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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가야시대 지방세력 무덤들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 일대에 있는 복천동 고분군(사적)이다. 동래읍성 북문 안쪽 구릉에 위치하고 가야시대 무덤들이다. 1969년 주택공사 중 우연히 무덤이 확인되어 여러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20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의 형태는 땅을 파서 방을 만들고 나무관을 넣은 덧널무덤, 땅속에 돌로 벽을 쌓고 천장을 덮어 만든 구덩이식 돌방무덤, 땅속에 시신을 바로 묻는 널무덤 등 여러 시기에 걸친 다양한 형식의 무덤들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4~5세기 낙동강 하류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토기들, 철제갑옷과 투구류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구한말까지 부산지역의 중심지였던 동래지역이 고대 이래로 지역의 중심지였음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유적지 뒷편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복천박물관이 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사적)>

<복천동 고분군(아래쪽)>

무덤들은 2세기부터 7세기까지 구름 남쪽에서 북쪽으로 옮겨가며 만들어졌다. 1969년부터 2008년까지 8차에 걸쳐서 발굴,조사되었는데 191기의 무덤과 토기, 철기 등 12,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복천동 고분군 무덤 배치도>

<복천동 고분군 입구>

<무덤들이 있는 능선으로 들어가는 길>

복척동 고분군 능선 중앙에 위치한 전시관을 기준으로 위쪽에 위치한 무덤들이 먼저 발굴, 조사되었다. 1969년 처음 발견된 1호 무덤을 비롯하여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이 출토된 7호분, 금동관(보물)이 출토된 10, 11호분, 청동칠두령이 출토된 21, 22호분, 많은 양의 철제갑옷(보물)이 출토된 38호 분 등이 있다.

<전시관 위쪽 능선에 있는 무덤들(1~40호분)>

<전시관 위쪽 능선에 있는 무덤들(1~40호분)>

<전시관 위쪽 능선에 있는 무덤들(1~40호분)>

<금동관, 1호 무덤>

<금동관, 1호 무덤>

<말띠드리개, 5세기, 36호,15호, 1호 무덤>

<신발모양토기, 5세기, 3호, 5호 무덤>

<갑옷, 삼국, 부산 복천동 4호분>

7호 무덤에서 출토된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은 쇠뿔모양의 뿔잔(각배)를 대표하는 유물로 말 머리가 달린 뿔모양 잔이다. 2점이 출토되었는데 큰 것은 높이 14.4cm, 길이 17cm, 작은 것은 높이 12.1cm, 길이 17cm로 형태와 제작수법이 거의 동일한다. 각배는 낙동강 유역의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며 남성적이고 신성한 말에 대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각배는 다양한 형태의 유물로 남아 있다.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

이 금동관은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에 비해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出’자 모양을 하고 있는 신라 금관과는 달리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판재를 잘라서 모양을 만들고 정으로 두드려 문양을 만드는 단순한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졌다.

<금동관, 보물, 10.11호 무덤,>

11호 무덤은 토기와 장식대도 등에서 신라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금동관은 신라에서 제작했다는 견해와 가야에서 제작했다는 견해가 모두 있다. 또한 당시 부산 지역은 대체적으로 5세기 이후 신라의 영향이 크게 미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고리자루 칼, 5세기 11호 무덤>

복천동고분군에서는 4세기부터 대형무덤을 중심으로 말갖춤새의 모든 종류가 출토되고 있다. 5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신라의 영향으로 장식적인 금동제품들이 출토되고 있다.

<가야 무사, 출토유물 형태로 복원한 모습>

<투구, 5세기, 11호 무덤>

<목가리개, 5세기, 11호 무덤>

<갑옷, 5세기 10호 무덤>

<팔뚝가리개, 5세기, 11호 무덤>

<말안장, 5세기, 10호 무덤>

<발걸이, 5세기, 10호, 22호, 21호 무덤>

 <재갈, 5세기, 10호, 69호, 111호 무덤>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보물)는 1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가야시대 토기로 깨지거나 훼손된 부분이 없어 보전상태가 양호하다. 그릇받침 가운데에는 거북모양 토우 한마리가 붙어 있는데 삼국시대 토기 중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부산 복천동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 보물, 김해박물관 소장>

복천동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 21.22호분은 돌덧널무덤으로 무덤의 규모나 부장품의 수량이 다른 무덤에 비해 상당히 많다. 청동제 칠두령(보물)을 비롯하여 고리자루큰칼, 철모, 목가리개, 말갖춤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5세기 전반 부산 동래지역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21호, 22호 무덤 내부(모형)>

