백성에게 양식을 빌려주기도 하였다는 곳이다. 처음 세워진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뒤 영조(英祖) 17년(1741)에 다시 지어 풍영정(風亭)이라 불렀다. 옆면의 사마소라는 현판은 영조 38년(1762) 당시의 부윤(府尹) 홍양한(洪良漢)이 쓴 것이다. 함께 있는 병촉헌(炳獨斷)은 순조(純祖) 32년(1832) 생원 최기영(崔永)이 지은 것이다. 이 건물은 원래 이곳으로부터 동쪽으로 300 m 거리에 있는 신라시대 월정교(月精橋)터의 북쪽 교대(橋臺) 위에 세워져 있던 것을 1984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건물 안에는 이 건물을 고쳐 온 내용이 담긴 현판들이 걸려 있어 그 내력을 알려주고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