<청동 칠두령, 보물, 5세기, 22호 무덤>

<투구, 5세기, 21호 무덤>

<목가리개, 5세기, 21호 무덤>

<허리가리개, 5세기, 21호 무덤>

<화살통, 22호 무덤>

<복숭아모양 토기, 22호, 134호 무덤>

복천동 21.22호분
복천동 고분 구릉의 남쪽 정상부에 위치하는 21.22호분은 딸린덧널이 있는 돌덧널무덤으로, 복천동고분군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규모나 부장품의 양이 다른 분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으뜸덧널은 길이 680cm, 너비 640cm, 깊이 290cm의 네모난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475x160x160cm 가량의 석곽을 쌓아 4매의 뚜껑돌로 덮고 밀폐한 구조이다. 무덤구덩이와 석곽 사이를 흙과 활석으로 채워 보강해 나가면서 네 벽을 동시에 쌓아 올렸고, 바닥에 조그마한 깬돌을 깔고 가운데 부분에 나무로 만든 덧널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인공이 있었던 자리에는 20매의 대형 덩이쇠와 함께 3점의 고리자루큰칼, 목걸이, 귀걸이, 청동제 칠두령과 토기, 철모, 곡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남쪽에서는 굽다리접시, 항아리받침대, 복숭아모양토기 등 각종 토기류, 호록금구, 철촉군, 마구류, 목가리개, 전복, 명주개량조개 등이, 북쪽에서는 각종 토기류와 함께 철촉군, 도끼,낫, 보습 등의 농공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또 주인공 발치 아래에서 순장된 3명의 인골이 확인되었다. 딸린덧널은 으뜸덧널에서 약 50cm 가량 북쪽에 만들어졌으며, 길이 630cm, 폭 420cm, 깊이 270cm 가량의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나무로 만든 곽을 설치한 구조이다. 북쪽에서는 대형의 발형 그릇받침과 밑이 둥근 항아리, 굽다리접시 등 토기류가 남쪽에서는 낫, 창, 손칼 등 철기류, 동쪽에서는 철제 투구와 목가리개, 허리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복천동 21.22호분은 다량으로 출토된 부장풍과 그 성격으로 볼 때, 5세기 전반 무렵 동래를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무덤이다. (안내문, 복천박물관, 2021년)

<귀때토기, 5세기, 34호 무덤>

38호 무덤은 복천동고분군 중 최초의 딸린덧널이 있는 무덤이자 바닥을 갖추고 순장의 흔적이 확인된 무덤이다. 철로 만든 판갑옷, 비늘갑옷, 투구 등 가장 이른 시기의 철제 갑옷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구조나 출토유물로 볼 때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는 전환기 무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38호 무덤 내부(모형)>

부산 복천동 38호분 철제갑옷은 가야 초기인 4세기에 만들어진 철제 갑옷이다. 투구, 목가리개, 갑옷으로 구성되어 있다. 갑옷을 구성하고 있는 철판들을 두드려 얇게 만들었으며 철판들을 가죽끈으로 연결하였다. 철제갑옷 구성품이 온전이 남아 있으며 철제품임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보물>

철제갑옷 일괄은 복천동고분군 제5차 발굴조사(1993~1995년)시 복천동 38호분의 으뜸덧널에서 출토되었다. 판갑옷은 세로로 긴 철판을 가죽끈으로 연결하였고, 목가리개 역시 긴 철판을 연결한 형태이며 가죽끈 흔적으로 보아 판갑옷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투구는 ‘S’자형으로 긴 철판 20매를 엮어 만들었으며 그 위에 작은 복발을 얹었다. 아랫부분에는 각각 2매의 철판을 엮어 볼가리개를 만들었다. 갑옷의 몸통 앞쪽에는 보수를 위해 작은 철판을 덧댄 흔적이 있어 판갑옷이 실전용 갑옷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복천동 38호 갑옷은 일괄로 확인되어 삼국시대 갑옷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기준이 된다. 또한 철제 방어구의 가장 빠른 사례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판갑 중 가장 가깝게 복원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야의 뛰어난 금속제련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안내문, 복천박물관, 2021년)

<통형동기, 5세기, 38호, 60호 무덤>

복천동 38호분
복천동 38호분은 고분의 남쪽 구릉에 위치하는 부곽이 있는 대형 덧널무덤으로 복천동고분군에서 묘광의 길이가 가장 길다. 봉분의 규모는 자세하지 않으나 토층상태로 보아 덧널 위에 점토와 모래, 파낸 흙을 얇게 깔아 층층이 쌓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으뜸덧널은 길이 750cm, 너비 150cm 정도 크기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두께 10cm 가량의 나무판 수십매를 사용하여 535x250cm의 목곽을 만든 구조이다. 또 긴 벽을 따라 너비가 25cm 가량 되는 사각기둥을 세워 목곽을 튼튼하게 보강하였다. 곽과 구덩이 사이의 공간은 모래가 섞인 흙과 점토를 번갈아 가면서 채웠다. 무덤 바닥에는 점년에 크고 작은 깬돌을 깔고 길이방향으로 큰 돌을 놓아 단면 형태가 凹자형이다. 돌을 놓은 가운데 부분에는 멍석을 깔고 400점 가량의 화살촉을 나란히 엮어 5열로 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북쪽 모서리에 돌이 깔리지 않은 공간에는 순장자가 묻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복천동 38호분은 복천동고분군 최초의 딸린덧널무덤이자 영남지역에서 최초로 바닥시설을 갖추고 순장의 흔적이 확인된 무덤이다. 또 가죽이나 나무가 아니 철로 만든 판갑옷, 비늘갑옷, 투구 등 가장 이른 시기의 철제 방어용 무구를 갖추고 있다. 뿌리가 없는 화살촉과 함께 단면 삼각형의 화살촉이, 단면 마름모꼴의 짧은 창과 함께 고사리장식이 달린 긴 창 등, 이 고분에는 구식무기와 신식 무기가 함께 부장되었다. 즉 당시로서는 최첨단 무기를 부장하고 있는 것이다. 복천동 38호분은 무덤 구조와 출토유물로 볼 때 과거의 요소가 사라지고 새로운 요소들이 등장하는 전환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부산지역의 고대사를 해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안내문, 복천동박물관, 2021년)

무덤들이 있는 능선 중앙 53, 54호분 무덤 자리에는 전시관을 설치하여 무덤 내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시관 아래는 43~51호 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 내부를 볼 수 있는 전시관>

<특이한 모양의 항아리 받침대, 5세기, 53호 무덤>

<등잔모양토기,5세기, 53호 무덤>

능선 아래쪽은 대부분 1990년대 이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총 28기의 묘가 추가 확인되었다. 정상부에 있는 무덤들은 부곽이 대형묘가, 옆쪽으로는작은 규모의 무덤들이 배치되어 있다. 무덤이 주요 지점에는 화양목을 심어 그 위치를 표시해 놓고 있다.

<전시관 아래 43 ~ 51호 무덤 무덤이 확인된 자리>

아래쪽으로 73호, 69호, 71호, 78호 무덤 등이 표시되어 있다.

<아래쪽에 있는 무덤들>

<아래쪽에 있는 무덤들>

<능선 아래 탐방로(동쪽)>

<아래쪽 끝부분, 83호, 84호 무덤이 확인된 자리>

<56호, 57호, 64호, 65호 무덤>

<능선 아래 탐방로(서쪽)>


<갑옷, 삼국, 부산 복천동 57호B>

<투구, 5세기, 93호 무덤>

<판갑, 5세기, 112호 무덤>


<갑옷, 삼국, 부산 복천동 164호분>

복천동 고분군은 옛 동래읍의 주산인 마안선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 동래부 읍치가 있던곳으로 동래읍성이 고분군을 둘러싸고 있다. 고대 이래로 지역의 중심지였으며 부산항에서 울산을 거쳐 경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거점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능선 뒷편으로 보이는 동래읍성>

<동래읍성 북문 부근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동래읍성 북장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복천동 고분군과 동래부 읍치>

1996년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이 개관되어 이곳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복천박물관>

부산 복천동 고분군
부산 복천동 고분군은 옛 동래읍의 주산인 마안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낮은 구릉 위에 있다. 6.25 전쟁 이후 복천동 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에는 판잣집이 빼곡이 들어서 있었는데 1969년 주택 개량공사 중 우연히 무덤이 확인되어 긴급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수차례의 수습 및 시굴조사와 8차에 걸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2세기 전반부터 7세기 초에 해당하는 200여 기의 무덤을 확인하였다. 구릉의 정상부에는 주로 4~5세기에 속하는 딸린덧널을 갖춘 대형의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10,000여 점에 이르며 철제 유물이 많다. 특히, 단일 유적으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수량의 철제 갑옷이 출토되어 가야의 우수한 철기 문화를 잘 보여준다. 주요 유물로는 복천동 7호분 출토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 10.11호분 출토 금동관(보물), 21.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보물),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보물), 10.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 및 단경호(보물) 등이 있다. (안내문, 부산시청, 2021년)

<출처>

  1. 안내문, 부산시청, 2021년
  2. 안내문, 부산 복천박물관, 2021년
  3.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7년, 2020년
  4.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6. 위키백과, 2022년